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95km를 위한 1000km의 의미

by 한언철

5번째 풀 코스 마라톤 완주였다. 3월의 차가운 공기중에도 약간의 봄 기운이 피부에 와 닿았고 차분한 바람이 불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있어 흐릿한 하늘이 밝아지는 시간이었다. 광화문 광장을 가로지르는 빌딩 숲 사이, 도로 위에 2만명의 사람들과 같이 출발선에 섰다.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가슴이 쿵쾅거린다. 3월에 열리는 마라톤은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겨울 동안 쌓은 노력의 결실을 확인하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본격적인 달리기의 계절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라톤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수험생이 된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수험생들이 성적을 잘 받기를 기원하지만 누구나 답안지 미뤄 쓰는 상상을 해보는 것처럼 마라톤 출발선에 서면 설레는 마음도 있지만 먼 거리를 뛰어야 한다는 두려움도 있다. 하지만 완주를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달리다가 힘들면 걸어서라도 가고 힘이 없으면 다시 힘을 모아서 뛰면 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출발 신호가 울리며 42.195km를 향한 1m의 한 걸음을 내딛었다. 앞서가는 사람도 뒤에 있는 사람도 모두 각자의 목표와 페이스대로 뛰어간다. 달리는 동안에는 잡 생각이 사라진다. 오로지 내 발걸음과 몸 상태와 호흡에 집중한다. 들리는 소리는 뛰어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와 주변 응원소리뿐이다. 그 소리에 맞추어 내 심장도 같이 쿵쾅거린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숭례문을 지나고 청계천을 거쳐 동대문을 지났다. 그 지점이 20km로 절반이 지났다. 전체적인 나의 상태는 괜찮았고 다리도 아직은 끄떡 없다는 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을 바꿔가며 내 몸을 이끌고 있었다. 호흡도 안정적으로 이대로라면 나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린이대공원을 지나 30km 지점을 지났다. 이제 목표가 10km 정도가 남았다.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6km를 더 달렸고 잠실대교를 앞두고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몸과 마음이 싸우기 시작했다.


몸이 말한다. ‘야, 이제 충분히 했다. 나 그만 뛸래. 더 못 가겠어.’

마음이 답한다. ‘무슨 말이야. 목표가 이제 코앞인데, 이렇게까지 하고 그만둔다고 야 좀만 더 가자.’


격렬한 갈등 끝에 결국 몸이 먼저 포기를 선언한다. 다리가 한번 멈추니 식어가는 증기기관차의 엔진처럼 다리가 굳어간다. 몸의 열기가 식고 강력한 갈증이 몰려온다. 급히 에너지와 물을 보충해도 몸이 어쩔 수 없다고 답한다. 그때부터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다리를 어르고 달래고 뛸 수 있을 만큼 뛰고 걷기를 반복했다. 멀리 잠실 경기장이 보이고 목표 지점이 보였다. 마지막 힘을 짜내서 뛰기 시작했다. 이제껏 뛰어왔던 시간보다 이 목표물을 향해 뛰는 짧은 시간이 더디게 흘렀으며 더 길었다. 그렇게 결승선을 지나 42.195km를 완주했다. 내 몸과 마음의 갈등에서, 내 몸의 고통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 기뻤다. 목표했던 시간을 달성하지 못한 서운함도 있었지만 완주했다는 기쁨이 그 모든 감정을 뒤덮었다.


나는 이번 마라톤 준비를 위해서 6개월간 1000km 정도를 뛰었지만 바랬던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내가 달성해야하는 목표가 있으니 그 모든 것을 감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냉정하다. 결과적으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으니 내 노력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고 준비하는 과정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36km를 뛰고 지쳤다는 것은 분명 훈련 부족이라고 이야기할 만한 결과였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우리의 몸은 정말 거짓말을 못한다. 내가 부족했던 것이 결국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다음 번엔 부족한 부분을 메워갈 것이다. 그 것이 항상 실패가 나에게 주는 교훈이다.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있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결과는 단순하다. 이루었는가, 이루지 못했는가. 목표를 달성했다면 마음이 편할 수 있겠으나 그러지 못했다면 가슴이 아플 것이다. 하지만 목표를 향해 노력했던 시간은 사라지는 것일까? 혹은 내가 마라톤을 준비하며 뛰었던 노력의 시간은 의미가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쌓인 시간은 나에게 남아있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좋은 선물이었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나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가을의 상쾌한 아침 공기, 바다를 가르던 바람, 겨울의 차가운 공기, 새벽 바람을 맞으며 달렸던 순간, 얼굴에 흘러내리던 땀, 눈 뜨기 싫어서 뒤척이던 시간들, 그리고 송정 바다의 고즈넉함, 해운대의 포근함, 새벽 광안대교의 불빛이 스쳐 지나간다. 인내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절제할 수 있음을 이번에도 배웠다. 실패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래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음에 더 감사한다. 부상없이 달릴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달리며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그리고 아직 무엇이든 다시 해볼 수 있다는 마음이 남아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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