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부는 왜 식식대는가?

의식주 : 의도치 않게 식식대는 주부의 근무 일지

by 박쥐마담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 가는 여성 주인을 주부(主婦)라 한다. 이는 주부의 사전적 정의다(목에 생선 가시 걸린 듯 껄끄럽지만 말보다 사회의 변화 속도가 빠르다는 점을 십분 고려해 일단 넘어가자). 국립국어원은 2016년 국민 참여형 국어사전인 <우리말샘>을 개통했는데, 이 사전에 주부(主婦)와 비슷하면서 다른 단어, ‘주부(主夫)’가 등재되어 있다. 놀랍게도 남성 주부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별도의 직업 없이’라는 수식어로 시작된다. 살림살이는 누가 해도 대접을 못 받기는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위로를 받아야 할까? 아니다. “만국의 주부들이여 단결하라!”라고 외쳐야겠다.


살림은 무엇인가. 한 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 곧 가사다. 빨래, 밥하기와 설거지, 청소 등이다. 빨래를 하려면 더러워진 옷이 있어야 한다. 그 옷은 가족 구성원의 필요와 취향에 맞게 구입해 놓은 것으로, 주부가 마련해 놓았을 확률이 높다. 일곱 살 남자 어린이가 제 양말에 구멍이 뚫렸다고 아파트 후문에 서 있는 양말 트럭 사장님에게 5천 원을 내고 검정 회색 청색 줄무늬가 섞인 양말 묶음을 살 수는 없다. 미래에는 “쉬리야 밥~” 하면 밥이 뚝딱 차려질지 모르겠으나, 현재는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밥을 하려면 재료 구입, 저장, 손질이 필수다. 그뿐만 아니라 그 어렵다는 결정 - ‘무엇을 먹을까’의 선택을 마쳐야 한다. 어찌어찌하여 만들어진 음식을 먹고 나면 세상에서 가장 끈질긴 거지 - 설거지가 기다리고 있다. 청소는 말을 안 하련다. 먼지 충만한 세상에 살고 있으니 닦을 것 천지다. 집 관리의 반은 청소, 나머지 반은 정리와 관리다. 혹 주부가 미적 안목이라도 있으면, 남들 ‘랜선 집들이’를 기웃거리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집을 만들 궁리를 거듭한다.


주부가 육아를 겸할 경우 업무량은 급격하게 수직으로 상승한다. 육아는 아이를 기른다는 것이다. 아이를 기르다 보면 두 손으로 부족할 때가 많다. 아이 둘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어야 하는데 비가 왔다. 유모차에 둘째를 태운 뒤 비닐 커버를 씌웠다. 첫째에겐 우비를 입히고 손에 우산을 들려주었다.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고 싶어 하는 첫째의 손을 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 유모차를 밀려니 내 우산을 들 손이 없었다. 바쁘고 힘들 때 쓰는 표현으로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 아이 기르면서 고양이 손 빌려 봤자 아무 짝에 못 쓴다. 어설프게 빌렸다가는 ‘냥펀치’나 맞고 만다. 이왕 빌리려면 천수관음보살의 손 정도는 빌려야 한다. 천 개의 손은 있어야 ‘도움’ 이라 말할 수 있다. 어쩌다 아이 한번 안아주는 손 정도로는 아이 기르는 주부를 도울 수 없다. 나는 작년 봄부터 7개월 된 길고양이를 입양해 기르고 있는데, 사람의 아이 셋을 길렀던 시절과 비교하면 코웃음이 절로 나온다. 고양이는 공부를 하지 않는다. 고양이는 영어 동요를 들을, 수학 문제를 풀 필요가 없다. 아프지만 않으면 된다. 무수한 사고를 쳐도 괜찮다. 고양이니까. 고양이가 3천 개 이상의 대입 전형 사이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다면, 입시 컨설팅 전문가도 주기 어려운 답을 바로 제시할 수 있다. “캣타워에나 올라가라.”


한 가정의 의생활, 식생활, 주생활을 책임지는 주부, 자녀의 육아뿐 아니라 가족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주부 중 간혹 주신(主神)이 되신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은 나의 이야기가 우스우시리라. 프로 주부가 되신 분들, 블로그에 반짝거리는 집안과 정물화 같은 음식 사진을 올리는 살림의 달인님들은 죄송하지만 내 글의 독자가 아니다. 냄비에 우유 데우다가 가스레인지에 말라붙은 찌개 국물 얼룩 닦겠다고 한눈판 사이, 우유가 우르르 끓어넘쳐 가스레인지 전부 닦아 본 적 있는 분, 애써서 저녁 지어 줬더니만 입맛에 안 맞는다고 두어 숟가락 먹다 말고는 과자 먹겠다는 자식을 차마 옆집으로 보내지 못하는 분이 내 글의 독자다. 가사와 육아를 통해 보람과 허무 사이에서 끝없이 고된 날들을 보내다 용량이 넘쳐 식식대는 분들께 권한다, 기름떡볶이를. 떡볶이가 우리를 구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