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과 서촌으로 귀결된 여정
지난 보름간의 일상에서의 여정은, 북촌과 서촌으로 귀결되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간에 내가 갔던 곳이 목적이 되었고, 수단이 되었고, 방법이 되었다. 그 정도로 중요한 시간들이었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북촌을 찾게 된 것은 기획한 원고 아이템과 관련한 취재를 마무리하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이날 생각하지 못한, (지난) 순간을 마주할 수 있었다. 취재를 끝내고 정독도서관에서 한참을 옛 생각에 취해 있었는데, 아끼던 영화 속 장면이 머릿속에서 자연스레 떠오른 것이다. <유열의 음악앨범>에 관한 얘기다. 영화 속에서 현우가 미수를 찾기 위해 미친 듯이 달리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 속 배경이 북촌이다.
아끼는 장면이 떠오른 만큼, 그 길을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현우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영화 속에서 흘러나오던 '오, 사랑'을 재생했다. 그 노랠 들으며 걸으니, 마치 내가 영화 속 현우가 된 것만 같았다. 영화 속 현우는, 오직 미수를 찾기 위한 일념 하나로 가파른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미친 듯이 달렸고, 또 달렸다. 한동안 잊고 있다가 오랜만에 다시금 아끼는 장면을 만나는 순간이란. 이처럼 현우도 되어 보고, 그 길을 따라가다 보니 좋아하는 TXT커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사장님과 안부 인사도 나누고, 차갑고 맛있는 라테를 한 잔 마셨다. 여름이면 늘 생각나는 곳, 부암동·후암동과 함께 따듯한 온기로, 지친 나를 보듬어주던 곳, 내가 서울에 산다는 게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것인지를 알려주던 곳. 그곳에서 다시 옛 행복을 꺼내보았다. 계획에 없던 발걸음과 흔적이었지만 옛 행복을 마주할 수 있어 새 행복을 느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국은 의도하고 싶은 순간이 된 셈이다.
다른 하루는 날 좋은 날, 서촌을 걸었다. 서촌에 있는, 좋아하는 오마카세 집에서 맛있는 초밥도 먹고, 이따금씩 찾는 스코프에 가서 좋아하는 빵도 샀다. 맛있는 음식을 통해 또 다른 방법과 형태로 행복을 들이는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최근엔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았다. 마음이 정돈되는 느낌이었다. 다른 시간에, 다른 형태로, 다른 방법으로, 그렇게 나는 행복을 만났다. 행복을 마주해 보니, 사는 게 별 건가 싶다. 이렇게 경험했던 것을 되뇌며 써 내려가는 순간을 통해, 당시의 여운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행복이면 더 바랄 게 없지 않을까. 그 정도면 되었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