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밸리 C.C. 2019년 아듀 골프

1960년대 광화문 서울 덕수 국교 다닌 친구들과

by 꽃뜰

<2019년 11월 19일 화요일>


무시무시한 한파를 예고하고 있다. 최저 기온이 영하 7도까지 내려가고 최고 기온 이래 봤자 겨우 5도일 뿐이다. 게다가 초속 5미터의 바람까지. 멋 부릴 생각도 말고 공 잘 칠 생각도 말고 오로지 보온에만 힘쓰라 강조하는 남편 성화에 그저 껴입고 왔더니 "배 나왔어." 그런 말을 듣는다. 아흑. 재빨리 겹쳐 입은 속의 옷 들을 보여주며 "봐봐 너무 많이 입어서야. 이거 다 옷이야." 했지만 사실 요즘 간헐적 단식 다이어트가 무너졌고 밤에도 막 먹어서 똥배가 나오긴 했으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제 다시 좀 긴장된 생활을 하자. 밤에 먹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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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영이가 나의 기사님이다. 9시 반쯤 만나면 된다고 했는데 나의 열차는 8시 46분 도착이다. 항상 눈썹이 휘날리도록 제 일착으로 역 밖으로 뛰쳐나갔는데 오늘은 맨 꽁찌로 나온다. 왜냐하면 난 대영이가 9시 반쯤 오리라고 생각했으니까. 헉! 그런데 이미 와있다. 에구 괜히 나 때문에 덩달아 일찍 오게 한 것 같아 많이 미안하다. 60년 전통의 할머니 소머리 국밥집에서 아침 겸 점심 브런치를 한다. 쫄깃쫄깃 소머리고기가 냄새 하나도 없이 맛도 있고, 춥다고 주인아주머니가 우리를 난로 곁에 자리 잡게 하고 커다란 통나무 한 개를 집어넣어 지글지글 때 주는 데 얼마나 따뜻한지 모든 미안함이 사르르 녹는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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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영상이가 중환자실에 있대. " 바로 전날 함께 공 잘 치고 밥 잘 먹고 헤어진 영상이가 왜! 난리 났던 그게 벌써 이년쯤 전이다. 차가 완전 박살이 났는데 기적적으로 살아난 영상이. 아, 그가 다시 공을 친다. 재하가 제 일착으로 달려가고 입원실로 우리 모두 응원하러 갔던 때하며 영상이가 병상에 있던 그 기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영상이만 반가운 게 아니다. 우리의 현이. 살을 8킬로나 쪽 빼고 날씬한 여인이 되어 돌아온 현이. "몸이 가벼워지니까 허리도 안 아파." 휙휙 몸을 돌리며 그러나 하도 오랜만이라 칠 수 있을까 걱정한다. "골프는 어디 안 가. 치던 가락은 다 나오게 돼있다고." 우리가 막 현이를 안심시킨다. 현이 역시 갑자기 허리가 아파 한 삼년 만에 처음이다.


"아~ 따뜻해. 불을 쬐자~ "난로 앞에서 따뜻해하며 쌩쌩 부는 바람을 피해 불을 쬐고 있는데 앗, 이거 아직 아무 불도 들어오지 않는 거란다. 그런데 왜 따뜻하게 느껴질까? 우리 마음이 이건 불이다 생각하니까 그렇게 느껴지는가 보다. 우아 신기해. "모든 건 정말 마음먹기 나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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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우리 오늘은 2019년 아듀 골프니 모처럼 플래카드를 펴자." 덕수 56 골프회 깃발을 척척! 총무 일을 너무 잘하는 맹렬 총무 맹 총무. 우리의 멋쟁이 젠틀맨 시창이 등장. 빨강과 초록의 배합 하하 이뿐만이 아니다. 감히 시창이 만이 소화할 수 있는 블랙 챠이니즈 복장으로 클럽하우스에서는 인사했다. 가끔 개량 한복도 멋스럽게 입고 등장하는 패셔너블 패셔니스트 시창이다. 그 옛날 덕수 국교 때 핸드볼부에서 바나나 슛으로 날리던 운동 잘하던 까무잡잡 키 큰 소년이다. 하하 그 슛 날리던 모습이 고대로 기억나는데 50년 지나 함께 다시 운동을 하다니 정말 멋진 일 아니겠는가. 십 년도 큰데 오십 년이라니.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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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어마어마하게 차다. 엇둘엇둘 준비체조를 하고 티그라운드에 서지만 너무 추워 입고 입고 또 껴입은 옷 때문에 도대체 몸이 돌아갈 것 같지가 않다. 제대로 칠 수 있을까? 도대체 몇 개를 입은 거지? 내복에 이너에 조끼에 스웨터에 잠바에... 오동통 옷으로 뒤덮여 몸이 돌아가려나.


"아, 너무 춥다. 우리 모두 동태 되겠어." 두툼한 볼 마스크를 하고도 우리는 산꼭대기 바람에 추워서 벌벌 떤다. 그만큼 찬 바람이 쌩쌩 불고 있다. 오죽하면 캐디 언니가 우리 모두에게 손난로 히트팩을 한 봉지씩 줄까. 그런데 크고 두툼한 그 히트팩이 이상하게 하나도 안 따뜻하다.



나무들은 단풍이 들었고 공기는 참 맑다. 문제는 너무 춥다는 것이다. 그래도 해님이 반짝할 때는 아주 따뜻한 게 참 좋은데 해님이 살짝 가려지면 얼마나 추운지 발발 떤다. 온갖 것을 껴입고 비대한 몸짓으로 공이 제대로 쳐지지도 않는다. 앗 공이 왜 저리로 가지? 옷을 많이 입어서 그래. 우리에겐 골프가 안 되는 확실한 이유가 있다. 너무 추워서 그래. 너무 바람이 심해서 그래. 너무 옷을 많이 입어서 그래. 골프 안 되는 백팔 가지 이유가 있고 그 마지막이 '이상하게 안되네~' 라는데 하하 우리에겐 아주 확실한 핑계가!





하늘이 어쩜 이렇게 파랄까? 가을이잖아. 아, 저기 두둥실 흰구름도 좀 봐. 얼마나 예뻐? 우리는 추위에 오달달 떨며 공을 치지만 그 순간순간 맑은 공기 하며 파란 하늘 하며 하얀 구름 하며를 돌아보며 감탄한다. 그리고 가끔 크게 숨을 쉬며 미세 먼지 없는 맑은 공기를 맘껏 들이켠다. 게다가 우리는 바로바로 오십 년 전 광화문 덕수 국교를 뛰놀던 초등 동창. 아 참 좋아~



여기에 공까지 잘 되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인데. 아, 우리는 모두 헤매고 있다. 더블 보기가 오우너를 하지 않나 추위 때문이라며 두껍게 입은 옷 때문이라며 열심히 핑계를 대고 있지만 그래도 너무했다. 앗 그러다 혜원이가 이글! 을 할 뻔하니 회장님 티에서 치고다. 하하 귀여운 회장님 무시무시한 해저드 건너 아주 안전지대에 있다. 너무 골프를 좋아하시는데 연세가 많아 그 해저드를 못 넘겨 회장님을 위해 특별 제작된 곳이란다. "에잇 나도 골프장 하나 사서 회장 님티 만들어?" 하하 혜원이가 말하고 우리가 깔깔대며 그러라고 한다. 여하튼 회장 님티 덕분에 먹구름이 드리웠던 우리 팀이 혜원이의 이글 같은 버디 영림이의 버디 같은 파로 반짝반짝 빛난다.




헉헉 왜 이렇게 높아? 참밸리 C.C. 에서 처음 쳐보는 현이가 가파르게 높은 코스를 보며 기막혀한다. 무얼 아직 시작도 안 했어. 구비구비 높이높이 갔다가 다시 구비구비 쭈욱 아래로 곤두박질치듯 내려오게 되어있지. 5년 정도밖에 안된 신생 골프장. 나무들이 가녀리다. 여차하면 오르막 내리막 균형 잡기 힘든 상태로 공을 쳐야 한다. 겨냥을 잘해야 한다. 대부분 아주 가파른 경사의 포대그린이라 살짝만 그린에 못 미쳐도 영락없이 또로록 굴러 저 아래로 내려간다. 헉헉 현아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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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아래로 포천 시내가 쫘악 내려다 보이잖아. 우아 정말 높구나. 그래도 이 파란 하늘 하며 두둥실 흰구름 맑은 공기 얼마나 좋아? 혜영아, 네가 와봤던 그 삼청동 집 말이야 그거 다 허물고 이제 한옥을 짓거든. 추억의 그 집에 가봤었단다. 내방하며 옛날 고대로였어. 아, 새 소년 한가득이던 바로 그 방. 그랬다 그때 혜원이네 가면 그 애 방 한쪽 끝 유리문으로 된 곳에 새 소년이며 소년중앙이며 그런 잡지가 가득했다. 소년중앙 나오는 날이면 당연 본 잡지를 차지하고 있는 오빠가 겨우 부록 하나 들고 있는 내게 다 읽고 넘겨주기만을 기다리곤 했는데 혜원이네는 그 잡지가 수도 없이 많았다. 하하 그렇게 우리는 오십 년 전 추억을 나누며 공을 친다. 초등학교 동창의 매력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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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멋지다. 저거 찍어 어서." 친구들 등쌀에 놀라서 휙 위로 올려다보니 가파른 언덕 위로 네 명의 전사들이 퍼팅하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와우 정말 멋지다. " 그래~" 하고는 후다다닥 핸드폰을 들고 찍으려 보니 어느새 두 명이 사라졌다. "어이~ 거기 네 명 여기 좀 봐아~" 하고 소리칠까 하다가 우리 약간 늦기도 했고 그건 또 너무 오버인 것 같아 그냥 두명만 찰칵하고 간다. 그런데 네 명이 내려다보고 있는 장면이 얼마나 멋졌는지 모른다. 순간의 포착. 다음부턴 좀더 재빨리 카메라 장착을 할 줄 알아야겠다. 사사사삭




어느새 마지막 홀. 해님이 꼴딱 넘어가기 일보직전이다. 얼마 전만 해도 차가운 냉탕을 생각하며 흐뭇하게 이 마지막 홀을 장식했는데 이제는 모두들 뜨끈뜨끈한 온탕을 생각하며 마지막 홀을 보낸다. 그렇게 세월은 휙휙 지나간다. 2019년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오늘이 바로 금년 마지막 라운딩이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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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 돼지고기 푸짐한 뒷풀이. 얼마전 엄마를 하늘나라 모신 영림이가 크게 한턱 쏜다. 다시 말짱하게 회복된 모습을 보는 우리 모두의 기쁨을 대변하듯 영상이가 제일착으로 불려 나와 소감을 말한다. 어느새 사이다 깡통을 마이크로 챙겨 나온 유머 쎈스에 친구들은 깔깔대며 "살아있네 우리 영상이~"


딸을 결혼시킨 영종이는 우리들 축하가 감사하다며 금일봉과 함께 나태주 시인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를 선물한다. 졸지에 시집을 받아 펼쳐보니 2019년 8월 17일에 나온 그야말로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11월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너를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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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명콤비 최회장맹총무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미안하면서도 너무도 잘 굴러가는 이 덕수56 골프시스템이 좋아 우리는 자꾸자꾸 부탁한다. "제발 더 해주십시오~" 애걸 모드와 "너희들 안 하면 나도 안 해!" 협박 모드와 "좋은 게 좋은 거지. 이렇게 모두 좋다는데 웬만하면 하시죠!" 협상모드와 "미안하지만 좀 맡아주오." 미안 모드까지 온갖 방법을 동원해 그들이 다시 맡아주기를 부탁한다. 좋은 걸 어떡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