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혼 이불

의식주 : 의도치 않게 식식대는 주부의 근무 일지

by 박쥐마담

엊그제, 이불이 사망했다. 이불의 시접 부분이 닳아 조금 뜯어져 있었는데 거기에 꼼지락거리던 막내의 발가락이 딱 걸렸다. 막내는 발을 뻗었을 뿐인데 이불은 30센티미터가 넘게 북 찢어졌다. 꿰매서 다시 쓸까, 잠시 생각해봤다. 다른 이불이었다면 주저 없이 의류 재활용함에 던져 넣었겠지만, 이 이불은 그리 쉽게 처분할 수가 없었다. 내가 직접 고른, 신혼 이불이었기 때문이다.


나고 자란 서울을 떠나 부산에서 직장을 다니며 자취를 하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내 자취 살림에 가구와 가전 몇 가지를 사고 엄마의 그릇들을 물려받아 신혼살림을 꾸렸다. 당시 해운대 바닷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모 인테리어 업체의 대형 매장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은은한 조명 아래 잘 배치된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들을 감상했다. 내게는 그런 물건들을 살 돈이 없었으니, 그야말로 감상이었다. 그렇게 구경을 마치고 매장을 빠져나오려는 찰나, 반값으로 할인해주는 침구 세트를 발견했다. 베이지색 바탕에 푸른 꽃무늬가 들어간 이불, 매트리스, 베개 커버였다. 그 매장에서 받은 느낌과 분위기가 그대로 담겨있어서 그 침구 세트를 샀다는 생각이, 지금은 든다. 이불 솜을 함께 사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그 ‘커버들’만 덜렁 들고 자취방으로 돌아오면서 달콤한 신혼을 상상했던 것이 벌써 17년 전이다.


나의 진정한 ‘신혼 이불’은 따로 있었다. 나는 막내 이모님께 목화솜 이불 두 채를 결혼 선물로 받았다. 파스텔 색조의 분홍색과 푸른색 양단을 각각 회색 양단에 배접해 겉면을 장식한 이불이었다. 이불을 덮으면 적당하게 몸을 눌러주는 목화솜의 묵직한 느낌이 좋았다. 이불의 홑청도 광목이 아니라 실크였다. 안과 겉이 모두 ‘비단 이불’이었다. 광택이 남달랐다. 나도 이렇게 좋은 이불을 덮어보는구나. 신혼은 달콤한 정도가 아니라 찬란하구나. 그 이불 덕에 행복으로 반짝일 나의 결혼 생활을 그려보고 있었는데 엄마가 산통을 깨셨다. “이건 네가 관리 못 한다. 시어머님 덮으시라고 선물하지 그래?” 그 말씀이, 되게 서운하게 들렸다. 내가 받은 물건이고 한눈에 봐도 좋은 물건인데 왜 다른 사람을 주라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동생에게 양보 잘하는 착한 언니, 물건에 집착하지 않는 수준 있는 인격의 소유자는 온데간데없었다. 새댁은 비단 이불 두 채를 양팔에 끼고 퉤퉤 침을 뱉었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퀸침대 위에 비단 이불을 펼쳐놓으니 뿌듯했다. 그런데 이불 크기가 애매했다. 애매할 수밖에 없었다. 이불 두 채는 1인용이었다. 두 사람이 이불 한 채를 덮기엔 모자라고, 각자 한 채씩 덮자니 ‘한 이불’ 덮는 신혼 분위기에 안 맞았다. 게다가 세탁이 불가한 이불이었다. 얼굴이 닿는 이불 제일 윗부분, 이불 동정은 면으로 한 겹 덧대져 있었지만, 이불 전체를 세탁하려면 바느질된 이불 홑청을 뜯어야 했다. 홑청은 (실크이므로) 세탁소에 보내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세탁된 실크 홑청을 펴고, 그 위에 이불솜을 올린 뒤, 일반 바늘의 세 배 길이가 되는 대바늘을 들고 홑청과 솜을 하나로 꿰매야 했다. 거실 없는 방 두 개짜리 신혼집에 그런 작업을 할 공간도 없었거니와, 대바늘도 없었고, 바느질할 재주는 영 없었다. 내가 관리 못 하는 이불이 맞았다. 그래도 나는 끝까지 이불을 사수하려고 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 아이들이 물세탁을 할 수 없는 이불 겉면에 토를 하고, 아이들의 거센 발차기로 실크 홑청이 찢어지고 나서야 백기를 들었다.


현재, 비단 이불은 만신창이가 되어 친정 장롱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제 남편과 1인용 이불을 각각 덮어도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좀비가 무섭다며 가끔 내 이불 속을 가끔 파고드는 막내가 제 자리에서 잠을 자게 되면 대바늘을 사서 기량을 연마해 볼까 싶다가도, 마루에 꼬부리고 앉아 바느질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피곤해진다. 아무 이불이나 덮고, 일단 눕자.

이전 01화1. 주부는 왜 식식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