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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훈 해설위원 Mar 06. 2020

소년이여 부엌으로 가라

소년도 아저씨가 되고 할아버지가 된다.

니모를 찾아서' 2003년 아카데미상 장편 애니메이션 수상작으로 국내에서도 120만 명이 넘는 관객 동원을 기록했던 작품이다. 흰동가리 싱글파더인 말린에겐 니모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산호초 숲을 벗어나 학교에 다녀오다가 인간에게 잡히고 되고 말린 이 천신만고 끝에 니모를 구출한다는 내용. 이 애니메이션은 줄거리 첫 줄부터 과학적 오류가 있는데 말린 과 니모가 부자관계라는 것. 흰동가리는 큰 암컷 한 마리, 작은 수컷 한 마리 그리고 새끼 몇 마리가 가족을 이루어 사는데 만약 암컷이 죽으면 수컷이 암컷 즉 엄마가 되고 새끼 중 덩치가 큰 녀석이  수컷 즉 아빠가 된다. 말린 은 싱글파더가 아니라 엄마가 되고 니모는 아빠가 되어 두 물고기는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부자에서 부부로 쉽게 그 역할이 바뀌는 것은 흰동가리의 생존에 이런 변이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이라면 어떨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긴 하지만 과연 부인이 죽었다고 해서 스스로 부인이 될 남편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왜냐면 흰동가리와 달리 사람 특히 '한국에 살고 있는 여자 사람'에겐 가사노동이라고 하는 시지프스의 형벌이 있기 때문이다.  


 청소, 설거지, 이불빨래, 음식하기 또는 육아까지.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노동 즉 가사노동은 매우 저평가된 고강도 노동이다. 가사노동의 각의를 이해하지 못한 이들은 잘 정돈된 옷장, 과자 부스러기 없는 소파, 별다른 냄새가 나지 않는 냉장고, 오줌 때가 없는 변기를 '일반적인 상태'로 기억한다. 하지만 저 상황은 누군가의 치열한 노력의 산물이고 사실상 기적에 가깝다. 기적이 자주 일어나다 보니 기적이라고 인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사노동은 주로 가정주부 즉 여성이 전담하고 남편, 아들은 이  노동의 수혜를 당연하다고 느낀다. 그러다 보니 정당한 보상을 받는 것도 요원하다.  


 가사노동의 극악스러운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닌데 무엇보다도 업무 현장과 휴식장소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통근시간 0 min. 이건 축복이 아니라 저주다. 상상해보라. 만약 사무실에서, 생산 형장에서, 업무장소에 먹고 자고 휴식을 취한다면 삶의 질이 어떻게 될 것인가. 휴일 낮시간 또는 주말 아침에 유모차 부대가 스타벅스로 몰려가는 것은 업무현장에서 격리된 상태에서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고 전인권 성공회대 교수의 명저 '남자의 탄생'을 보면 한국 남자를 '동굴 속 황제'로 칭한다. 황제는 허툰 일을 하지 않는다. 허툰 일엔 가사노동이 포함되어 있고 언제나 부인이 차려준 음식과 세탁한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갈 뿐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자란 아들은 자연스럽게 황제의 위치를 계승받으며 다시 성년이 되어서 자신을 그렇게 떠받들어줄 반려자를 찾는다. "우리 엄마 고생 많이 했잖아. 그러니 네가 좀…."이라는 대리 효도의 영역까지 욕심을 내게 된다. 


 물론 한국 남자도 가사노동을 한다. 하지만 하루 45분으로 OECD 국가 중 하루 가장 최하위 위이며 이는 직장에서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는 평균 시간 68 분 보다 더 적은 수치다. 즉 직장에서 말하는 것보다 덜 일하는 것이다. 이 시간은 단순한 노동시간으로 만약 그 완성도까지 따진다면 더 낮아질 것이다. 웬만큼 가사노동에 단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깔끔한 뒷정리까지 끝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자. 부하직원에 거 '이 서류를 40장 복사해주게'라고 업무지시를 내렸는데 시간 없다고 바쁘다고 28장만 복사해온다면 어떤 느낌일까. 남자의 가사노동에 대한 여자의 평가는 대개 이런 수준인 것이다.  


 감히 말한다. 남자는 가사노동을 해야 한다. 그 남자에는 이 글을 읽는 너희들도 포함된다. 소년은 청년이 되고 아저씨가 될 것이고 곧 할아버지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평균수명이 계속 늘고 있기 때문에 너희들은 환갑을 맞이하고도 수십 년 이상을 살 확률이 크다. 이건 인권의 문제이며 경쟁력의 문제이다.


가사노동은 남자의 경쟁력이다.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보급이듯이 홀로 밥을 해먹을 줄 아는 남자는 삶의 수준이 그렇지 않은 남자에 비해 극단적으로 올라간다. 간편 조리식이라도 끓여서 먹다 보면 직접 도마와 식칼을 잡게 되고 반복이 되면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식재료를 고르는 안목이 생긴다. 카레에 닭가슴살을 잘라서 올려 놓고 스파게티에 방울 토마토을 곁들인다. 이런 걸 반복하다보면 능숙함과 완성도가 올라가며 자기 취햐향에 맞으면서도 건강한 식단을 꾸밀 수 있음은 물론이다. 세계를 호령했던 몽골 기마병이 그렇게 싸웠다. 먹고 싸우고 싸우며 먹었다. 부인이 출장 갔다고 해서 일주일 내내 곰탕을 먹을 필요가 없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헝클어진 침대 시트 모서리를 맞추고 잔주름을 모두 없앤다. 이렇게 하면 바쁜 업무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 훨씬 편하게 쉴 수 있다. 미국 네이비실 대장을 지낸 인물이 부하들에게 했던 말이다. 진공청소기로 먼지를 쓸어내고 재활용 분리수거를 깔끔하게 해 놓는다. 텔레비전 리모컨은 정해진 위치에 올려놓고 출근 전 세탁물을 세탁기에 넣고 귀가하는 시간에 맞추어 예약을 걸어 놓는다. 변기, 세면대, 욕조에 맞는 청소용 도구와 세제를 구비해놓고 물때를 싹 빼놓는다. 이런 습관이 몸에 밴 남자는 항상 최고 수준의 휴식을 취할 수 있기에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다. 그리고 헬리혜성 76년 주기처럼 귀하디 귀한 '여자 친구 내방'이라는 대형 이벤트 때도 당황하지 않고 안방 문을 열어줄 수 있다. 


아직 가사노동의 기초를 장착하지 못한 채 소년/청년을 보냈다면 지금이라도 노력해야 한다. 대한민국 남자가 배우자 사망 시 가장 큰 충격을 받는다는 통계가 있다. 한국 특유의 부부간의 정도 있겠지만 가사노동 전담인의 부재에 따란 생활의 고통도 있을 거라 짐작해본다. 모 방송 사회고발 프로그램 진행자를 맡았을 때의 일이다. 노인복지기금 횡령사건 추적이었는데 재단 측의 전횡도 전횡이었지만 홀로 사는 독거노인들의 행태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계세요?" 나와 함께 현장을 방문한 사회복지사가 몇 번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럴 때가 그는 가장 두렵다고 했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저기 구퉁이가 떨어지고 금이 가 그저 손잡이만이 이 판때기가 문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손잡이를 잡고 비틀듯이 밀어붙이자 내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안구가 시각적 정보를 받아들이기 이전에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성 악취가 후각을 매섭게 후벼 팠다. 전혀 방범효과가 없는 얇은 나무판자 문을 열면 수도꼭지와 석유곤로만 딸랑 있는 부엌과 아마 화장실도 겸한 신문지 네 장 정도 되는 공간이 있었고 그 안에 쪽방이 있었다.  혹시나 설마 아까 문 밖에서 상상하던 상황은 아니겠지 아닐 거야 고 갸를 갸우뚱 거리며 정말 대충 시멘트로 마무리한 부엌 바닥을 발로 조심스럽게 디디며 안으로 들어가는데 몸을 비트니 방 안에 있는 사람이 보였다. 아니 사람으로 추정되는 어떤 피사체였다.  


 바싹 말라버린 독거노인. 코맥 맥카시의 소설에서 볼 법한 황량한 멕시코 국경지대를 사람으로 형상화했다면 이런 모습 일터. 같이 살던 할머니가 있었는데 얼마 전 세상을 떠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벽에 기댄 채 앉아있기만 한다고 했다.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는 노인의 고독을 빗살이 빠진 머리빗에 비유했다. 자기 주변을 채워주던 가족, 친구 그리고 목표로 삼았던 것들이 하나둘씩 빠지며 공허 그 자체로 돌아가는 것.  

독거노인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했다. 두 팔 두 다리 모두 멀쩡했지만 쌀을 가져다줘도 밥을 해 먹지 못하고 라면을 줘도 끓여먹지 못한다고 했다. 평생 옆에서 수발을 들어줬던 부인이 죽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오직 TV만 보며 누군가 오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좀 더 많은 남자들이 좀 더 많은 시간을 부엌에서 다용도실에서 분리수거장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건 다시 말하지만 인권의 문제이고 경쟁력의 문제다. 그리고 생명체로써 최소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다. 소년이여 부엌으로 가라. 그리고 프라이팬을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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