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둠을 밝히며 소리 없이 창가에 소복이 쌓인 새하얀 눈송이들이 깜짝 파티를 열어주었다. 그칠 줄 모르는 눈송이들의 향연에 연신 탄성을 내지르며 오랜만에 겨울의 이야기들에 귀 기울인 하루였다. 성큼 다가온 크리스마스! 아이들은 어떤 선물을 받고 싶어 할까? 트리를 세우고 온갖 장식을 하며 종교와 상관없이 아이들과 함께 설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날만큼은 아이들에게 특별한 음식을 해주고, 어떤 놀이를 하며 보내면 좋을지 머리를 모으곤 했다. 며칠 전부터 생각만 해도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던 그때를 떠올리며 카드를 완성해 보았다.
하지만 어린 날의 크리스마스는 전혀 기쁘지 않은 기억으로 시작되었다. 국민학교 3학년 즈음이었을까. 처음으로 면사무소 근처에 교회가 세워지고 전도가 한창이던 때였다. 어쩌다 담임선생님께서 그 일원이 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권유가 아닌 강요가 되어 우리를 힘들게 했다. 할머니께서는 시시때때로 불공을 드리시는 철저한 불교신자셨으니 일요일에 교회를 가야 한다고 하면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다. 결국 일요일에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여린 손바닥에 빨간 줄이 가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던 아픈 기억만이 남았다.
그 아픔 때문이었을까 고교시절까지도 금식을 하며 유난을 떠는 친구와 설전을 벌이기도 했었다. 누구나 종교의 자유가 있다. 그러하니 아무리 선의의 마음일지라도 상대에게 강요나 부담을 주거나 불편함을 주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리하여 아이들에게도 종교에 관해선 터치를 하지 않았다. 큰아이가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녔으므로 한동안 교회를 다녔었다. 다만 작은 교회여서인지 졸업식에 참석했는데 헌금을 강요하는 바람에 참 많이도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더해졌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즐거운 성탄절이고 가족들과 행복하게 보내고 싶은 날이다.
오늘은 마지막 캘리그래피 시간이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강사님께서 크리스마스 카드 쓰기를 준비해 오셨다. 아~ 언제 카드를 썼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통의 방법이 다양해지다 보니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최근에 편지나 카드를 쓴 기억이 없다. 손쉬운 카톡에 전화마저도 부담스럽다는 요즘. 누구에게 카드를 써보면 좋을까. 그리 글을 많이 쓰진 않았지만 어느새 말보다는 글쓰기가 편해졌다. 오글거리는 말을 쓰기로 전해볼까나. 며칠 남지 않은 한 해의 끝자락에서 계속되는 모임들로 몸도 마음도 부산스러웠다.
오늘만큼은 편안한 마음으로 잔잔히 흐르는 음악 속에서 동심으로 돌아가 색칠을 하고, 카드를 쓰며 9개월간의 캘리시간을 마무리해 본다. 3개월만 배워본다는 것이 9개월이 되었지만 내게는 더없이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정작 캘리 솜씨는 많이 늘지 않았지만 어차피 그것이 첫 번째 목적이 아니었으니 충분히 힐링이 되었기에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잠시라도 함께했던 분들과 지도해 주신 강사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해본다. 오늘도 멀리서 오시는 한 분께서 종강이라고 군고구마와 붕어빵을 사 오셨다. 마지막 시간의 따스한 정을 가슴에 담으며 캘리그래피 시간을 마무리했다.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
어딘가에서 또 만나겠지요.
그동안 "마음을 담는 캘리그래피"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