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든 면 요리를 좋아한다.
스파게티, 칼국수, 쌀국수, 짜장면, 우동...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20대 때는 분식과 빵을 하도 좋아해서 쌀을 안 먹고도 살 수 있었다. 대상포진에 걸리기 전 까지는.
몸이 안 좋아져 한의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약을 지어주며 '밀가루' 음식을 먹지 말란다.
그 당시엔 쌀국수를 몰랐다. 밀가루를 끊으려고 보니 내 사랑 면 요리는 모두 밀가루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심지어 간식으로 자주 먹던 빵 까지도.
주식도 밀가루, 간식도 밀가루.
그럼 나는 도대체 무엇을 먹어야 한단 말인가?
다행히 한국에선 다양한 옵션이 있었다.
결혼 후, 외국 살이를 하면서 내가 가장 그리워하고 좋아했던 음식은 당연히 면 요리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다 보니 갖은 스트레스로 배탈이 자주 났다. 심지어 장염에 걸려 뭘 먹어도 직통으로 쏟아내던 때가 있었다. 한의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약을 지어주며 또 말씀하신다.
"밀가루 음식 먹지 마세요."
나는 그 당시 집밥을 잘해 먹지 않았다. 요리책을 보며 정석으로 하는 요리만 할 줄 알았기 때문에, 바쁜 와중에 외국에서 집밥까지 해 먹는다는 건 엄청난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 먹는 음식은 너무 느끼하거나 자극적이어서 아예 먹을 수가 없었다.
대충 해 먹던 흰 죽도 질려 버렸다.
의사 선생님께 여쭤 보았다.
"잔치 국수도 안 되나요?"
"잔치 국수는 괜찮습니다."
시원한 멸치 육수에 잘 삶은 소면 넣어, 호박, 당근, 계란 지단, 김가루 올려진, 깔끔한 잔치 국수가 너무나 먹고 싶었다. 그런데 파는 곳이 없다. 손이 많이 가니 교민들도 잘 안 해 드신다. 집에서 배를 붙잡고 겨우 기어 다니는 내가 잔치 국수를 하려니 엄두가 안 났다. 매우 서러웠다.
역시나 궁하면 통한다고, 내가 잘 따르고 좋아하는 언니가 생각났다.
언니에게 사정 설명을 하고 국수 한 그릇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언니는 우리 집에 와서 국수를 끓여 주었다.
나는 기운 없이 누워 부엌에서 국수를 삶고 있는 언니의 등을 보았다.
언니의 등 너머 냄비에선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구수한 멸치 육수 냄새가 지금도 생각난다.
솔직히 무슨 맛이었는지 그 뒷 상황은 기억이 안 난다.
그저 매번 요리는 내 차지였던 '엄마인 나'도, 누군가가 해 주는 집밥이 필요했었나 보다. 아프니까 더더욱.
이제는 집밥을 잘 챙겨 먹고 있고 배탈도 잘 안 나지만, 잔치국수는 나의 소울 푸드이기에 자주 해 먹는다.
자주 해 먹다 보니 요령이 생겨 조리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가끔 김가루나 호박이 빠지기도 한다. 한국에서 파는 돼지 호박을 이곳에선 찾을 수 없어 색감을 위해 엉뚱한 초록 야채가 올라가기도 한다.
외국 살이에선 한국 정통의 레시피를 너무 따지면 안 된다. 대충 비슷하면 된 거다.
잔치 국수를 할 때는 평소 먹는 양 보다 그릇에 많이 담는다.
파, 마늘, 고추를 야무지게 다져 넣은 양념장도 한껏 넣어 섞는다.
먼저 국물 한 숟가락을 호로록 떠먹어 간을 본 후, 젓가락으로 잔뜩 면을 집어 입이 터져라 욱여넣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내 뱃속과 영혼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잔치 국수. 앞으로도 집에서 종종 해 먹을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