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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Nov 15. 2023

남편

10명 정도 되는 아주 작은 교회 앙상블이다. 그나마 코로나로 전혀 모이지도 활동 자체도 없다 4년 만에 새로 하니 아파서 못해 바빠서 못해 이런저런 이유로 빠지고 7명 정도가 남았다. 관심 있는 분 함께 하자는 공고를 냈더니 두 분이 왔는데 시각장애인이다. 모든 악보를 외워서 한다. 그리고 남편이 이 작은 앙상블 지휘를 한다. 그분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지휘봉으로 딱딱 보면대를 치며 박자를 알려준다. 몇 번의 연습으로 서로 익숙해졌는데 어제 난 남편에게 마구 화가 났다. 파트 연습을 하는데 52마디부터 들어오세요~ 하는 게 아닌가. 그분들이 잘 몰라하니 피아노 반주자에게 그 부분을 들려드리라 하고 그래도 잘 몰라하니 반주자에게 다시 그 부분을 치라며 반복만 한다. 난 보다 못해 이 분들 잘 모르니 처음부터 해요~ 그러나 남편은 반복 또 반복할 뿐이다. 게다가 나보고 그 부분을 불어보란다. 난 알토 2인데. 그 부분 알토 1과 2가 같아 나를 시킨 거란다. 난 총보가 없으니 그거 몰랐다. 처음부터 하면 될 텐데 고집부리는 남편이 밉고 알토 2인 나의 색소폰 소리가 알토 1인 그분들께 무슨 도움이 될까 싶어 나도 이렇게 중간에 하면 들어가는 부분을 모르겠는데 저분들 어떻게 아시겠냐며 막 짜증을 냈다. 내 딴에는 그분들을 위해 마구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낸 것이다. 그러나 집에 와서 후회했다. 왜 내가 거기서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참견했을까. 나 스스로 아 정말 왜 그랬을까 후회 중인데 남편이 딱 그걸 지적한다. 자기가 어련히 알아서 할 텐데 남편 믿고 따라오지 않고 그렇게 망쳐놓느냐고. 우쒸. 흥! 그 분위기 하나 파악 못하고 시각장애인들을 그렇게 어렵게 하냐며 나도 대들었다. 그의 설명으로 왜 그가 그 부분을 고집했는지 이해가 되니 더욱 내가 소리 지르며 화낸 게 부끄럽고 후회가 된다. 그러니 밖으로는 더 화를 낼 수밖에. 흥흥흥! 그런데 엉엉 그렇게 화를 내고 있으니 모든 게 짜증 일색이요 마음이 불편해죽겠다. 그리고 보니 남편도 정말 많이 늙었다. 게다가 냉전상태의 둘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다.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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