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배를 젓는 우리의 팔처럼, 과거를 향해 밀려가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처음 프로레슬링에 입문했을 때였어. 온몸이 시커먼데 이글거리는 눈빛이 마치 불이 붙은 것 같아서 ‘번개탄’이란 별명이 붙은 띠동갑이 넘는 선배가 있었어. 어깨가 떡 벌어지고 팔은 마치 오랑우탄마냥 땅에 길게 늘어진, 강해 보이는 남자였어. 지금은 배기가스 때문에 쓰지 않는 투사이클 스쿠터를 타고 다녔는데 머플러에 구멍이 났는지 소리가 엄청나게 컸지. 도장 안에서 저 멀리 그 배기음이 아주 작게 들리다가 2차 대전 독일군 폭격기 슈투카가 급강하할때처럼 귓전을 때리는데 정말 무서워서 다리가 떨릴 정도였어. 준비운동을 시키는데 팔굽혀펴기 100개, 복근 200개, 스쿼트 300개를 3세트를 하는 거야. 그 후엔 앞구르기를 하다가 뒷구르기를 하는 거야. 언제까지? 간단해. 토할 때까지.
입 안에서 탄 종이 냄새가 나더라고. 한켠엔 어른 허벅지보다 굵은 버킷이 있었고, 정 급할 땐 거기에 쏟아내는 연습생들도 있었어. 회칠을 한 체육관 허연 벽에 손자국과 오물이 있었는데, 처음엔 몰랐던 그 자국들의 그 정체를 나중에야 알게 됐지. 이걸 못 견뎌서 그랬을까? 훈련이 끝나고 합숙소에서 잠을 청하면 새벽에 숲속에서 구슬픈 새소리가 함께 인기척만 내고 연기처럼 사라지는 이들이 속출했어. 아마 달랐을 거야. TV로 보면서 관객의 입장에서 보는 것과 달리, 직접 링에 올라갈 준비를 한다는 것은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진창 속을 걷는 것처럼 더디고 짜증 나는 일이었으니까. 나도 그랬어. 나는 회사도 다니는 직장인이다 보니까 이런 기본 체력 훈련을 따라가는 게 너무 힘들었지. 기술 연습은 언제 하는 걸까? 클로스라인은 언제 배우지? 바디슬램으로 번쩍 들어서 메치고 싶은데 왜 연습도 안 시키는 걸까? 나중에 일본 선수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곳은 더 엄격해서 아예 입문하고 3년까지는 링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심지어 등진 채 훈련을 시키는 곳도 있다고 하더군.
난 이걸 왜 버텨냈을까? 그건 내가 원하는 삶이었기 때문이야. 도덕적 의무감이나 교육에 의해서 강제된 것이 아닌, 내가 정말 원하는 삶으로 갈 수 있는 길이라 믿었기 때문이야. 당연하지. 선생님이 나보고 프로레슬러가 되라고 했나? 부모님이? 사회가? 아니야. 순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에,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한 번 오려면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마지막엔 30분 가까이 걸어야만 하는 이곳 도장에 온 이유는 오직 하나, 내가 선택한 길이었기 때문이야.
몇 시간씩 계속되는 기본 체력 훈련은 그 목적과 의미를 생각하지 않으면 어쩌면 그저 고문에 가까워. 하지만 그 최종 결승점을 생각하면 순식간에 가치 있는 것이 되어버리고 말지. 그리고 무의미한 게 아니더라. 풀밭에 자라난 잡초 중에 어떤 것이 더 빨리 크는지 바라보는 게 더 재미있게 느껴질 정도로 지루하고, 젖산 가득한 기본 체력 훈련이 결국 시합에서 나를 구하고 상대를 구하더라고. 상대와 맞붙는 순간 체력이란 한여름 인도에 어린아이가 떨어뜨린 아이스크림마냥 순식간에 녹듯이 사라져버려. 심장 박동수는 순식간에 150에서 180을 넘겨버리고 온몸의 근육들은 광배근, 대퇴사두근, 척추기립근 순서대로 수축과 반복을 하면서 근세포 안에 담고 있던 에너지를 모두 써버리지. 물론 지금까지 여러 운동을 해왔기에 이런 순환엔 적응이 돼 있지만 ‘링’에선 모든 게 너무 빨라. 그리고 너무 격렬해서 100m 달리기마냥 전력 질주를 하다가 끝나버리는 거야. 데뷔전 때는 몰랐는데, 십여 경기 뛰고 나니까 그때 했던 기초 체력 훈련을 다시 떠올리게 되더라고.
그렇게나 지루하고 하기 싫었던 훈련들이 없었더라면 벌써 포기했겠구나. 아무 생각 없이 허겁지겁 쌓아 올린 젠가처럼 몇 뭉치 뽑지도 못하고 그냥 숨소리에 무너졌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리고 프로레슬링은 상대 선수의 공격을 받아주면서 경기를 관객들이 이해하기 쉽게끔 하는 장르적 특성이 있어.
복싱이나 종합격투기는 진검승부의 틀 안에서 때론 지루한 공방이 나오지만, 프로레슬링은 숙달된 요리사가 손님의 취향에 맞추어 전채와 주요리, 곁들임, 후식을 재량껏 세팅해서 내놓는 것처럼 기승전결과 함께 클라이맥스를 조절하지. 아뮤즈부쉬로 록업을 내놓고 찹으로 기대감을 높인 다음 트러플 크림 수프로 바디슬램을 내놓는거야. 맞아 바디슬램은 실망을 시키는 법이 없지. 그리고 오늘의 메인요리는 뭘까? 스피어? 저먼 스플렉스? 여기서 쉐프의 ‘실력’이 나오는거야. 너무 뻔하면 안되고 너무 기대를 벗어나서도 안되거든. 혹시 알아? 마지막 디저트로 마카롱 대신 다이빙 센톤을 내놓을지.
쉐프가 주방을 자신의 캔버스로 활용하듯 레슬러도 링에서 자신의 육체로 표현을 해내는거야. 또한 상대방을 공격하되 심각한 부상을 입히지 않도록 노력해야 해. 그런데 내 체력이 먼저 빠져버리면 불완전한 형태로 기술이 들어가고 의도하지 않게 상대방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힐 수도 있어. 즉 체력이 있어야만 상대를 다치지 않게 할 수 있는 거야.
신인 시절 용인 모현면 체육관 주변엔 지루함만 가득했어. 그 지루함은 비중도 높아서 공기 중을 떠다니거나 날라가지도 않고 한 줄기의 변주도 없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지. 그리고 훈련이 끝나면 코를 송곳으로 찌르는 암모니아향 가득한 땀냄새가 아주 약간의 변화만 주었을 뿐이야. 서울 대림동에서 전철과 버스를 서너 번 갈아타고 마지막엔 2km 남짓 걸어야만 했던 도장 가는 길. 완전히 소진된 육체를 간신히 건사하며 돌아왔던 길. 색으로 따지면 무채색, 색감과 채도도 없는 무채색의 그날 하루를 빈틈없이 메꾸고 있었어. 그런데 그 길이 의미가 없었을까.
바로 들어서자마자 뺨을 간지럽히는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괜히 희죽거리면서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있는가 하면, 한여름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 사이로 삐죽삐죽 튀어나온 실외기 사이로 지나가는 것처럼 열기와 짜증으로 가득 찬 길도 있어. 물론 실외기 열풍 보다는 봄에 부는 서풍이 좋지.
하지만 그 길을 걷고 있을 땐 몰라. 이 여정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신이 내려준 전두엽과 편도체를 쥐어짜듯 사용해봐도 도통 이 길의 의미를 모를 때가 있어. 하지만 끝까지 걸어본 사람만은 알 수 있어. 그 길이 얼마나 더웠는지, 얼마나 막막했는지조차 기억을 지우고 나면 남는 건 그 길을 걸었다는 단단한 사실뿐이라는 걸. 봄바람이 불어오던 순간도, 한여름 실외기의 열기마저도 결국 나를 밀어붙인 힘이었다는 걸 깨닫게 될거야. 길의 의미는 걸어본 후에야 완성된다. 그러니 머뭇거리지 말고 걷자. 어느새 발끝에 맺힌 땀이 길 위의 꽃을 피울 테니까.
- 인간어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