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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슴 May 22. 2018

전지적 엘사 시점에서 다시 보는 <겨울왕국>

엘사의 방어기제 해방 이야기 <겨울왕국>과 <올라프의 겨울왕국 어드벤처>

※ 영화 <겨울왕국>과 <올라프의 겨울왕국 어드벤처>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겨울왕국>하면 한 사람이 극장 내 계단을 뛰어오르고 있고, 앉아있는 사람들은 떼창을 하고 있는 영화관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싱어롱 버전(SBS 뉴스 - 노래방도 아닌데… 관객들 '렛 잇 고' 부르며 영화 감상)으로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 만큼 <겨울왕국>을 좋아했다. 몇 번씩 다시 봤고 OST 가사를 외우고 매일 같이 들으며 영화의 감동을 되새겼다. 영화 <코코>를 보러 갔다가 만난 <올라프의 겨울왕국 어드벤처>도 반가웠다. 그러다 얼마 전 출근길에 겨울왕국 특별전이 곧 열린다는 소식을 보았고, 그 감동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V-zXT5bIBM0 (Do you wanna build a snowman 공식 뮤비 캡쳐)



이야기, 전지적 엘사 시점에서


엘사와 안나는 둘도 없이 친해서 어렸을 때부터 같이 놀았지만, 어느 날 엘사는 실수로 어린 안나에게 큰 상처를 입힌다. 그리고 그녀는 세상으로부터 격리되는 벌을 받는다. 엘사가 안나를 다치게 했으니 가해자가 맞지만 그에 대한 처벌이 엘사에게 부작용을 남긴 것 또한 맞다. 엘사는 그 사건을 통해 자신의 능력이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부모님은 그녀를 가두었고 그녀의 능력을 감춰야 한다며 신신당부했다. ‘너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는 사람이야.’라고 행동으로 그녀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두려워했다.


엘사는 대관식 날에 크게 숨을 고른 후에 세상으로 나온다. 부모님마저 돌아가셨기에 자신의 위험한 마법능력을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라 하루만 잘 참으면 어찌어찌 넘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이 그렇게 두렵냐'는 안나의 외침은 엘사의 내면에서도 수십 번이고 수백 번이고 되뇌어 왔던 물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날카로운 말과 얼음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와버렸다. 자신에게 마지막 남은 가족이자 사랑스러운 동생 안나에게 또다시 미안한 일을 만들 뻔했다.


오랜 기간 길들여지고 스스로 반복해 온 엘사의 방어기제 회피는 더욱 견고해진다. 왕국으로부터 도망쳐 나와 아무도 없는 산에서 그녀는 얼음성을 짓고 스스로를 가두고 살기 시작한다. 그때 울분을 토해내듯 부르는 노래가 ‘Let it go’ 였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면서도 한편으로 이해가 되어 안타까웠다. 그렇게 완성된 성 앞에는 거대한 절벽이 있다. 성으로 찾아온 안나를 또 다치게 하자 엘사는 눈으로 괴물(Marshmallow)을 만들어 자신을 지키기도 한다. 내 안의 두려움이 다시 내면에 가시 돋친 성을 만든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서 다시는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 한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 주변에 마음이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출처 : http://frozen.disney.com.au/gallery (디즈니 Frozen 갤러리)



다시, 안나의 시점에서


잠시 안나의 시선으로 와서. 안나는 꾸준히 그녀의 방문을 두드린다. 문을 열어주기는커녕 이유도 알려주지 않는 냉담한 언니임에도 꾸준하다. 안나는 엘사가 왕국으로부터 도망갔음에도 그녀를 찾으러 춥고 험한 산길에 오른다. 엘사의 마법을 본 왕국의 신하들이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조언했지만 소용없다.


또한 <올라프의 겨울왕국 어드벤처>에서 볼 수 있듯, 안나는 올라프가 그려진 엽서, 올라프 모양의 인형, 올라프가 튀어나오는 팝업 편지 등을 직접 만들어서 매년 성탄절마다 엘사의 방문 틈 사이로 넣어주었다. 엘사는 처음에는 받고 좋아하는 정도였지만 나중에는 성탄절이 되면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방문 근처에서 기다릴 정도가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보물상자에 보관한다.


안나는 그렇게 삶을 통틀어 지속적으로 숨김없이 엘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그 덕분일까, 엘사는 결국 안나의 진심 어린 사랑을 확인한다. 그리고 마법으로 안나를 살려내면서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단단한 마음의 벽이 자연스레 허물어진다. 드디어 두려움에서 벗어나 왕국의 백성들에게도 자신의 모습, 자신의 능력을 당당히 드러게 된다. ‘Do you wanna build a snowman?’ 그래서 <겨울왕국>에서 가장 소중한 대사라고 생각한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V-zXT5bIBM0 (Do you wanna build a snowman 공식 뮤비)



물론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나처럼 못났고 주변에 폐 끼치는 사람을, 누군가가 그렇게 사랑 할리가 없다. 오히려 사랑하지 않을 리가 더 많이 있달까. 혹시 누군가가 정말로 꾸준히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사실을 온전히 믿기도 힘들다. 그렇지만 이 사랑스러운 자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스스로를 성 안에 가둔 그대일지라도, 조건 없이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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