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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훈 해설위원 Jul 01. 2024

검투사 같았던 귀족 같았던 주말

검투사 같았던 토요일

6월 29일과 30일. 아주 농밀한 주말을 보냈다. 토요일 낮엔 일산에서 권투대회 세컨을 보았다. 원래 내 경기도 있을 뻔했지만 사정상 연말로 연기되었고 내 권유로 입문했던 분의 세컨을 보게 된 것. 경기내용은 훌륭했다. 역시 노력은 인간을 배신하지 않는다. 인간이 노력일 배신할 뿐이다. 이후 홍대로 넘어가 프리버드 클럽에서 프로레슬링 매치를 했다. 방금 전까지 링 밖에 있었는데 이제 링 안으로 들어갔다. 메탈밴드의 공연과 프로레슬링이 협업을 한 이벤트인데 덕분에 엄청난 실력을 가진 분들의 노래와 연주도 즐기며 상대를 바닥에 메쳤다. 중간에 드럼으로 몇 번 맞기도 했는데 연주와 합이 맞았다면 더 좋았을 뻔했다. 경기를 끝내고 나오자 비가 쏟아졌다. 일산에서 권투대회 뒤풀이에 참석하기 위해서 택시를 잡았는데 기사님이 날 태우자마자 뭐가 신기한지 계속 뭔가를 물어본다. 이것저것 답해주다가 그때 알았다. 지금까지 내가 먹은 것이 커피 두 잔뿐이다. 오전에 일어나자 병원에서 체외충격파 치료를 받는데 담당직원의 실수로 내 순서가 뒤로 밀렸다. 권투대회 세컨보러 갈 때까지  칼로리를 섭취를 시간을 잃어버렸고 다시 홍대로 급히 나와 내 시합을 준비하다 보니 1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섭취한 것이 커피 두 잔과 물 밖에 없었다. 인지하마자 극심한 허기가 몰려오는 차에 택기사님이 실수를 하셨다. 자유로에서 일산동구청 쪽 나들목으로 빠져야 하는데 폭우 속에서 긴장을 하셨는지 그낭 지나친 것. 순식간에 거리가 5킬로미터가 늘어났다. 연신 미안해하시며 여기서 미터기를 끄자고 하시는데 괜찮다고 했다. 이 도로 위에서 그는 내 목숨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 임무만 잘 완수해 주면 된다. 회식장소에 도착해 내리면서 악수도 했다.


로마귀족 같았던 일요일

일요일 아침. 전날의 여흥이 침대 옆 벗어둔 옷에서 그대로 올라온다. 시합도 뛰었으니 어디 아플 법한데 멀쩡하다. 이럴 때도 있어야지 하면서 세면대 앞으로 가보니 왼쪽 가슴에 손도장이 시퍼렇게 찍혀있다. 찹대결과 엘보우스매싱의 흔적이다. 하긴 쉽게 끝날 리가 없지 라면서 세안을 하는데 헤죽헤죽 웃음이 나온다. 왜냐하면 오후엔 대학로에 연극을 보러 가기 때문이다. 연극 '콤플렉스' 이미 두 번을 봤는데 세 번째 관람이다. 이런 온도차가 있는 주말이라니. 웃음이 나올만하다. 어제는 콜로세움의 검투사였다면 오늘은 로마 귀족이다. 배우들의 열연을 바로 눈앞에서 즐기고 오늘이 마지막 공연이라 그들과 맥주도 한 잔 할 수 있다. 어쩌면 영국 황실이다. 콤플렉스에는 햄릿, 이아손, 리처드 3세, 스탠리,보이첵  등 유명희곡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원전이 궁금해서 관련된 책들도 예스 24에서 주문해 놨었다. 막공 전까지는 다 읽어보고 싶었는데 시합 때문에 아쉽게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밖에 읽지를 못했다. 그래도 미리 책 좀 읽었다고 스탠리가 술 타령할 때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이 공간에서 이 배우들의 공연으로 '콤플렉스'를 보는 것은 이제 내 생애에서 두 번 다시없을 확률이 크다. 이 유한함이 연극이라는 문화상품의 가치를 높이기도 한다. 뒤풀이에서 작가, 연출, 배우, 스텝분들과 술잔을 함께 기울이는 영광된 시간을 가졌고 극 중 대사를 몇몇 배우분에게 부탁해서 들어보기도 했다. 같이 관람했던 분들과 앞으로 오늘 인연을 맺은 배우들의 공연을 계속 팔로우하기로 했다. 기회가 되면 커피차 이벤트 같은 것도 해보려고 한다.


 하반기 계획

그러고 보니 올해 상반기 마지막 이틀을 정말 멋지게 썼다. 48시간 동안 복싱대회 세컨, 프로레슬링 출전, 헤비메탈 콘서트 관람, 연극관람, 좋은 사람들과 대작까지. 노르딕 신화의 발할라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더 의미 있는 것은 이 일련의 행동들이 모두 나의 나의 의지대로 주체적으로 설정된 것이라는 점이다. 자청해서 누군가를 코칭하고 자청해서 시합을 뛰고 자청해서 관람을 했다. 이렇게 48시간을 주도적으로 나를 위해서 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 사실 일요일 오전 눈을 떴을 때 연극을 보러 간다는 생각에 침대 위에서 살짝 눈물이 나기도 했다. 이 48시간의 세계에선 이 세계관에선 내가 조물주고 절대자다. 앞으로 내가 이런 48시간을 다시 만날 일이 있을까. 아마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계속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다. 홍대 헤비메탈과 대학로 연극을 하반기에도 적극적으로 이입하려고 한다. 공연장을 찾으려면 평일에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게다가 7월부턴 본격적으로 프로레슬링 '회사'의 대외협력이사로 업무를 시작한다. 더 힘들고 더 바빠질 것이다. 단행본도 탈고해야 한다.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지자 이틀 동안 혹사한 간에게 힘내라고 말하며 체육관에서 바벨을 잡았다. 역시 머리를 쉬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육체에 상당 수준의 고통을 주는 것. 이번에도 주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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