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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리 Apr 11. 2023

울보가 되었던 젊은 엄마

뉴스 특보가 연이어 흘러 나온다

"생존자 00명, 사망자 00명"

생존자의 숫자가 올라가길 간절히 바라며 지켜본다.그러나 그 간절함은 비극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아직 어린 나이다. 이 세상을 이렇게 마감하기에.

두 딸을 키우고 있던 젊은 엄마는 연일 뉴스를 보며 울고 있었다.


4월 16일

세.월. 호. 침. 몰


수학여행의 들뜬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이 깊은 바다속으로 희미해진 날.

세상에 믿을 수 없다며 엄마의 마음으로 울었던 그날. 그날 이후 나는 하루종일 눈물을 훔치고 다니는

대한민국 엄마중 한명이 되었다.


날이 좋아서 나들이를 가고 벚꽃이 진 후 봄꽃을 보러 여행도 가고 곧 다가올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봄내음을 만끽하는 사람들로 밝음이 피어나던 계절 4월에 우리의 아이들은 덜 성숙한 어른들로 인해 앞으로의 봄을 맞이하지 못하게 되었던...


해맑은 아이의 사진에 흐르는 부모의 애달픔이 감히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봄날이었다.

아이를 키워보니 어미의 심정을 그래도 조금은 알게 된다. 열달을 품고 배 아파서 낳고 온 정성으로 키워낸 나의 분신이 세상에 사라지는 순간에 어미로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해 줄수 없는 상황에서도 들기 마련이다. 끊임없는 미안함과 가슴을 칼로 베이는 것 이상의 고통과 당장이라도 따라서 가고 싶은 절규를 품고 내 자식의 웃는 얼굴을 품에 안고 하염없이 바라보며 실날의 희망으로 생사의 기로에서 모진 시간 견뎌내며 모진 가슴 때려가며 기다리던 부모들. 

내 자식이 아니어서 다행이란 쓸모없는 위안도 위안이라고 부끄럽게 가졌던 젊은 엄마였었다 나는...


봄을 좋아하는 나였다. 지금도 봄을 좋아한다.

만물이 소생하는 피어오름의 계절을 사랑한다. 

온 사물이 파릇파릇해지는 푸름의 산록도 좋아한다.

무엇을 하더라도 잘 될 것 같은 상승의 기운도 좋아한다.

지금도 3,4,5월의 봄이 되면 에너지가 생성되는 느낌이다.



몇년 전 울고 다닌 젊은 엄마는 이제는 다 자란 자식들로 인해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며

이렇게 글자를 두들기고 있다.

또 다른 엄마는 아직도 베어버린 가슴에 벌어진 상처를 안고 산다. 시간이 약이라는 것은 자식 보낸 부모에겐 쓸모 없는 이야기다. 내 자식이 돌아오는 약 말고는 치유가 될 수 있을까? 어쩌다 보니 봄을 이야기하는 이 공간에서 나는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봄과 슬픔은 어울리지 않음에도 나는 생각해내고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다. 누구를 위한 건지도 모른채.


추모영상이나 당시의 그 아이들 관련의 기사를 보지 않는다. 보기전에 벌써 눈물이 앞서기 때문이다.

세상의 어른들을 대신해서 사과할 방법이 있다면 해 주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이 새로이 만나는 세상은 참 좋은 어른들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산다.


누구에게나 따뜻한 봄날은 아닐테지만 찬바람 부는 봄날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햇살이 따스하면 부는 바람도 따스해야 하는데.. 얇은 옷 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그만 불어야 하지 않을까?


나의 봄.

누군가의 봄.

그렇게 살아가며 맞이하는 매년의  4월.

따뜻한 햇살이 고맙기도 하지만 무척이나 그립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울보가 되는 나만의 계절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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