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1.

by 헷지호그

그런데 선생님, 결국 지금 저의 문제는 일단 '시도하기' 자체를 실패한다는 거예요.



월요일 아침에 잠에서 깼는데 심장이 너무 뛰더라고요. 논문 슈퍼바이저한테 미루고 미룬 이메일도 보내야 하고, 2주 넘게 안 갔던 회사에 출근해서 사람들과 인사도 나눠야 하고, 일도 해야 하고, 저녁에 중요하게 처리해 버려야 하는 일도 있고. 근데 가만히 있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이 불안을 넘어서려면 결국 제가 해야 할 거를 해내야 하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야지만 내 마음이 풀리겠구나. 이 응어리짐이 그래야 서서히 녹기 시작하겠구나. 불안하고 답답하고 제 자신이 안쓰럽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고 결국엔 미루고 게으른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이게 끝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심호흡하고, 하나씩. 물꼬라도 트자.‘라고 저한테 당부했어요.



실패담이 하나 생겼네요. 고백을 못 했어요. 이건 뭐 딱히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작은 성취의 근육들을 키워야 하는 거겠죠. 누군가에게 좋아한다는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도 난생처음이거든요.


어제 드디어 논문 슈퍼바이저에게 이메일을 보냈어요. 그간 제가 보낸 이메일들 중 제일 솔직했어요. 그냥 제가 이만큼 했고 있고 이만큼 하려고 하고 있다,라고 보냈어요. 평가는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에요.



어제의 하루 끝에 저는 꽤나 뭐랄까, 그 단어가 뭘까요. 후련했어요. 막 엄청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후련한 건 아니고 오, 하루가 이 정도의 만족감으로 끝나면 좋겠다. 아, 만족했다는 단어가 더 알맞은 듯싶어요. 굉장히 많은 일들을 조금씩 해냈고, 일단 집에만 있지 않았고, 비를 뚫고 도서관에 간 것부터가 변화였어요. 만족했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제가 제 자신과 만든 약속을 어느 정도는 지켰다는 떳떳함에서 비롯된 것 같더군요. 그리고 그 중간에 제 이야기를, 저의 고민과 지침을 이해해 주고 진심으로 조언해 주는 정말 소중한 친구들과의 시간도 있었고요. 이 정도의 잔잔함과 뿌듯함, 루틴으로 삶이 지속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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