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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인 척, 사실은 “우월한 나” 이미지에 집착하다.

에고는 우월감을 먹고 자란다.

by eunsu


에고가 수용하지 않을 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언어가 있다.

바로 ••

"틀렸어." , "아니야."


왜 틀리다고 생각하는가?


에고는 "우월감" 을 먹고 자라난다.

언뜻보면 도덕적인 것 처럼 보이는 것들.

사실은 우월감을 먹고 자라나는 신념들이다.

예를 들어, "험담은 좋지 않은거야. 저급해."

라는 생각에 잡아먹히는 것. 에고한테 무너지는 것.

참'나'는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




“아니야.”

“그건 틀렸어.”

“내가 말한 건 그게 아니야.”

“그렇게 오해하지 마.”


이 말들은 무언가를 ‘정정’하려는 언어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어쩌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어벽일지도 모른다.


에고는 완벽한 자기상을 사랑한다.

흠 없는 나, 오해받지 않는 나, 실수하지 않는 나.

그 이미지에 금이 가려는 순간,

에고는 재빠르게 덮어씌운다.

“넌 틀렸어.”

“그거 아니야.”


그 말들은 때때로 너무 빨라서,

진짜 마음이 반응할 시간조차 없다.

그저 에고가 먼저 반사적으로 말할 뿐이다.


그리고 때로 에고는

조용히, 그러나 치밀하게 다른 방식으로 자란다.

‘도덕’이라는 얼굴을 쓰고.


누군가를 조용히 판단하면서

‘나는 저렇게 살지 않아 다행이야’라고 안도하고,

타인의 실수를 보며

‘그래도 난 참 잘 살아온 편이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때.


그 마음들은 얼핏 보면 성숙하고 양심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우월감이 깃들어 있다.



에고는 우월감을 먹고 자란다.


무례하지 않게,

그러나 아주 은근하게 누군가보다 위에 서려 한다.

나는 더 옳고, 나는 더 성숙하고,

나는 더 알아차리고 있다는 느낌으로

스스로를 천천히 부풀려간다.


그럴 때 참나(眞我)는 묻는다.

..

넌 모든 순간,
얼마나 잘 살고 있는데?”



그 물음 앞에선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늘 잘 살아낼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진짜 성숙함은

자신의 방어를 알아차릴 수 있는 용기.

자신이 만든 ‘도덕’의 얼굴이 사실은

우월감의 그림자일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나는 요즘,

무언가를 빠르게 부정하고 싶을 때,

마음속 도덕성이 자꾸 타인을 가르치려 들 때

잠시 멈춰서 묻는다.


“현재 목구멍까지 올라온 이 말은

진짜 내 중심에서 나오는 걸까,

아니면 내 에고가 또 자기를 지키려는 걸까?”


매 순간 완벽하게 살 수는 없지만

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만큼은

조금 더 진실한 내가 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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