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속도로 가는 아이
'도대체 언제 옷을 혼자 입으려나'
옆집 누구는 옷도 혼자 잘 입는데! 결국 터지고 말았다.
등원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옷 입기
9시가 다가올수록 내 마음은 조급해진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는 척을 하는건지 5살 아들은 천하태평이다. 식탁에서 느릿느릿 밥을 먹고 밥을 먹은 후에는 조금만 더 놀고가면 좋겠다는 타협을 시작한다.
"그럼 딱 책 한 권만 읽고 옷 입을게요."
책에 약한 엄마의 속을 빤히 꿰뚫어본 아들은 오늘도 9시가 넘어서 등원을 했다.
'5살되면 혼자 옷을 잘 입겠지'의 기대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분명 혼자 입을 줄 아는데 엄마가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하는 아이. 이 작은 고민이 화로 바뀔 때가 있다. '왜 혼자 입으려하지 않는거지' 부터 시작해서 옆집 친구와 비교도 하기 시작한다. 비교가 얼마나 안좋은 것인지 알면서도 꾹꾹 눌렀다가 한 번씩 터지는 마음은 나도 참 알수가 없다.
혼내도 타일러도 엄마가 도와달라는 아이. 자존심이 센건지 옷입기가 정말 싫은건지...
고민을 해도 어려웠다. 어느 날은 아이가 엄마 마음만 있냐며 자기의 마음도 있다며 소리쳤다. 그 순간에는 어떻게 5살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기가차서 어이가(?)없었지만 생각해보니 아이가 한 말이 정답이었다.
그래서 내가 찾은 답은 기다림과 인정이었다.
해님과 바람이야기가 있다. 억지로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고 하는 바람보다 나그네를 먼저 이해하고 차근차근 노력한 해님이 결국 나그네의 옷을 벗겼다.
아이에게 내 입장만 내 고집만을 세운다고 될 일이 아니다는 것을 깨달았다.
'5살, 옷을 혼자 안 입는 아이'
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이다. 엄친아를 만들며 아이를 자극하고 내 스트레스지수를 높이는 것보다 이 위기를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기회로 삼기로 했다.
(그래, 너를 믿기로 했다.)
그리고 내 욕심을 버렸다. 육아서는 육아서일뿐 모든 아이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에 고작(?) 옷을 혼자 입지 않는 아이에게 상처를주고 스트레스받지 않기로했다.(못입는건 아니니... 아이 마음을 존중해주기로 한다.)
'설마, 15살이 되서도 나한테 입혀달라고 할까'의 마음가짐을 갖기로했다. 아이의 자존심을 건들지 않기로 다짐했다. 내일 아침이면 혼자 입어보라고 말은 하겠지만 엄친아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약속시간을 정해놓되 아이의 자존심을 건들지 않고 타협점을 찾아 볼 것이다.
기분이 좋을때는 혼자도 척척 잘 입는 아이니까. 누구나 귀찮고 하기싫은 일은 있으니까 너의 마음을 존중해주려한다. 그런데 너무 오래 시간끌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의 인내심의 한계를 존중해주길.
오늘도 글로 쓰며 반성하고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나는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