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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훈 해설위원 Jun 04. 2017

고교 동창 L과 나

죽음에 대한 열정이 삶에 대한 열정보다 컸던 L

 19 대통령의 취임식을 봤다. 캠프 해단식엔 가지 않았다. 대신 난 바이크를 타고 동쪽으로 향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과 너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건 분명 '좋은 일'이다. 함께 좋은 사람들과 뜻을 같이한다는 것은. 하지만 남자는 고립되어야 한다. 혼자 있어야만 일어서서 움직일 이유를 찾기 때문이다. 흔하디 흔한 남자로 살고 싶지 않다면 혼자서 움직여야 한다. 동쪽이다. 일출을 향해 떠난다. 달을 봤으니 이제 해를 봐야겠다.


 여의도를 출발해 수도권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내달렸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딱히 대자연을 선호하는 것도 아니다. 와이파이와 편의점이 없는 곳에서 나란 인간은 어찌 방향을 잘못 잡은 치명적 실수 때문에 뭍에 올라온 채 직사광선에 노출된 물고기처럼 눈을 끔뻑거리며 기력을 잃어버린다. 몇 해 전 지상파 TV 고발 프로그램 진행자를 맡았을 때도 가장 고역스러운 일은 조직 폭력배, 불법 도박꾼, 임금 체불 악덕 사장들을 직접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외지고 한적하다 못해 황량하기까지 한 폐공장, 개활지에서의 무료함이었다. 덧붙여 말하자면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자연이란, 시골이란 그런 곳이 아니다. 오직 관광객의 입장에서 안전과 오락을 돈으로 샀을 때만 즐거운 곳이다. 현대를 살고 있는 인간은 삭막하기는 해도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문명이 없이는 살 수 없다.


 L이란 선배가 있었다. 아니 선배가 아니라 같은 고등학교 같은 학년이었으니까 친구라고도 할 수 있다. 원래 1년 선배였지만 여러 이유로 나와 같은 학년이 되었던 이였다. L은 약간 작은 키에 가냘픈 몸매에 몇 세대 이전의 일본 청춘 영화에 나올 법한 곱상한 라인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외모와는 달리 왈패들과 자주 어울리고 패싸움을 벌이며 시골 시장터를 몇 번씩 뒤집는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인물이었다. L과 나는 굉장히 친하게 지냈는데 내가 L의 집에 놀러 갔다가 술에 취해 마룻바닥 위에 그대로 고꾸라져 잠들었고 장시간 차가운 냉기에 노출되었던 어깨 회전근이 무엇인가 잘 못 되었는지 오른팔이 아예 며칠 동안 전혀 위로 올라가지 않아 한참 동안 놀림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L은 서울로 올라갔고 수 년뒤 대학 휴학 후 나도 따라 올라가 L과 연락이 닿았다. 난 잠실 쪽에서 L은 강남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몇 달 동안 전화로만 안부를 물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을 뿐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무렵 무더위를 몰아내는 간들바람이 건물 사이사이를 헤집고 다닐 때 갑자기 L이 보고 싶어 졌다. 종업원으로 일하던 식당에서 테이블 정리를 끝내고 L을 만나러 잠실에서 압구정역으로 갔다. 주소지를 물어 물어 L이일하고 있다는 맥주집 앞까지 도착했고 헬멧을 벗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닥부터 찐득하니 눌어붙은 술냄새와 담배냄새가 그날따라 역겨웠다. 그런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L이 죽었다는 것이다. 갑자가 나타는 불청객 때문에 L의 죽음을 이야기함으로써 억지로 잊고 있던 불쾌한 기억을 다시 헤집어 꺼낸 탓에 짜증이 난 술집 사장은 휙 돌아서 저 멀리가 가버렸다.

"철커덩"기어를 한 단 내리자 공랭식 박서엔진만이 갖고 있는 경쾌한 충격음과 함께 정신이 돌아왔다. 방금 전까지 직진 도로에서 일정한 속도로 크루징을 하면서 왠지 L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를 회상할 때가 아니다. 눈 앞에 있는 급격한 높낮이 변화와 함께 천하장사가 휘어 버린 프라이팬처럼 구부러진 코너를 공략해야만 한다. 단순한 성공과 실패의 문제가 아니다. 고속도로와 자동차 전용도로가 많이 생기면서 평일의 지방국도 특히 강원도 쪽 도로는 매우 한가하다. 직진 도로에서 이러한 한가함은 쾌적함을 의미하지만 이런 급한 코너링이 이어진 도로에서 만약 길 밖으로 나가떨어진다면 절벽 밑으로 굴러 떨어진다면 누군가의 눈에 들어오거나 또는 구조대를 부른다고 하더라도 골든타임이 훌쩍 지날 수도 있다. 자력으로 생존해야만 한다. 먼저 고개를 돌려서 시선을 코너의 출구 쪽으로 두고 뒷바퀴가 지면을 긁어대는 힘 즉 트랙션을 엉덩이로 확인한다. 양어깨를 풀어주면서 시선과 목뿐만 아니라 어깨까지 출구를 향하도록 한다. 오른쪽 스로틀 조작을 통해서 적절한 양의 혼합기를 인젝션을 통해서 엔진 연소실에 집어넣고 니 그립과 함께 한 번에 돌아나간다.

약 십 여분 간의 코너링을 끝내자 다시 한적한 직진 위주의 코스가 나타났다. 그러자 L이 다시 떠올랐다. 나중에 이런저런 소문을 취합한 바 L은 삶에 대한 열정보다 삶의 포기에 대한 열정이 더 컸던 것 같다. 스스로 결정을 내렸던 것 같다. 여러 복잡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L의 집에선 술과 담배를 드러내 놓고 할 수 있었다. L의 어머니가 용인했기 때문인데 아버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내가 술에 취해 택시를 타고 L의 집까지 갔다가 다음 날 어머니가 끓여주신 북엇국을 먹었던 기억이 났다. 시원하긴 했지만 맛은 별로 였다. 어떤 이는 L의 원래 의도는 죽음 자체가 아니었던 것이라도 말한다. 경고의 의미였는데 실수였다는 것이다. 모르겠다. 그땐 부고를 듣고 돌아가는 길엔 헬멧을 쓰고 울고 있었다. 눈물이 흘러나와 헬멧 내장재를 적셨던 기억이 있다. 오늘은 울진 않았고 그저 생각만 났다.


 한때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노스페이스 패딩 재킷이 유행했다. North Face는 북벽을 의미한다. 북반구 고지대에서 북벽은 응달이 많아 험로가 많다고 한다. 험로 돌파를 위한 고기능성 아웃도어 재킷이 어찌 된 일인지 한국의 남자 중고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또 다른 교복처럼 되어버렸다. 난 이 패딩 재킷이 돌풍을 일으킨 이유는 따뜻함에도 있지만 풍성한 볼륨에 방점이 있다고 봤다. 토출구가 터져나간 소화전처럼 자아가 폭풍처럼 성장하는데 그걸 구현할만한 경제적, 사회적, 육체적 능력이 없다. 이때 단단하지는 않지만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노스페이스 패딩 재킷으로 좀 더 거대화된 자신을 보며 만족하는 것이다. 중학생이, 고등학생이 '미성년자'가 이렇게 하나의 아이템으로 더 강해진 자신을 생각하며 자위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허세는 저 연령대가 가진 특권이며 어떤 어른이라도 침해할 권리가 없다. 중2가 중2병인 것은 병이 아니다. 문제는 어른이 이처럼 패딩 재킷으로 자신을 위로하며 위안할 때 정말로 볼썽사나운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들은 내가 어떤 회사에 다니는데, 내가 아는 사람이 국회의원인데, 내가 일 년에 얼마를 버는데 라며 자기 앞에 있는 사람보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높은 지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받으려고 한다. 자신의 학벌, 학력, 인맥, 소득, 자동차 배기량이라는 패딩 재킷을 가지고 자신을 과장되게 보이려고 노력한다. 이 패딩 재킷을 벗으면이 어른들에겐 아무것도 없다. 단 한마디도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할 줄 모른다. 그러니 룸살롱 같은 곳으로 자리를 옮기자고 한다. 술의 힘을 빌어, 그리고 종업원 앞에서 우쭐하는 자신을 스스로 보며 더 큰 패딩 재킷을 입고 용을 쓴다. 하지만 이런 어른들은 정작 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싸우지 못한다. 그저 비싼 패딩 재킷에 상처가 날까 두려워 도망가거나 주먹 한 번 날리지 못하고 억 소리 내며 쓰러진다. 심지어 일부러 기절한 척도 한다.

긴 터널을 지날 때마다 온도계를 확인한다. 수치상으로는 1도 정도밖에 안 내려갔지만 체감으론 계절이 바뀐 것 같다. 물안개 때문인지 더 춥게 느껴졌다. 반팔 셔츠에 매쉬 재킷을 입었는데 긴팔로 입을걸 그랬다. 그립 히터를 1단으로 작동시킬까 하다가 아직은 아닌 것 같아서 맘을 바꿨다.

대신에 오디오를 작동시키고 B.B. King / The Thrill Is Gone을 재생했다. 이번 여행에 맞추어 USB 메모리에 넣어두었는데 역시 난 블루투스 헤드셋보다도 스피커로 듣는 쪽이 맞는 것 같다. 왕의 절절한 목소리가 갑자기 맘을 달뜨게 했다. 온도가 약간은 올라간 것 같았다.


달리지 않는 자는, 시멘트로 만들어진 집을 떠나지 않는 자는, 생존에 대한 갈망을 느껴보지 못한 남자다. 강철로 만들어진 프레임과 고출력 엔진이 만들어낸 교향곡에 몸을 맞춰본 남자만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안다. 아니 그게 뭐라고. 내가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농담 같은 거라고. 44살 중년 남자를 태우기 위해 이종 용접 프레임이 웬 말이며 100마력이 넘는 박서 엔진은 또 무어란 말인가. 하지만 전륜은 나에게 속삭인다. 방향을 정하라고. 후륜은 주장한다. 더 많은 혼합기로 더 큰 추진력을 만들라고. 모두 내가 선택한다.


난 어떤 어른일까. 현재 남은 연료로 140 km 정도를 더 달릴 수 있고 그 정도면 동해를 옆에 두고 어느 정도 북상 내지는 남하할 수 있을 것 같다. 급유를 할 때쯤이 면내가 어떤 어른인지 결론이 나와있을까. 

참 L은 만약 살았다면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L은. 모르겠다.


"철커덩" 다시 코너가 눈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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