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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ven헤븐 Sep 03. 2023

집밥 곰선생_프롤로그

'집밥은 나와 가족의 생존이었고, 이제는 나의 콘텐츠가 되었다.'


처음 신혼살림을 해외에서 시작했을 때 매일 집에서 밥을 해야 했던 그 황당함이 기억난다.

결혼 전엔 달걀 프라이도 제대로 할 줄 몰랐고, 심지어 라면도 잘 못 끓였으니까.

조리 전의 야채나 고기의 모습이 어떠한 지, 정확한 이름은 무엇인 지, 잘 알지 못했다.

마트나 시장에서 알아볼 수 있는 식재료는 두부, 상추, 콩나물, 계란, 삼겹살 정도?

그런데 콩나물 무침에 뭐가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그저 콩나물의 모습은 조리 전이나 후가 같아서 그것이 콩나물이란 걸 알고 있었을 뿐.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결혼 후 나는 집에서 혼자 김치도 담고, 오징어순대도 만들어 먹고, 양념 게장, 아게다시도우후, 오코노미야키 등등 나의 생명책인 '요리책'의 첫 페이지부터 끝 페이지까지 다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갔다. 전공이 미술이라 그런 지 요리책 사진과 꽤 비슷한 비주얼도 나왔다.

남편은 매번 내가 해 내는 음식에 신기해하고 맛있게 먹어줬다.

하지만 입덧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밥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려 도저히 요리를 할 수가 없었다. 고구마와 포도가 없었다면 임신 초기를 어떻게 버텼을지 모르겠다.

출산 후 해외에서 독박 육아를 시작하게 되니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는 전쟁 같은 나날을 보내느라 또, 아이가 좀 크면서부터는 일을 하게 되면서 배달 음식으로 식사를 때우느라, 점점 집밥에서 멀어져 갔다.


세월은 흘러 해외 살이 19년 차, 이제는 아이도 컸고, 일에 치이지도 않는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집에서 해 먹는다.

비싼 돈 주고 입맛에도 안 맞는 외식을 하는 것보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이 더 맛있고 재미있다. 그리고 이제 요리책에 나온 정석대로 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인터넷에 검색하여 대충, 빨리, 후루룩 뚝딱 해치워버려서 요리 스트레스가 거의 없다. 

게다가 우리에겐 대기업 박사님들이 연구하신 맛있는 소스와 가루들이 있지 않은가.

심지어 몇 달 전부터는 다시다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국물 요리를 좋아하는 나에게 다시다는 한줄기 빛과도 같은 존재였다. 깊은 육수 맛을 위해 열심히 고아냈던 멸치, 다시마, 파뿌리, 양파, 각종 채소, 뼈 등등보다 빠르고 우월한 맛을 선사했으니까.

음식 솜씨 좋은 어머니마저도 미원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그래, 이 맛이야!'


작년에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만든 엄마곰 캐릭터는 '요리를 좋아한다'.

 

첫 번째 낸 그림책의 표지 그림도 '식사 장면'이다.


나에게 있어 '밥을 먹는다'는 행위는 생존이었고, 위로였다.

나는 언젠가 화려하고 갬성적인 요리 이야기가 아닌, 그냥 사람 사는 냄새나는 음식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시작해보려 한다.


집/밥/ 곰/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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