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알면 더 재밌는 국내여행기>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일제의 지배를 받는 일제강점기를 겪었다. 현재 살고 있는 우리가 그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곳곳엔 아직도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 중의 대표적인 곳이 바로 군산. “군산 여행” 하면 근대역사박물관부터 근대 건축관까지 빽빽한 근대 역사 탐방을 주로 하게 되지만 그곳을 순례하듯 다 가봐야만 그 당시 상황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군산이 과거와 현재가 함께 공존하는 곳인만큼 옛 공간에서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의미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교복 입고 철길 밟으며 추억 속으로?
군산 여행 오면 꼭 가는 필수코스 중 하나, 바로 경암동 철길마을이다. 나도 두 번 와본 군산 여행에서 이곳은 두 번 다 와봤다. 이곳에 오면 철길 주변으로 옛날 교복을 입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94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방직공장을 세우며 황무지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경암동이 이젠 사람들이 많이 찾을 수 있는 추억의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연령에 관계없이 이곳에 와서 옛 교복을 입는 순간 학창시절 속으로 돌아가게 된다. 어릴적 학교 앞 쭈그려 앉아 만들어 먹었던 달고나와 쫀득이도 구워먹고 학창시절 때 해보지 못했던 '전교회장' 완장도 차본다. 무엇보다도 우리 어머니 나이때쯤의 분들이 여럿이 와서 함께 옛 교복을 입고 사진 찍는 모습에 가슴이 찡해졌다. 이곳에서 어르신들은 향수를, 젊은 사람들은 색다른 추억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래도 우리가 이곳을 지나가며 밟는 이 철길이 몇 십년 전엔 어떤 곳이었는지 되새겨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1940년대에 신문용지 제조업체가 생산품과 원료를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든 철길. 지금은 통행이 멈추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추억으로 이곳은 다시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다.
군산의 포토존, 신흥동 가옥
일본식 주택 앞 인생샷?
군산에 가면 젊은 사람들에게 이색적으로 느껴져 핫한 곳으로 신흥동 가옥이 있다. 특히 신흥동 가옥 앞 잘 가꾸어진 정원에서 목조식 주택과 석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인기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사실 가옥의 구조가 아니라 아름다운 정원이다. 여행을 왔으니 예뻐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는건 당연하지만 사진 찍기에 앞서 이곳이 어떤 곳인지 짚어보고, 이왕이면 내부 개방할 때 찾아와서 이곳의 구조도 살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신흥동 가옥은 일제강점기에 군산에서 소규모 농장을 운영했던 일본인이 건립한 일본식 2층 목조 가옥이다. 기역자 모양이 붙은 두 건물과 일본식 정원, 그리고 큰 규모의 공간은 그당시 일본인 지주의 생활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가 사진 찍는 이곳이 여기에 남아있다는 것은 일제강점기 군산이 어떤 곳이었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개항기 일본인들의 핫플레이스, 군산
아프지만 잊지말아야할 역사
군산은 일제강점기 때 최고의 곡창지대인 호남에서 생산한 쌀을 일본으로 반출하는 거점이었다. 개항을 하며 일본인 상인들이 물밀듯이 이주하여 수많은 일본인들이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군산에는 일본식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고, 쌀 수탈의 흔적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 당시의 흔적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으로 옛 군산 세관이 있다. 이는 일제강점기 시절 군산항을 통해 드나들던 물품에 세금을 거두던 곳이다. 그 당시 쌀 등을 수탈당하던 아픈 과거가 담긴 곳이지만 그래도 후대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역사 현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곳에 전시되어있는 일제강점기 사진과 세관 사료들을 둘러보면 좋을 것이다.
초원사진관 옆 흑백사진관,
아날로그 감성을 담아드립니다
어렸을 적이지만 그때 본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여운은 컸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정원(한석규)이 변두리 사진관을 운영하며 다림(심은하)을 만나 메말랐던 삶이 촉촉해지는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에 그 사진관 앞에 걸려있던 다림(심은하)의 사진. 초원사진관엔 영화 속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어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추억의 장소가 되지만 그 영화를 보지 않았거나, 잘 모르는 젊은 사람들에겐 이곳에 대한 감흥이 적을 수 있다.
그래도 요즘 핸드폰으로만 사진 찍는 것이 익숙한 우리에게 허름한 사진관은 생소하게 느껴지면서도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시켜준다. 그래서 이곳에 왔다면 초원사진관 옆 흑백사진관에서 흑백사진 한 장 찍어보는걸 추천한다. 요즘 레트로 열풍으로 흑백사진이 인기 있어지면서 '인생네컷' 흑백 스티커사진 인기가 많아졌다. 하지만 스티커사진 보다는 잔인하지만 포토샵 되지 않는 5천원짜리 흑백사진 한 컷은 우리에게 또다른 추억이 된다.
옛 물건들을 마주하는 시간, 차 한 잔
군산에는 일본식 건물을 개조해 만든 공간의 카페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으로 1930년대 무역회사였던 “미즈상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미즈커피”가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 때 있던 쌀 창고를 개조해 만든 카페 “미곡창고 SQUARE 3.5”나 카페 “틈”도 힙하다.
한편 옛 골동품들이 모여있는 정겨운 분위기의 공간, “카페 196”도 있다. 군산 토박이인 개인소유지를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꾼 곳으로 그동안 모은 개인 소장품을 둘러볼 수 있는 옛 골동품 전시장도 있다. 대체 이런 옛 물건들을 어떻게 다 모았을지 할 정도로 흑백 TV, 비디오테이프, 옛 영화 포스터, 옛 교실 풍경 등을 볼 수 있어 카페에 와서 차 한 잔 하며 추억의 박물관에 온 느낌이 든다. 이곳에서 옛 물건들을 구경하며 지난 시절의 그리움을 느끼기도, 신기한 것에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특히 건물 앞에 놓여진 우체통이 누군가에게 편지 한 장 부치고 싶은 아련한 마음이 들게 한다.
요즘 레트로 콘셉트가 유행이다. 가요 대신 LP판을 틀어주고, 세련된 인테리어보다 할머니 집에 있었을법한 옛 골동품으로 공간을 꾸민다. 하지만 레트로 열풍은 맛집과 카페, 패션, 음악 등을 넘어서 여행에까지 확대시킬 수 있다. 많은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바뀌는 요즘 세상에 그 당시로 돌아가보는 시간 여행은 더 소중하게 기억될 수 있다. 굳이 여행을 갈 때 무언가를 준비할 필요 없다. 레트로 감성 하나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