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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훈 해설위원 Jun 23. 2024

나는 그렇게 살아가는 존재니까.

'나이가 꽤 된듯한데 이제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줘야 하는 게 아닌지'


지난주 PWS 대외협력 이사로 취임하고 현역 레슬러로 시합일정을 같이 소개하는 기사가 나오자 포털에 달린 댓글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하수종말처리장인 포털 댓글란에서 예의를 찾는 것은 경포대에서 잃어버린 아이폰을 해운대에서 찾는 것보다 더 힘든 일임을 잘 알고 있지만 이렇게 당사자성을 갖게 되면 살짝 단전 쪽이 흔들리며 불쾌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저 무지와 무례의 에센스를 논리적으로 공박하는 200자 원고지 10장 분량을 떠올리기도 해 봤지만 그만두었다. 그 시간에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이 맞겠다 싶었다.


경쟁을 준비하며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 태양계 세 번째 행성 지구 중력 영향하에 있는 생명체 중에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위다. 백수의 왕인 사자는 초원에서 모든 것을 사냥하며 영역을 지키지만 사자는 원래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백상어도 그렇고 대머리독수리도 그렇다. 먹이를 향해 거침없이 용맹하게 달려드는 그 모습은 경외와 공포의 대상이지만 '뽑기'에서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능력과 지위를 갖게 된 것이다. 목덜미를 물려 쓰러지는 누를 보며 일말의 안타까움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헤비백을 치고 쉐도우를 하며 중량을 들어 올리며 링에서 낙법을 치는 것은 매우 원초적이면서도 고도의 지적능력을 가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중요한 특질이기도 하다.


냉소와 비관을 경계하라. 미국 TBS에서 코난쇼를 28년간 진행했던 코난 오브라이언이 자신의 쇼를 끝내고 타 방송로 이적하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다. 자기 계발 강사들의 뜬구름 약팔이식 긍정장사에 진절머리가 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냉소와 비관으로 본인의 인생이 점철된다면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복싱 경기를 준비한다는 것, 프로레슬링 경기를 준비한다는 것. 각각의 장르가 갖고 있는 물성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다른 것도 아니다. 격투 스포츠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고차원의 정신수양은 '실패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타의 스포츠 특히 팀 스포츠는 결과가 자신의 잘못 일수도 아닐 수도 있다. 연대책임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도의적인 N빵일 뿐, 1대 1 격투 스포츠만큼 모든 것의 결과가 본인 자체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


내 원투는 왜 정확하지 않은가. 충분히 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스텝은 왜 느린가. 충분히 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방어는 왜 이렇게 취약한가. 충분히 훈련하기 않았기 때문이다.


내 스플렉스는 왜 궤도가 아름답지 못한가. 충분히 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캐논볼은 왜 박력이 떨어지는가. 충분히 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기지 못했는가. 충분히 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꼭 시합이 아니더라도 아파트 필로티에서 펼쳐지는 쉐도우, 놀이터에서 홀로 해보는 록업과 체인 레슬링에서도 수많은 실패가 일어난다. 링을 벗어난 사회생활 속에선 더 많은 실패와 부닥친다. 이런 것들을 자포자기로 흘려보내고 냉소로 튕겨낸다면 절대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다.


오늘 하루 체육관에서 바벨을 들며 실패를 할 것이고 강연자료를 만들며 실패할 것이다. 후자는 며칠 뒤 강연장에서 청중의 반응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학력고사 세대다. 체세포 생성과 사멸의 주기는 이미 역전 되었다. 그 격차가 더 벌어지다못해 더 이상 생성이 없을 때까지 이 일은 반복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살아가는 존재니까.


인간어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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