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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Nov 21. 2019

배움이 일상으로

컴퓨터를 켜고 목적 없이 검색을 하다가 도서관에서 열리는 인문학 프로그램을 보았다. 전습록이라는 책을 읽는다고 한다. 할 수 있을까? 책도 잘 안 읽는 내가 이런 책을? 웃음이 났다. 무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은 마우스를 쥔 오른손을 움직여 접수를 해버렸다. 개강 첫 날 강의실을 들어가보니 다양한 연령대의 학습자들이 있었다. 언제 배웠었나 라고 생각드는 한자를  선생님은 칠판에 적고 계셨다. 위축이 되었다.굽어진 어깨를 펴보려 신청했는데 빡빡했던 학창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너무 쉽게 왔나라는 생각에 첫날 집중을 하기 힘들었다.      

 

 수업 방식은 학습자들이 정해진 분량을 읽고 와서 발표하는 토론식 수업이었다. 나는 선생님과 다른 학습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받아 적기에도 숨이 찼다. 그럼에도 신기한 느낌을 받았다.  정체되었던 체증에 실금이 생겨나며 여러 개의 좁은 길이 나는 것 같았다. 사소하지만 정답을 찾기 힘든 일들을 수업을 통해 대입해보았다. 입구만 있고 출구가 없던 생각주머니에  작은 숨 구멍을 내준 것 같았다.  

  

 8회차 수업시간이었다. 첫 수업 때 많은 학습자들이 오신 것에 비해 현재는 십 여 명의 학습자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수업에 임하면서 어려운 점, 궁금한 점, 하고 싶은 말 등을 편하게 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그때 엄마의 병원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 고집이 세고 우울증이신 엄마가 혼자서 병원을 다녀 오시지 않을 것이고, 기분을 맞춰야만 병원을 가실까 말까하는 그런 때였다. 매일매일 하고 싶은 말씀만 하고 끊어버리는 엄마의 전화에 화받이가 되었다가 심부름꾼이 되었다가 했다. 전화를 끊고 나면 불손했던 내 말투가 신경쓰이고 죄책감이 들고 아빠도 없이 혼자 계신 엄마한테 감정이입이 심하게 들었다.


 학습자들은 왕양명의 가르침과 일상에서의 느껴지는 괴리감 때문에 실천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고민으로 이야기 했다. 내 차례가 되었다.

 “책에서는 치양지[致良知]를 하라고 합니다.

제가 조금 더 서두르면 엄마 병원까지 모시고 갔다 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빠듯한 일정으로 다녀오면 집에서의 생활이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병원을 같이 못 가는게 양지를 실천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병원을 다녀오면 그게 양지를 실천하는 것 같냐’ 며 물으셨다. 나는 ‘병원에 다녀오면 불편한 마음이 없어지는 것이니 양지를 실현한 것 같다’ 라고 대답하였다. 선생님께서는 ‘병원을 빠듯한 마음으로 다녀온 후 피로감을 집안에 끼친다면 그것은 양지를 실천하는 법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책을 펼쳐 읽어보라고 하셨다.

 

책에는


 『성내거나 좋아하고 즐거워 하는 것이 있으면, 그 올바름을 얻지 못한다. 반드시 확트여 크게 공정해야만 비로소 마음의 본체이다. 이것을 아는 것이 바로 (감정이) 아직 발하지 않은 중[미발지중 未發之中]을 아는 것이다.』

  라고 쓰여져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확트여 크게 공정하다 라고 하는 뜻은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에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고 있지 못하는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하고 있는것에 떳떳하라고 하셨다.      

 

 기억한다. 기억난다. 아차 싶었다. 내 머릿속에는 엄마만 있었던 것이다. 엄마의 우울증이 하루하루 내 생활에 너무 큰 영향을 끼쳤다. 결혼 후 이룬 나의 가족들에게는 양지를 실천할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큰 성찰이 되었던 그 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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