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학교의 신입생 설명회가 있던 날이었다. 사립학교이다보니, 매년 신입생을 받아야 학교가 굴러가는 것 같다. 예산을 세우기 위해 잘 보여야 하는 중요한 날이랄까? 그래서 영어과인 나도 동원되서 일을 하다 왔다.
내 일은 학부모랑 온 아이들(유치원생들)이 즐겁도록 함께 춤을 추며 놀아주는 것! 생리 첫날인데도 5-7세되는 아이들과 함께 열심히 춤을 췄다.(허리 부러지는 줄ㅠㅠ)
그리고 회식을 하고, 친한 선생님들 몇 몇과 차를 마셨다. 거기서 자연스럽게 부장 이야기가 나왔다. 부장의 언행때문에, 특히 그녀의 답정스타일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더라... 나를 비롯해서ㅠㅠ 나는 뭐 부장이 워낙 말이 안통하는 사람인데다, 이런 곳에서 일하고 싶지 않아서 그만둘 것이지만.. 긁힌 건 긁힌 거라 '언제 조져놓고 가지?'하며 한껏 날을 세우고 있다.
그러다 한 선생님이 부장에 관해 이런 이야기를 했다. '부장.. 많이 좋아진 거에요. 감정적인 대화를 어떻게 할 줄을 몰라서 누가 아파서 못온다고 하면 챗 지피티에다 물어보고 답장한데요' 라는 말을...
이게 어찌나 놀랍던지!!! "아, 이런 사람이라고?! 그래서 나 엉덩이 깨졌는데도 조퇴 잘라먹고, 괜찮냐 뭐냐 한 번을 안물어본 거구나! 감정적인 영역을 아예 볼 줄 모르는 사람이구나. 거의 뭐 사이코 패스 급인데?"싶었다.
이와 동시에... 부장을 바라보던 내 필터가 인식되었다. '부장정도면... 어느 정도의 티칭 능력도 있고, 사람도 볼 줄 알고(관리할 줄도 알고), 어른이니까 나보다 인생경험도 있고 그럴 줄 알았는데... 이거 완전히 내 기준이고 내 기대였구나!'하는 충격이 파파박 왔다.
나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본 게 아니라, 내가 정해놓은 기준을 갖고 짐작하고 기대하했다. 이는 내가 사람을 대할 때마다 자동으로 적용되는 오래된 패턴(습)이다. 부모에게도, 전남편에게도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강력하게 적용되는 "빡센 기준"이 있고, 여기에 미치지 못하면 그렇게 실망을 하다가 분노한다.
이는 '세상은 나와 같아야 한다.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이 보편적이다'라는 유아적인 시선에서 나온다. 나는 삶에 타인을 받아들인 적이 없이, 어린아이의 상태로 있다보니... '사람들은 다 나 같아야해!'라는 욕망을 계속해서 꼭 쥐고 있었다. 이는 나와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배척하는 유아기의 작동방식이지만.. 이걸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끊임없이 루프처럼 반복하게 된다.
특히, 저 능력에 관한 기준은 아버지의 언어라는 것까지 들어가봤다. '약하면 안된다. 도태되면 죽는다. 사람은 돈이 없으면 무시당하고 이용당한다. 그래서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하는 강력한 메세지가 나에게 심어져 있는 것이다. 나는 이를 철썩같이 믿고, 나를 가혹하게 몰아붙였고... 이 기준에 의해 타인들을 판단했다. 이는 너무 자동적으로 일어나서, 내가 그런지도 몰랐다. 그래서 이번에도 '부장에게 한 소리를 들었을 때, 능력도 없는 년이 나한테 뭐라한다고? 너는 그 나이 먹도록 뭐했냐? 고이다 못해 썩은물아!!!'하면서 어마어마한 공격성과 그림자를 분출했다.
이처럼 '나는 왜 이리 부장에게 실망을 했지? 부장이란 인간이 왜 이리 밉고 혐오스러운가?' 하면서 실망이 분노로 번지는 것을 보고서야 아버지의 생존불안에서 비롯한 목소리가 작동한다는 것을... 그리고 이 기준에 따라 사람들을 판단하고, 지레 짐작하고, 기대하다가 실망하고 화내는 패턴이 작동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밖에도 나에게는 '나이값을 해야한다. 어느정도 나이가 되면, 그 정도의 성숙도가 있어야 한다. 어른다워야한다'라는 상대적이면서도 엄격한 기준이 있다. 이는 부모가 나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지 못했다는 것에서 나온다. 그들이 바로 서지 못한 어른이지 않아서, 늘 불안했던 나는 엄마 아빠의 눈치를 보며 컸다. '이렇게 하면 사랑받을까? 혼나지 않을까?'하면서 부모의 반응을 면밀하게 살피는 아이였다.
이런 내면아이를 갖고 있는 나에겐 '어른인 사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 어른으로써 보고 배울 게 있는 사람'은 환상적인 대상이며 늘 찾게되는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자꾸만 사람을 볼 때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기본적으로 나보단 낫겠지? 어른이겠지?'하면서 무의식적으로 기대했다가 그게 와장창 깨져서 실망을 하다가 화를 냈다. 결국 이 실망과 분노는 나를 보호해주지 못했던 부모를 향해 축적되고 쌓여있던 것 같다. 이 또한 어린 아이의 필터인거네....
이젠 알겠다. 사람을 대할 때의 내 패턴을_ 내가 왜 누구를 잘 만나다가도 한 번씩 발작하면서 떠나는지... 그렇게 자주 인간한테 실망을 하고 혐오에 빠지는 지 알겠다. 이게 보이니, 기대를 하거나 의지를 할 대상을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대감같은 자연스러운 마음을 없애겠다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보고, 관찰하며, 감정과 판단을 구분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되는 사람과 관계를 맺으려고 한다. 이제는 그 시작이 될 것 같다.
하... 이제 부장이 한 명의 사람으로 보인다. 그 전에는 나 조지러 온 여자인 줄 알았음ㅋㅋㅋㅋ 오피스에서도 함께 있는 것이 너무 힘들고ㅜㅜ 부모에게도 이런 필터를 좀 거둬내고 그만 실망하고 싶다. ㅎㅎ (우린 아직도 많이 얽히고 섥혀있어, 힘들다) 요즘 내가 나를 관찰하고 풀려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 것이, 내 경계가 생겨나고 있다. 이게 성장하는 맛인가보다. 어린 희연의 욕망을 보고, 비난하지 않고 같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