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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훈 해설위원 Jun 03. 2017

푸에르토리코 프로레슬러 L과 나

원칙이 있는 삶

 오른손 펀치가 L의 턱에 제대로 꽂혔다. 억 소리를 낼 틈도 없이 고꾸라졌다. 원래 넉클 파트로 상대방 얼굴을 때릴 일이란 프로레슬링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타격은 주로 전완의 근육이 두터운 부분으로 내려치고 주먹을 던지는 해머링도 임팩트 직전에 주먹에 힘을 푸는 것이 불문율이다. 프로레슬러라면 중력의 법칙처럼 무겁게 지켜야 하는 룰이다. 하지만 L은, 푸에르토리코에서 온 이 녀석은 분명 내가 하지 말라고 경고했음에도, 임플란트가 박힌 지 얼마 안 된 내 안면에 드롭킥을 넣었다. 9 볼트 박스 건전지를 혓바닷에 댔을 때와 같은 찌릿함과 비릿함이 입 안을 떠 다녔고 순간 베수비오스 화산이 폭발하듯 분노가 전신을 타고 흘러내렸다. "죽여버리겠다" 그때만큼은 진심이었다. 부러진 앞니 때문에 대체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지난 몇 달 동안 고생을 했는데 또다시 그 과정을 반복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반사적으로 먼저 나간 주먹을 회수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아니 찾지 않았다.  


 링은 야생과 문명의 원칙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때론 로드킬처럼 처연하고 너무나 슬프게 그 흔적을 남기지만, 결론적으로 대개 공평하고 공정하다. 피가 튀기고 뼈가 부러지며 현찰과 여자가 오가는 세계. 그래서 대립되고 모순적인 원칙들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상대방을 떨어뜨릴 땐 후방낙법을 취할 수 있도록 각도를 만들어 줄 것, 발로 밟은 땐 끝이 아닌 바닥으로 할 것, 꺾기 조르기 기술은 언제나 새끼손가락 하나만큼의 여유는 줄 것 그리고 대기실 내 넓은 평상이 있거나 에어컨 바람이 닿는 가장 좋은 자리는 대개 너의 자리가 아니라는 것 등등이다. 이런 원칙엔 시합 전 '여기는 심하게 다쳤던 곳이다. 절대로 여기를 때리지 마라'라는 일종의 '부탁'도 존재한다. 크리스마스가 되자 참호전 대신 캐럴을 같이 부르며 휴전했던 영국군과 독일군의 1차 세계대전 때의 낭만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가장 싼 티켓으로 오느라 비행기를 두 번 환승하면서 온 L은 그 원칙을 어겼다. 원칙을 어겼으니 나도 그에 대해 대응할 수밖에 없다. 지금 여기서 내가 물러서는 모습을 보인다면 앞으로도 나와 맞서게 될 모든 이들은 원칙을 무시하고 나를 짓밟으려 들것이다. 어쩔 수 없다.  나는 물리적 타격을 이용해 링 위에서의 원칙을 지켜야만 했다. 밟혔다면 밟아라.


 링 밖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링 안이 아니라 밖에선 어떠한가. 헤모글로빈이 통용되지 않는 삶 속에서는 어떠한가. 솔직히 난 자신이 없다. 링과 달리 자신의 삶 속에서 원칙을 지키는 남자는 결코 흔하지 않다. 원칙을 지키는 남자란 심지가 단단하여 늪처럼 무른 땅 위에서도 중심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남자가 되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때론 엄청난 저항과 함께 대단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대개 손해보다는 작은 이익을 저항보다는 안전하고 편안한 길을 택한다. 그렇게 거세가 된다. 원칙을 잃어버린 남자는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지 못한다. 손쉬운 자위를 선택할 뿐 진정한 성취를 위해서 노력하지 못한다. 그래서 술에 취하고 여자로부터 쉽게 대접받을 수 있는 룸살롱으로 기어들어간다. 여기선 약간의 현찰만으로 원하는 것을 한시적으로나마 모두 구할 수 있다. 그곳에선 생태계 내 최고 존엄이며 최상위 포식자다. 지갑 안에 현찰이 있는 한, 카드 한도가 남아있는 한. 하지만 자신의 존재 의미를 6평 남짓한 룸 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남자라니. 그게 과연 사는 것일까.  


 월드컵의 기억을 떠올리면 80년 대부터 시작해서 여러 개의 대회가 떠오르는 40대가 되어버린 남자들에게도 변명거리는 있다. 이 남자들의 문제의 근원엔, 부모가 있다. 자신들 인생의 오답노트를 갖고 있는 부모는 아들의 성공을 기원하며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들이 성취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결핍과 원망으로 아이를 키웠다. 물론 부모의 보살핌이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유효기간이 있다. 어느 정도 자기 몸을 건사할 수 있게 된다면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대주주의 권리를 하나도 놓치기 싫었던 부모들은 아들을 결코 놔주지 않았다. 그렇게 10년 20년 세월이 지나자 자기 삶에 대한 원칙도 없이 오직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경제적 이득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한 채 사람과 짐승 사이를 오가는 존재가 되어버리고만 것이다. 부모라는 관리인이 노쇠하자 언제라도 무너질 준비가 되어 있는 폐가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서, 남들이 봤을 때 이미 상당히 높은 직급까지 올랐고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다고 해서, 진정한 어른이 된 것은 아니다. 사회경제적 지표상으로 봤을 때 즉 정부 통계를 위한 여러 자료 속에서 생물학적으로, 경제적으로, 직업 성취도 면에서 어른에 속한 것이지 그게 진짜 어른임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진짜 어른은, 진짜 남자는, 혼자 생각하며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즉 자신 만의 확고한 원칙을 갖고 있는 남자다.  원칙이 없는 남자는 꿈과 야망이 없는 남자다. 꿈과 야망이 없다면 원칙 없이도 살 수 있다. 그 무엇이든 더 윗단계로 올라가고 싶다는 상승 욕구가 없는 남자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40대의 영역에선 끊임없는 양력을 필요로 한다. 비행기로 치자면 이제야 활주로를 내달린 끝에 막 바퀴가 떠오르기 직전인 것이다. 그게 청춘 아니냐고? 아니다. 청춘은 급가속의 시기다. 이륙을 위한 추진력을 만들기 위해서 기내에 탑재된 연료의 시간당 소모량이 가장 많은 시기다. 오직 앞만 보고 달릴 뿐이며 멈출 수도 없다. 청춘의 테마가 생존인 이유는 가감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멈추면 죽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남고 건너온 자들에게 '다시 청춘으로 돌아갈래?라고 한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는 이유이기도 하다.  


 푸에르토리코에서 이 먼 이국 땅까지 왔던 L은 그 뒤로도 계속 시합을 뛰었다. 아니 정말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다했다. 봉고차를 타고 만 하룻 만에 서해와 동해를 오가며 시합을 뛰는 가혹한 일정이라도 모두 소화했다.  L처럼 이렇게 삶의 벼랑 끝에서  돈 몇 푼에 완력을 팔아먹고사는 이들을 흥행사는 선호했다. 특히 흥행사 입장에서 L은  가슴에 튜브가 꽂힌 채  조그만 철창 안에 갇힌 반달 가슴곰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정력에 좋은 쓸개즙을 그 자리에서 마실 수 있다는 호객꾼의 말에 호기심과 불안함에 커진 동공을 감추지 못한 채 '농장'에 들어온 이들은 우리 안에 갇혀 있는 반달가슴곰을 보며 반색한다. 껄껄 큰소리를 내며 웃고 호객꾼과 장난을 치며 기념사진을 찍기도 한다. L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보더라도 '외국인'같은 외모는 행사장에서 최고의 인기상품이었다. 부리부리한 눈매와 하관이 발달된 얼굴, 까무잡잡한 피부와 가슴에 무성한 털은 그 자체가 랜드마크였고 특산품이었다. 그런데 L은 운동신경은 좋았지만 레슬링 센스는 빵점이었다. 종종 경기의 흐름을 망쳤고 그 결과 정말 세게 얻어맞는 경우도 있었다. 미국에서 온 머리가 천장에 달랑 말랑 한 거구의 레슬러와 시합을 하다가 상대의 심기를 건드렸고 정말 심하게 맞아 들것에 실려 나온 적도 있었다. 흥행사는 비자 문제는 물론 보험료와 치료비 문제 때문에 그냥 이불에 둘둘 말아서 체육관 인근 컨테이너로 만든 간이숙소에  L을 그냥 처박아두고  방치했다. 지방 흥행이 끝나고 일주일 정도 지난 후에 걱정이 되어 가봤더니 L은 절뚝거리며 걸어 나와 멋쩍게 씩 웃으면서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내가 사간 보름달 빵과 바나나 우유를 L은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한 시즌인가를 더 뛰던 L은 일본으로 떠났다.


 주커버그는 정말 대단한 색목인이다. 그가 만든 페이스북은 과거란 우물 속에 빠져있던 인연을 우연이란 두레박으로 다시 지금의 현실 속으로 길어 올린다. 가을에 있을 프로레슬링 대회 선수 섭외를 위해서 외국인 레슬러들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돌다가 L을 발견했다. 거의 15년 만의 조우다. 그도 나도 청춘의 영역은 한참 벗어났다. 포스팅 속 L은 약간 몸이 불었으나 표범무늬 타이즈를 비롯해 가슴에 털까지 예전 그대로였다. 다른 포스팅을 보니 아내와 네 명의 아이도 보였다. 예전 용인 숙소 인근에서 회식을 했을 때 스폰서가 따라주는 폭탄주를 억지로 마시고 잔뜩 취했던 적이 있었는데 내가 취기에 L의 지갑을 뺃어서 사진을 구경한 적이 있었다. 그 여자 같았다. 그런데 확실하지는 않다.  L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표정에서 사랑과 존경이 느껴졌다. L의 얼굴에서도 가장의 품위가 느껴졌다. 다른 사진에는 20년은 된듯한 도요타 픽업 자동차도 보였다. 다소 남루하지만 잘 정리된 실내에선 가정의 따뜻함과 엄숙함이 느껴졌다. 어쩌면 L은 링 위에서의 원칙은 잘 지키지 못했더라도 링 밖의 세상에선, 원칙을 지키며 더 나은 삶을 추구했던 남자가 아니었을까. 어느 세계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가. 아니 나는 원칙을 세운 적은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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