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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Sep 08. 2023

게으른 농부

사과를 몽땅 따기로 했다 부사만 남겨두고. 새들이 와서 쪼아 먹지 말라고 둘렀던 초록 그물망도 벗겨주었다. 갑갑했지? 이제 맘껏 기지개를 켜렴. 꼭두새벽 동이 틀 무렵 밭에 도착한 S와 우리 부부는 무성한 풀부터 베기 시작했다. 낫으로 사사사삭. 그리고 남자들은 밭을 갈고 여자들은 사과를 땄다. 왜 밭을? 감히 무 배추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울타리 친 고구마밭 남은 곳이 딱이다. 남자들이 많은 풀을 낫으로 베고 땅을 삽으로 뒤엎어 으깨놓으면 여자들이 거름을 바가지로 퍼 휙휙 뿌리고 비료를 한 줌씩 손으로 휘리릭 뿌렸다. 다음에 와서 골을 파고 무와 배추 씨를 솔솔 뿌리면 된다. 오홋 김장을 우리가 심은 걸로? 아, 너무 가지 마셔. 그냥 시범적으로 조금 해보는 거야. 하하 어쨌든 좋아 좋아 무 배추라니! 우린 신이 났다. 사과 딴 것들을 몽땅 나무 아래 돗자리 깔고 쏟아놓았다. 어떻게 나눌까? 시작~ 하면 제일 좋은 거 두 개씩 고르기. 시작~ 하나 두울. 다시 시작~ 하나 두울. 하하 구령에 따라 각자 제일 좋은 것만 골라 넣다 보니 어느새 다 나누었다. 사과를 재배했어~ 동네방네 자랑도 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결과물을 나누어주면서 자랑도 해야 할 텐데 그럴 만큼 수확량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모양도 볼품없다. 일부러 유기농 하려던 게 아니라 게을러 농약을 못 쳐 절로 유기농 사과가 되었다. 푸하하하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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