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체육 선생님이 다가왔다. “샘, 결혼했어요?”라며 조심스레 물었고, 나는 너무 당황했지만, 지금은 혼인 상태가 아니니까 솔직하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번호를 물어보며 밥을 먹자고 했다. '과감한데?' 싶어서 번호를 줬다.
요즘 나는, 총각 남자를 만나는 게 조금 부담스럽다. 진지한 연애를 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누군가에게 내 시간과 마음의 일부를 내어주는 게 두렵다. 게다가 총각이라면 결혼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있을 테니까. 서로의 시간을 함부로 소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그래도 밥 한 끼쯤은 괜찮겠지, 그런 마음으로 저녁을 함께했다.
그는 나와 동갑이었고, 결혼 생각도 없다고 했다. 동거 경험도 있고, 제법 찐한 연애를 해본 것 같았다. 나는 첫 만남부터 이혼했다고, 이혼 후 이곳으로 이직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아이는 왜 없냐고 묻길래, 유산한 이야기까지 했다. 쉬운 얘기는 아니었지만, 숨기고 싶지 않았다. 이 모든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니까.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중, 문득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의 말투와 태도, 전남편과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자기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것, 어느 지점까지는 감정을 보지만 그 이상은 다가오지 못하는 것, 내가 어떤 이에게 감정이입하는 모습을 보자 “너 오바한다”,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식으로 툭툭 치는 것. 전남편이 하던 말과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이혼까지 하고도 또 같은 말을 듣고 있다니, 황당하고 짜증이 났다. 집에 돌아와 나 혼자 화를 팡팡 냈다. 그런데, 그 감정 뒤에는 분명한 깨달음이 있었다. 나는 저런 세계를 떠났고, 더 떠나야 한다는 것. 야생적이고 단순한 자수성가형 남자는, 나의 예민하고 친절한 부분을 받아줄 수 없다는 것. 그걸 누가 인정해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민한 네가 문제야”라는 취급을 받을 이유도 없다는 것.
나는 시끌벅적한 프로그램을 보며 웃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조용하고 어둑한 전시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이밖에도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를 보고, 그걸 글로 남기는 것이 좋다. 철학과 문학을 찾아가는 사람이다. 이런 나는 소수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다. 이제는 억지로 맞추지 않을 것이다. 좋아하지 않는 것을 함께 하려고 애쓰던 시절은 끝났다.
나는 나를 존중하며 살기로 했다. 나의 소수성과 감정은 귀한 것이니까, 소중하게 다룰 것이다. 다행이다. 과거의 중력은 여전히 강해서, 자칫하면 또 빠져들 수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알아차렸다. 그 세계를 떠나온 나를, 그리고 돌아가지 않겠다는 나를.
이제는 쥐어짜야 겨우 눈물이 나는 시기가 왔다. 답답함도 있지만, 그만큼 강을 여러 번 건너왔다. 분명히, 앞으로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