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하거나 글 쓰는 순간마다, 저마다의 무게가 실린다. 말글에 담긴 무게는, 내가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영역도 분명 존재한다. 진중하고 무게감 있는 글을 쓰거나 말을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무게가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 있어서다. 따라서 중요한 건 내가 생각하고 의도하는 말글의 무게가 아니다. 누구도 읽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말글이 아니라면, 접하는 사람에 따라 언제든지 다르게 여겨질 수 있다는 걸 행위에 앞서 전제로 깔아야 한다. 보기 좋게 꾸며진 글이 판치는 세상이다. 쓰는 순간은 적잖은 무게를 담고 글 썼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 글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경우가 잦아졌다. 문장에 담긴 함의와 행간을 읽는 일보다, 종이에 비치는 예쁜 글이 대접받고 인정받는 세상이 된 셈이다.
서점에 갈 때마다 그런 제목으로 가득한 신간을 어렵지 않게 접하고는 한다. 레토릭으로 가득한 책들이다. 이따금씩 그런 책이 한가득 진열된 책장을 보고 있노라면, 누가 더 감성적 시각으로 미사여구를 잘 늘어놓는지에 대한 경연대회장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책을 펼쳐보면, 낱장에 글보다 여백이 더 많아 시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루는 그런 책을 서점 서 있는 자리에서 15분 만에 다 읽은 적도 있다. 그 책을 보면서 글에 무게가 없다는 생각이 읽는 내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옳고 그름의 문제로 접근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그런 책에 담긴 문장을 공감하며 읽을 자신이 없다. 내가 쓰는 글 또한 이 같은 미사여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안다. 나를 위한 글이 필요할 때가 있고, 읽는 사람을 위한 글이 필요할 때가 있다. 문장을 읽는 사람의 관점에서, 글쓴이가 의도하는 무게가 간극 없이 잘 전달될 수 있는, 그런 도서가 늘어나길 간절히 바란다.
최근에 읽기 시작한 <어떤 호소의 말들>은, 쉽게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문장으로 담아낸 점에서 무게감이다르게 느껴졌다. 경험을 통해 쓸 수 있는 문장이 있고, 공감을 통해 쓸 수 있는 글이 있다. 그리고 취재를 통해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해야만 작성할 수 있는 글도 존재한다. 단순히 미사여구로만 쓰인 글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글쓴이가 통제하고 조절하려는 무게를 오롯이 파악하고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다. 전문적이면서 다양한 경험과 마음으로 일어나는 진정한 공감, 사실에서 진실로 다가서는 취재를 통해 우리는 글의 무게를 느낀다. 글의 무게는, 문장을 접하는 사람이 반드시 읽어야만 느낄 수 있는 고귀한 영역이다. 책의 무게보다, 그 책 속에 담긴 글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지는 날들이 많아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