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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Dec 26. 2019

수치심

생애 최초의 기억


할머니 집에 갔다. 외삼촌 방에 들어갔다. 삼촌 책상에는 빨간 돼지저금통이 있었다. 돼지저금통에 넣었던 돈을  이미 꺼내었던 것처럼 투입구가 약간 벌어져 있었다. 나는 거기서 50원을 꺼냈다. 그것을 주머니에 슬그머니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께 걸렸다. 나는 호되게 혼이 나고 심하게 맞았다. 저녁이 다 되어가는 시간인데 엄마는 50원을 들고 할머니 집에 가서 돌려주고 오라고 나를 보냈다. 내가 슬쩍한 50원을 들고 할머니 집으로 가는 길이 그렇게나 길었다. 할머니 집 가는 중에 지나가는 담벼락마다 손가락을 스쳐가며 최대한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 집에 거의 이르렀다. 뒤로도 앞으로도 갈 수 없었다. 할머니, 이모, 삼촌 얼굴을 볼 생각을 하니 부끄럽고 괴로웠다. 그러다 담장을 봤는데 담장 사이에 자그마한 틈이 보였다. 동전을 그 틈에 넣어버렸다. 이제 내게 50원은 없다. 해는 지고 어둑해지고 가로등이 켜졌다. 할머니 집 근처에 가만히 서 있는데 엄마가 뒤에 오셨다. 얼른 들어가라며 나를 앞세워 할머니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할머니 집으로 들어가서 내가 한 일을 말했다. 나는 그날 많이 울었다.      




나의 최초의 기억은 몇 살 때인지 모르지만 수치심이었다.


수치심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을 느끼는 마음이라고 한다. 나는 언제인지도 모르는 그때 일들이 생각나 할머니 집에 편하게 가지 못했다.     


나에게 기억된 수치심은 타인을 많이 의식하고 나를 검열하는 정도가 심해 어디에 있든 위축되고 긴장이 많았다. 사회생활을 할 때는 남을 의식하는 마음에 나의 알맹이는 작아지고, 끊임없이 남과 비교해 열등감이  생겼으며  마음속 부대낌이 잦았다. 지금도 그러한 감정은 아이들을 돌볼 때,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 가족들과 있는 자리에서도 때때로 나타난다.      



강신주의 책 『감정수업』을 보면 수치심에 대해


수치심 -마비된 삶을 깨우는 마지막 보루.                                                                                            

강신주 [감정수업]에서



 책에는 수치심은 치욕을 면하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한다.  또한 수치심은 마비된 삶을 깨우고 추한 행위를 범하지 않도록 인간을 억제하고 비난받을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행동 또한 강하게 반성하게 된다고 한다. 자주 찾아오는 수치심을 탓하던 나의 생각을 허물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 부분이었다.




이제, 균형이 깨져 나타나는 나의 수치심의 질긴 줄을 끊기 위해 알아차림의 단계를 중간에 넣는다. 알아차림으로 감정이 올라올 때는 매번 가던 길이 아닌  건강한 수치심의 길을 터 보려고 한다. 수치심을 느꼈을 때 멀리하지 않고 나를 다독인다. 이것은 '나를 돌아보란 지침이다'라고. 냉철하게 나를 돌아보며 타인을 의식하는 모습에서 벗어나 당당한 모습으로 설 수 있는 나를 연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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