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심장의 무게는 얼마일까?

by 한언철

이집트 신화에서 죽은 자의 영혼은 오시리스의 법정에서 심판을 받는다. 그곳에서 심장의 무게를 달아 생전의 선행과 악행을 가늠하는데, 이는 곧 영혼의 도덕성을 평가하는 의식이다. 심장은 정의와 질서를 상징하는 여신 마아트의 깃털과 함께 저울에 올려진다. 만약 심장이 깃털보다 가볍다면 죄가 없음을 의미하고, 무겁다면 영원한 소멸을 맞게 된다. 결국 이 심장의 무게는 단순한 질량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오며 쌓아온 양심과 영혼, 그리고 도덕성의 무게를 뜻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의사들의 심장의 무게를 측정한다면 무엇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치료한 환자의 숫자로, 수술이 성공한 횟수로, 혹은 살려낸 환자의 수로 측정할 수 있을까? 만약 의사 심장의 무게를 잰다면, 그 무게는 아마도 매 순간 내려온 선택과 판단의 축적에서 비롯될 것이다. 치료 방향을 결정하고, 위험과 가능성 사이에서 길을 고르고,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들. 그 모든 판단과 결정이 쌓여 누군가는 생을 이어가고, 또 누군가는 그렇지 못하게 된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수많은 결정을 내리지만, 그 결과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 의학은 가능성과 확률 위에서 움직이지만, 그 가능성과 확률이 언제나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의학은 질병을 진단명으로 구분하지만, 진단이 같은 환자라도 결코 같은 이름으로 묶일 수 없다. 같은 진단을 가진 환자이라도 나이, 성별이 다르고 기저 질환도 다르며, 그들이 살아온 환경과 질병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모두 다르다. 그래서 모든 환자에게 같은 판단을 내린다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의사는 끊임없이 노력한다. 더 나아지기 위해 배우고, 반복하며, 익숙함 속에서도 다시 질문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의사 역시 실수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실수가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또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완벽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다.


의사의 판단은 언제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최선이라고 믿는 선택을 하지만, 그 결과가 언제나 정답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수술을 반드시 해야하는 상황이지만 수술 결과가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가 그러하다. 응급실에 복부 팽만이 심해진 환자가 내원했다. 암으로 항암치료 중이었으나 복통이 심해지고 배가 부풀어 오른다고 내원하였다. 암의 진행 정도는 매우 심하였다. 환자의 여명이 길지 않을 것으로 판단이 되나 지금 수술하지 않는다면 장 괴사의 가능성, 통증으로 고통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수술해도 잘 해결된다는 보장이 없고 수술하지 않는다면 또다른 고통이 동반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의사로서 의학적 판단은 내렸지만 그 판단이 곧 결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마지막 선택과 결정은 환자와 가족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환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 판단과 결정의 무게는 훨씬 커진다. 80대 중반의 고령의 어르신이 보호자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왔다. 환자는 중증 치매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지속되는 항문 출혈과 항문 통증 호소로 내원하셨고 진찰을 해보니 진행된 직장암이었다. 추가적인 검사에서 전이는 없었지만 치료 과정은 단순할 수가 없었다. 협조가 되지 않는 치매가 있는 환자에게 항암 방사선 치료는 현실적으로 어려웠고, 결국 수술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러나 그 수술은 항문을 남기지 못하는 수술이었고, 환자의 삶의 방식은 크게 달라질 결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판단을 대신해야하는 가족의 침묵 속에는 많은 고민이 담겨 있다. 또 다른 환자는 중증 발달장애가 있는 비교적 젊은 환자였다. 의사소통은 거의 불가능했다. 검사 결과 직장암이 확실했고, 협조가 어려워 모든 검사를 완전히 진행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이 환자 역시 직장암을 제거하며 항문을 없애는 수술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 의사로서 나의 판단이지만 보호자들은 망설였다. 수술은 환자의 생명을 위한 선택일 수 있지만 동시에 보호자의 삶까지 바꾸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보호자들의 한마디가 모든 상황을 대변한다. “해야하는 건 알지만 하고 난 뒤 감당이 될지 모르겠어요.” 나의 판단과 결정이 단순히 환자를 살릴 수 있느냐에 머무르지 않고 수술 후에도 환자가 살아갈 수 있느냐라는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의사인 내가 판단을 내리는 모든 순간은 늘 조심스럽다. 어떤 결정도 가볍게 내려지지 않는다. 그 판단은 단순히 의학적 지식에 기반한 선택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과 남은 시간, 그리고 그 삶을 둘러싼 관계와 현실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의사인 내 심장의 무게가 내가 내린 의학적 선택과 판단으로 내려진다면 그 무게는 어떠할까? 그걸 판단할 수 있는 저울이 있다면 그 저울추는 어디를 향할까? 아마 저울추의 방향은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도 멈추지 않고 고민했던 시간들,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환자를 위해 길을 선택해야 했던 순간들, 그리고 그 결과를 외면하지 않으려 했던 태도가 천천히 쌓여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바란다. 그 저울추가 환자들의 생과 삶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준 방향으로 기울었기를...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 방향에 머물러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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