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같은 초가을의 햇살과 뭉게구름이 넘실대던 1965년 가을쯤... 난 서울 신문로에 있는 덕수 국민하교 삼 학년이었다. 그 당시에는 중학교 입시가 있었기 때문에 서울 한복판 덕수 국민학교는 모든 엄마들이 자식들을 위장전입이라도 해서 입학시키려는 명문 국민학교였다. (그 당시 명칭인 국민학교로 표기하겠음.) 때문에 한 반에 100명이 넘는 콩나물시루 같은 분위기 속에 학교를 다녀야만 했다. 많은 친구들은 대다수가 위장 전입한 처지라 버스, 전차를 타고 통학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나는 3학년 14반이었는데 너무 소심한 성격에 말 수 없고 공부도 그저 그런 별 특징 없는 아이였다.
그 시절엔 은근한 남존여비사상이 있었던지라 학급 반장은 무조건 남자였고 여학생은 아무리 뛰어나도 부반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오늘 얘기하고 싶은 건 거의 오십 년 동안 내 추억 저 깊은 곳에 간직했었던 잔잔하면서도 언젠가는 하고픈 얘기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참 숫기 없고 조그마한 애였어서 여자애들과는 대화도 잘 못 나누는 평범한 아이여서 국민학교 동안은 기억나는 아이가 없지만 딱한 명 있다. 총명해서 공부도 잘했지만 모범생의 롤모델같이 바르고 키도 크고 사슴 같은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서 어렸지만 범접하기 힘든 분위기의 여학생이었다. 난 그 친구가 참 맘에 와 닿았지만 별로 친해질 기회도 없고 해서 그냥 먼발치에서 보고만 있었을 뿐이었다. 근데 어느 날 그 친구와 어떤 에피소드가 생기게 되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통학하던 친구들이 많았었는데 대개가 광화문 육교 밑 버스 정류장을 이용하였는데 나도 친구들과 함께 버스를 기다리는데 동숙이가 두어 발짝 떨어져 역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걘 좀 비싼 합승이라는 10원짜리 미니버스를 이용하였다. (문 두 개짜리 일반버스는 3원) 이윽고 동숙이가 기다리던 합승 버스가 왔고 동숙이가 차에 오르려던 순간 나와 함께 서 있던 전재우인지 조남희인지 암튼 둘 중에 하나가 느닷없이 동숙이의 치마를 들쳤던 것이었다. 요즘애들 말로 아이스케끼! 물론 장난이었지만 동숙이가 훽 뒤돌아보는데 하필이면 나랑 눈이 마주쳤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강한 두 가지 메시지가 나에게 전해졌다. 얌전하고 착한 앤 줄 알았는데 너 실망이다.라는 메시지와 야!.. 나 박동숙이야.. 네까짓 게..라는 경멸의 눈초리. 순간 난 얼음이 되어 이렇다 할 변명도 못하고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머리가 하얘져서 다음날 뭐라고라도 변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지만 막상 다음 날 등교해서는 용기가 없어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럭저럭 나날이 지나고 학년이 바뀌면서 그 이후론 보기도 어려워 그렇게 세월이 지나 이젠 아련한 50년 전의 추억이 되고 말았지만 언젠가는 외치고 싶었다. 동숙아! 나 아니었어!!! 그 친구는 역시 여러 사람의 기대대로 훌륭한 대학교수가 되어있어 바쁘게 지내느라 기억조차 못하겠지만 늦게나마라도 변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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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미안하다 동숙아.
니 물방울무늬 팬티 쪼금은 봤다...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