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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 Sep 13. 2018

[치앙마이 한달살기]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부부 세계여행


돌이켜보면 혼자 쇼핑도 잘하고, 밥도 잘 먹고, 커피도 잘 마시는데 유일하게 혼자 하지 않았던 게 있다.



간호사가 되기 위해 죽어라 공부를, 간호사가 되어서는 몸이 부서져라 근무를 하며 20대의 절반 이상을 보내고 나서야 내가 원하는 삶은 이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때 처음으로 올레길을 걸으러 찾아간 제주가 혼자 떠난 첫 번째 여행이자 마지막이다.

분명히 값진 시간이었지만 이상하게 '혼자' 떠나는 여행은 내키지 않았다.


"나만의 시간이 꼭 필요해!"라며 연애할 때도 주말의 하루는 온전한 나의 시간을 고집했었다. 그런 내가 혼자 어딘가로 떠나는 여행에서 오는 쓸쓸함을 이겨 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내 여행엔 늘 친구가 함께였고 결혼 후엔 늘 남편과 함께였다.



여행을 떠나오기 한 달 전부터 총 6개월을 남편과 24시간 붙어 있었다.
각자의 시간을 가질 법도 했지만 우린 투닥 거려도 둘이 함께 있는 걸 좋아했다. 떠나오기 전 무엇이 우릴 고달프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철저히 여행의 모든 시간을 둘이서 보냈다.
여행지에서 흔한 친구 사귀기도 고작 3명이 전부였다. 그냥 둘이 있는 게 편했다.
밥 먹는 것도, 커피 마시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기록을 하는 것도, 영화를 보는 것도, 쇼핑을 하는 것도 전부 함께했다.
갓 만난 연인의 풋풋함과 설렘이 우리에겐 없었다. 30년 이상을 함께 산 부부 같거나 어릴 때부터 함께 해 온 친구 같았다. 근데 그게 그토록 좋았다. 두근두근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우리에게 없어도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물론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으니 그 사람의 소중함도 몰랐다.

갑작스레 어제 남편의 한국행이 결정되었다. 그렇게 오늘 남편은 한국으로 떠났고 나는 혼자 치앙마이에 남았다.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먼저 한국 들어가! 나 여기서 혼자 일주일 더 보내다 가고 싶어. 혼자만의 시간도 참 좋을 것 같아"
사실 쿨했던 건 나였다.
'혼자'의 시간을 보내본 적 없던 나의 오만이었다.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에 신랑을 태워 보내고 하염없이 바라보다 집으로 들어왔다.
현관문을 닫자마자 눈에서 왈칵 눈물이 흘렀다.
'뭐지? 내가 왜 울지?' 이유도 모른 채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이 집이 이렇게 넓었나? 이토록 고요했었나?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새로웠다. 그리고 외로워졌다.
신랑 없는 온전한 내 시간을 기대했던 난 세게 두드려 맞은 기분이었다.

매사에 야무진 줄 알았던 나는 남편이 없으니 아주 바보였다.
그 흔한 그랩을 부르는 일도, 유심을 사러가는 일도, 맛있는 냄비밥 만드는 것도 다 나에게 숙제로 돌아왔다.
식사 후엔 곧장 설거지를 하고 화장실 휴지가 떨어지면 바로바로 채워놓고, 목마를 땐 물도 떠다 주는
(쓰다 보니 거의 노예... 인 듯 ㅋㅋㅋㅋㅋㅋ) 천사 같은 남편이 없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다.

사실 요 근래 소중함을 모르고 모진 말만 골라서 신랑에서 쏟아부었다.
참 감사하게도 벌써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려주려고 이런 시간을 우리에게 만들어줬나 보다.
왜 이렇게 게을러터졌냐며 잔소리했는데 돌이켜보니 거의 모든 일을 신랑이 하고 있었다.
더우니까 옆에 붙지 말라고 큰소리쳤는데 막상 내 옆에 없으니 사무치게 그립다.
내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 주는 일은 다시는 하지 않겠다.



혼자의 시간만큼 더 단단해져야지.
오늘만 허전함을 느끼고 내일부턴 다시 씩씩해져야지.

천사 남편은 말도 예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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