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Oct 09. 2019

일의 기쁨과 슬픔

회사에서 울어본 적, 저도 많아요. 원래 그렇게 삶은 찌질한거예요...

굴욕감에 침잠된 채로 밤을 지새웠고, 

이미 나라는 사람은 없어져 버린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되었다고. 

그런데도 어김없이 날은 밝았고 여전히 자신이 세계 속에 존재하며 

출근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마주해야 했다. 


- 일의 기쁨과 슬픔 - 





스크럼, 애자일, 트렐로, 오픈마켓, 개발자, 기획자...

하나라도 익숙한 단어가 들리신다면, 어쩌면 그와 동시에 '판교'라든지 '가산디지털단지'와 같은 지역이 어렴풋이 떠오르실진 않을지. 내가 사는 동네가 사실 그러하다. 소위 '오징어잡이 배'와 같은 별명을 가지며 '프로야근러' 가 차고 넘치는 스타트업 및 각종 기술 산업 제조 서비스 콘텐츠 등등 등등의 '사무실' 은 판교의 '테크노밸리' 쪽으로 건너가면 빌딩 숲 안에서 쉽게 '체감' 할 수 있다. 



누구는 말한다. 실리콘밸리를 엇비슷하게 따라 한 것 같다고. 

그러한들 저러한들 이러한들 어떠하리. 사견으로선 그저 '먹고사니즘'에 맞춰 '오늘'이라는 시간을 '업'의 현장에서 치열하리만치 고군분투하는 '월급'에 자신의 평일 시간을 온전히 갈아 넣고야 마는 애달픈 '직장인' 들이 그려질 뿐... 



일개미 12년 차. 닳고 닳은(?) 나여서 이런 냉소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소위 어깨뽕이라든가 '머리'가 커져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만. 내 눈에는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 갑이나 을이나 하청업자나 중계업자나 소매업자나 도매업자나 결국에 기쁨 조금 슬픔 '가득' 등에 짊어지고 사는 프로 야근을 불사하는 멋지고도 안쓰러운 일개미 월급쟁이들로 비친다. 물론 그중엔 단연코 나 또한 포함하여... 




일의 기쁨과 슬픔, 창비, 장류진 소설집, 2019. 



아름다운 '난장토론' 이 펼쳐지는 숱한 회의... 결과는 없고 '논쟁'만 있는 시간들도 꽤 대다수.. 그리 아름답지 않은 시간들..



등단하자마자 조회 수 30만 건, 2020 소설계의 원더키드의 등장이라는. 

화려하고 대대적인 수식어를 달고 그야말로 저 먼 우주에서 혜성처럼 '짠' 하고 나타난 이 작가께 지극한 관심이 있었지만 '판교' '직장인' '일' '소설' 이런 해시태그와 연관 검색어를 보면서 사실 어떤 이야기 줄기들을 '예상' 했었다. 어떤 내용이 들어가 있을까 감히 상상도 되었으니까. 직장인들의 익명 게시판 앱인 '블라인드'만 봐도 사실은 꿰찰 수 있다. 직장인들의 지질하고도 위대한, 삶의 치열한 이곳저곳들의 고민들을. 



아니나 다를까. 막상 읽고 나니 상상했던 '대로' 지극히 현실적인,  '팩폭 공감'을 쥐어주셨기에

씁쓸한 뒷맛을 품은 채,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제목은 정말이지 그가 아니라 이 신예 소설가께 어울리는 게 실로 '정답' 같았다. '일은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생명력'이라고 했던 스위스 태생의 작가의 문장과는 달리, 또 한편으로는 일의 시간들은 때로 우리를 쪼렙으로 만들며 굴욕감을 심어 주어 생명력을 앗아가게도 만든다는 걸 '현실'의 시선이 지극히 들어간 이 허구의 서사를 통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만 이리 느끼나 싶고..) 


 

가끔 PC  속 아웃룩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키보드를 두드리듯 내리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스웩)



'적립 포인트'라는 기획을 제안한 직원에게, 정말 그 '포인트'를 '월급'으로 주고 마는 대단하신 '회장님'. 

입이 떡 벌어지는가? 그러나 이게 '현실'에서도 고스란히 일어나는 행위와 엇비슷하다면 어떨까? 소위 사내 갑질 아닌 갑질을 마주하고 일상에서 오히려 유쾌하게 '어떻게 하면 현금으로 바꿀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실은 짠 내 대폭풍....) 소설 속 인물들의 대사들을 한 문장 한 문장 텍스트로 읽고 있자니 어딘지 모르게 또 마구 상상이 엄하게 빗나가곤 한다. 이미 너무나도 만연한 직장 내 폭력의 행위들은 실로 교묘하게 대단해서 내부 고발자가 만천하에 '실토' 하지 않는 이상 쉽게 볼 수는 없지만 우리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들' 일지도 모르기에. 




-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어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었다. 

- 내가 회사 생활 십오 년 하면서 한 번도 운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 포인트를 보고 있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포인트가 너무 많아서... 너무 막막해서.




월급 대신 받은 포인트를 '돈'으로 바꾸기 위해 오픈 마켓 장터에서 신품을 싼 가격으로 되팔고, 그 신품을 구하기 위해 다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소위 매입매출 잔머리에 도가 튼 직장인..... 그 직장인이 물건을 사고파는 오픈 마켓을 실제 기획하고 개발한 이와의 만남... 한데 난 이 '소설'을 보면서 이게 실로 완벽한 소설은 또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 '쇼'가 다 진행되는 무대가 바로 '직장' 일 수 있기에.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고군분투, 짠내 폭풍, 인생살이, 고만고만하면서도 개개인의 대단한 우리들의 삶들...



철저히 가려져 있는 어딘가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는 '팩트' 라면 말이다. 

우리는 모르지 않을 것이다. 선명하든 희미하든 드러나든 그렇지 않든, 조직 내  '계급'이라는 것은 분명 존재하고 소위 '정치'에 '밥줄'이라는 것이 연결되어 있다면 누구라도 자신의 '밥그릇'을 위해  '줄'이라는 것을 서야 하는 현실들을. 또한 기업 간 혹은 수요 공급 법칙에 의해 시장 내 소비자와 생산자 간  '갑을' 관계는 또 어떠한가. 신파라 불려도 어쩔 수 없다만, 여전히 새파랗게 젊은 녀석들이 다 늙은 부장에게도 구매 발주서를 쓰윽 내주면서 '으쓱' 해 대는 '꼬락서니' 들.... 



회사의 크고 작음과 기업 브랜드가 개인의 브랜드인 줄 '착각' 하는 어깨에 뽕 들어간 젊은 꼰대 직원들. 

이런 '닝겐' 들의 갑을 간 행태들은 의외로 대단히 만연하여 여전한 현시대의 보이지 않는 '사내 문화'가 아니던지. 많이 없어졌다고? 그래. 많이도 없어졌을지 모르지만, 원체 '폭력'이라는 것은 쉬이 드러나지 않는다. 당사자가 용기를 내어 드러내거나 안간힘을 써서 '발언' 하지 않는다면 더더욱. 그 깊이와 실체는 아무도 모르는 거다. '업'에 종사하지 않은 방관자들의 시선으로서는. 내부를, 속내를 알 수 없다. 




글쎄요. 저희 대표나 이사는 매일매일 그런 생각을 하겠죠? 어떻게 돈 끌어오고 어떻게 돈 벌고 어떻게 3퍼센트의 성공한 스타트업이 될지 잠들기 직전까지 고민하느라 걱정이 많을 거예요. 전 퇴근하고 나면 회사 생각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요즘 자기 계발과 경쟁력에 꽂혀있는 나는... 가끔 생각하곤 한다. 개인의 대외 경쟁력이 정말이지 '중요' 하다는 것을...




모든 대표나 임원이나 소위 위 레벨 포지션의 양반들이 다 '쓰레기'는 아니겠지만. 

각자의 위치에서의 '입장'이라는 것은 분명 있을 테지만. 서로 간의 첨예한 가치관과 목표 차이로 인한 간극은 여간해선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현업에서 많이 보았다. 겪기도 했다. 의견 충돌과 내면의 고통, 그로 인해 서로가 윈윈 하지 못한 채로 고꾸라지는 순간순간들. 모럴 해저드도 다반사였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어가며 일의 시간들을 거쳐가다 보니, 이 소설은... 그리 대단한 허구가 아니라 바로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 둘이서 하기도 힘든 걸 혼자 하고 있으니 본인도 얼마나 힘들겠어요.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요. 개가 뭐 스티브 잡스예요? 

- 알겠어. 내가 광고만 붙으면 진짜, 아이폰 개발자도 뽑고 안나 후배도 뽑아줄게

(중략) 

조금 비싼가 싶었지만 오늘은 월급날이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했다. 




문학은.... 그래서 삶은 사실은 문학을 넘어선다. 

소설은.... 단지 그런 우리들의 단편을 날카롭게 비춰주는, 비춰야만 하는 고마운 '도구' 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대사가 그러했듯이.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라는 대사에 담긴 자화상이 바로 지금의 '우리' 일지도 모른다고. 



그래도 그 일에 '슬픔'만 있는 것은 아니겠으니.

또한 우리는 내일이라는 시간을 향해 출근을 하면서 '희망'이라고 하는 것을 품는다. 그 속에서 소박한 '기쁨'은 탄생할 테니까. 그렇게 원래 삶은 찌질하고 그 알게 모를 초라함 들을 상쇄시켜낼 수 있는 작고 큰 기적 같은 기쁨들을 스스로, 함께, 만들며 살아가고 또 살아 내는 것이 바로 지극한 현실, 일상, 우리들의 '오늘' 일지도 모를 일이다. '월급'이라는 마약과 함께. 



출근과 퇴근을 할 수 있다는 시간을 '감사' 하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그럴 수 없는 존재를 생각한다면...



매거진의 이전글 마르타의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