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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언철 Sep 20. 2022

이 결정을 어떻게 내려야 하죠?


모든 치료를 시작함에 있어 환자 본인에게 현재 진단에 대해서 설명하고 앞으로 진행될 검사와 검사 결과에 따른 치료를 어떻게 진행할지 상세히 알려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런 의사와 환자와의 기본적인 관계가 쌓이면서 신뢰 관계가 쌓이고 치료를 진행하게 된다. 하지만 의사에게 오는 모든 환자들이 그렇게 할 수 있지 않다.


#1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이 휠체어를 타고 보호자들과 진료실에 들어오신다. 인사를 하고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는지 여쭙고 진료를 시작했다. 어르신은 답이 없고 보호자분들이 대신 답을 하신다.


"어머니가 치루가 있으시다고 타 병원에서 수술 진행했는데 암이 나왔다고 해서 소개받고 왔어요."

"어르신은 다른 지병은 없으신가요?"

"지금 중증 치매셔서 의사소통이 좀 쉽지 않으세요."


역시 눈 마주침이나 소통이 잘 안되는 느낌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나의 추측이 맞았다. 기본적인 항문 수지검사를 시행하여 보니 항문과 아주 가까이 직장암이 있고 암이 진행되고 치루가 연이어 발생하셨던 것이다.


"우선 검사를 먼저 해봐야 할거 같습니다. CT와 직장 MRI 시행이 필요한데... CT는 비교적 짧은 시간 진행하는 검사라 괜찮을 거 같은데 MRI 가 검사 시간이 좀 길어서 문제일 거 같네요."


보호자와 상의 후 우선 시도는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역시나 검사실에서 연락이 왔다. 어르신이 협조가 되지 않고 협소한 공간에서 진행되는 검사이다 보니 고성과 욕설에 검사 진행이 안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CT 검사만 시행하고 결과 확인을 하기로 했다.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외래 날, 보호자들만 내원하여 결과를 들었다.


"다행히 직장암이 타 장기로 전이는 없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수술 전 항암방사선 치료를 하고 진행해야 하는데 어르신이 치매가 있으셔서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고 수술을 먼저 시행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럼 수술은 어떻게 하나요?"

"이미 치루가 있으신 상태고 항문과 거리도 상당히 가까워서 항문을 없애는 수술을 하셔야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영구 장루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


보호자들의 침묵이 길어졌다. 이 침묵의 원인은 아마도 장루라고 하는 대변 주머니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 그럼 대변 주머니를 평생 차고 계셔야 된다는 말씀인 거죠?"

"네, 지금은 그게 최선의 치료입니다."

"아~ 근데 어머니가 치매가 있으셔서 장루 유지가 될지 잘 모르겠네요."


이런 보호자들의 고민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치매이신 경우에는 행동이 제어가 안되는 경우가 많고 장루를 가지고 계신다고 하면 장루 주머니를 떼어버린다든지 하는 행동을 얼마든지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수술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실까요? 얼마나 사실 수 있을까요?"

"지금도 직장 암이 진행되신 상태로 폐색이라든지 항문 통증이 좀 더 심해지실 수 있어요. 그리고 여명을 정확히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환자가 충분히 설명을 듣고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보호자들의 고민이 덜어지겠지만 지금은 온전히 보호자들이 환자에게 최선인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고령에 치매가 있으신 분을 수술을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망설여지는 상황임에 분명하다. 다시 한번 수술의 장단점을 설명드리고 가족분들과 충분히 상의하고 내원하시도록 했다.

결국 수술을 진행해 보기로 보호자분들과 결정하였다. 수술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2

한눈에 봐도 중증 지체 장애를 가진 환자분이 보호자분 손에 이끌려 외래 진료실로 들어왔다. 보호자는 직계 가족이 아니라 중증 장애로 매일 돌봐주고 계신 요양보호사라고 하셨다. 최근 들어 대변을 잘 못 보면서 대변에 피가 자꾸 섞여 나온다고 해서 내원하였다.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안되는 상황이었다. 일단 환자를 침대에 눕히고 직장수지 검사를 시행하였다. 손가락에 직장의 큰 덩어리가 만져졌다. 직장암이다.


"환자 지금 직장 암이 거의 확실한 거 같고 검사를 추가적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우선 직계가족이 오셔서 설명을 좀 들으셔야 할거 같아요."


환자가 본인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로 검사를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다음 진료에 보호자가 내원하였다. 보호자에게 직장암과 관련된 대장 내시경, CT, MRI 등의 검사 진행이 필요함을 설명하였고 동의하에 진행하였다. 환자가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서 MRI는 진행할 수 없었고 불완전한 검사로 치료 방향을 결정을 해야 했다.


"현재 환자분은 직장암이고 검사 상에서 다른 곳에 전이가 없는 상태라서 수술 전 항암 방사선 치료를 우선 진행해 볼 수 있지만 방사선 치료도 협조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라 쉽지가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수술 먼저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수술은 항문 보존보다는 항문을 없애는 수술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항문 보존했을 때 화장실을 자주 가는 문제가 있는데 본인 스스로 조절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하면 오히려 장루를 가지고 생활하는 게 환자에게도 더 좋은 상황일 것 같습니다."

"그럼 혹시 다른 병원 진료를 보고 결정을 해도 될까요? 다른 방법이 있는지 진료를 보고 싶습니다."

"네~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아직 환자가 젊으셔서 아직 손놓기에는 이릅니다. 꼭 치료받으세요."


그렇게 진료의뢰서를 작성하고 한동안 잊고 있었다. 어느 날 외래 명단에 다시 환자의 이름이 떠 있는 것을 보았다. '다른 병원에서 수술받고 오시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타 병원에서도 비슷한 설명을 들었지만 치료는 더 진행하지 않았다고 했다. 환자는 대변을 보면 통증을 호소하여 다시 진료를 보러 온 것이었다. 다시 보호자와 면담을 했다.


"증상이 있으신데 호전 시키는 건 수술을 하는 방법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장루 때문에 고민이신 부분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래도 일단은 수술을 진행하고 보는 것이 어떨까 싶네요."

"보호자가 항상 상주하고 있어서 돌볼 수가 없는 상황이라 판단하기가 쉽지 않네요. 수술은 해야 할 거 같은데 하고 나서도 문제고..."


결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본인 스스로 관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장루라고 하는 문제를 하나 더 떠안아야 하는 보호자의 마음은 무척 무거웠을 것이다. 결국 수술 진행하기로 결정하여 예정대로 수술은 진행하였다.




 두 환자 모두 수술 전 걱정과 달리 잘 회복해 주었다. 치매이신 어르신도 회진을 가면 다소곳이 앉아 계시다가 꾸뻑 인사를 잘 해주셨고 중증 장애가 있으신 환자분도 나의 얼굴을 알아보시고는 회진 때 가만히 쳐다보고 간단한 인사를 해주실 수 있게 되었다. 또 다행히 입원 중에 장루를 떼어낸다든지 하는 난감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입원 중에 문제가 없다고 해서 퇴원 후에 문제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보호자들에게 장루 교육을 하고 시설로 연계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했다.


환자가 본인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족들이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은 참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환자의 수술을 결정하는 문제도 있지만 현실적인 상황에 따라서 수술 후 돌봄의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본인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수술 후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는 가족들이 온전히 안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위의 경우처럼 다행히 결말이 다 행복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실제로 많다. 어쩔 수 없이 환자를 살리기 위해 응급수술을 진행했으나 수술 후 연락이 된 가족들이 보살핌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고 환자 본인의 결정을 기다릴 수 없는 응급상황이어서 수술을 시행했으나 수술 후 왜 수술했냐고 따지는 환자들도 있다. 환자를 살리기는 했으나 그 이후의 문제는 병원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환자 가족의 짐을 알고 있지만 덜어드리기엔 많은 한계가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돌봄이 필요하다. 가족이 가진 현실적 문제로 아픈 환자를 돌보지 못한다면 사회에서 일정 부분 맡아줄 수 있으면 회복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일정한 부분에서 시행되고 있는 것들도 있지만 의료진 입장에서 보기엔 부족한 부분이 아직 많이 있다. 사회적 돌봄과 같은 복지 정책이 좀 더 넓고 적극적으로 시행된다면 이런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 가족들의 부담이 조금은 덜어질 수 있으리라. 이런 힘든 상황에 있는 환자나 가족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사회적 합의가 우선 필요하다. 내가 낸 세금을 굳이 그런데 써야 하나?라는 인식이 아직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조금은 포용하고 따뜻한 세상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 주기적으로 환자분들은 내원을 하실 텐데 재발 없이 문제없이 편히 지내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돌보시는 가족분들의 무게도 조금 덜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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