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 강사의 무심한 배달일기

(166) 장갑을 끼는 사연

by 명중호

유니세프 아저씨의 엉뚱하고 유쾌한 배달일기

장갑의 용도는 여러 가지이다. 우선은 위험한 물건을 나를 때 다치지 않도록 장갑을 낀다. 또 맨손으로 더러운 것을 잡거나 치우기 위해 장갑을 사용하고, 미끄러운 물건을 쉽게 잡기 위해 장갑을 끼기도 한다. 무엇보다 추운 겨울 손을 보온하기 위해 장갑을 낀다.


내가 하는 배달은 위험한 물건을 운반하거나 더러운 물건을 취급하는 일이 아니어서 겨울이 아니면 특별히 장갑이 필요 없다. 특히 배달을 하려면 휴대폰을 보면서 화면을 터치해야 하는데, 장갑을 꼈다 벗었다를 반복하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래서 그런 불편함 때문에 많은 배달기사들은 장갑의 엄지와 검지의 끝 부분을 잘라서 끼고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겨울이 지나 기온이 높아지면 장갑 안으로 땀이 차기 시작한다. 축축해진 장갑이 불편하기에 장갑을 벗게 되는데, 나도 겨울이 지나 봄철 한동안 맨손으로 자전거를 몰고 다녔다. 그러다 집에 들어와 옷을 벗는데 손등과 팔목 위쪽을 보고 깜짝 놀랬었다. 팔목 아래쪽 손은 햇빛에 그을려 까매졌는데, 긴팔 상의로 덮여있던 팔목 위는 허옜던 것이다.

내 피부가 비교적 까무잡잡하여 웬만하면 피부톤 차이가 나지 않지만 손등과 팔목 위쪽의 차이가 심하고, 검다 못해 뻘건 느낌이 날 정도로 햇볕에 그을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특이하게 생긴 여름용 오토바이 '토시'(추위를 막거나 더러움을 방지하기 위해 덧끼는 장구)를 씌우고 다니는 배달기사들을 보게 되었다. 손 위는 덮여있고, 손 아래는 망사로 되어있어 더운 날씨에도 통풍이 잘 되는 여름용 토시를 오토바이 핸들에 부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즉시 여름용 토시를 구입하여 자전거 핸들에 매달았다. 역시나 장갑을 끼지 않으면서 손등도 타지 않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토시를 착용한 이후 손등이 조금은 허예지나 싶었지만, 손등과 팔뚝의 검정-하양 대비는 여전했다. 여전히 손등은 검었고 팔목 위쪽은 하얀색이었다. 추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장갑을 끼어야 하는 늦가을까지 그 상태는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배달음식을 들고 가는 내 손을 보게 되었다. 자전거에서 내려 배달통에서 음식을 꺼내 들고 가는 내 손등으로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아주 잠시, 불과 30초 내외로 음식을 들고 가는 그 순간 동안 손등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짧은 30초이지만 하루 30-40건의 배달을 처리하는 그 동안에 손등은 강렬한 햇살에 검게 물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장갑을 계속 끼지 않는 한 손등이 타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겨울철에 엄지와 검지 부분이 검게 그을렸던 생각도 문득 났다. 핸드폰 터치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엄지와 검지 부분을 잘라서 다녔는데, 겨울철 그 미약한 햇살에 노출된 엄지와 검지가 검게 그을렸던 것이다. 낙수물이 돌을 뚫고, 철막대기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말이 실감났다. 결국 여름용 오토바이 토시도 손등이 검게 타는 것을 막는 도구는 되지 못하였다. 그나마 예전처럼 보기 흉할 정도로 시뻘겋게 타는 것을 막아주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예전에 내 손을 본 어떤 사람이 "천상 공부할 손"이라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손가락도 길고 손등에 잔주름도 없어서 예쁘장하게 생긴 손"이라며 그렇게 말했었다. 그랬던 손이 이제는 나이 들어 주름도 많아진데다 배달을 하면서 새카맣게 되어 버렸다. 이제는 영락없는 농사꾼 손이나 노가다 손이 되어 있었다.

그랬다. 최선을 다한 손이기에 주름이 생기고 검게 그을렸다. 어찌보면 반가운 손이고, 기쁜 손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손이다. 땀 흘려 돈을 버는 손, 힘들여 밥을 먹게 하는 손. 그래서 누구에게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손. 나는 오늘도 이 손으로 자전거를 움직여 앞으로 쭉쭉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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