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본 영화 '세계의 주인'에서 주인공 주인이는 장래희망에 '사랑'이라고 써넣는다. 이 장면이 계속해서 떠오르고 맴돌더라. 주인이가 이야기하는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은 도대체 뭘까?
그리고 나를 돌아보니, 나의 20-30대는 정말 사랑만 했더라. 그것이 건강한 사랑인지 아닌지... 그 방향성에 대해 생각 해 볼 겨를 없이 사랑하고 사랑해달라고 요구하며 보냈다. 23살에 러시아에서 만난 남자에 폭 빠져, 롱디를 하고, 군대를 기다리고, 또 다시 이 남자를 따라 예카테린부르크로 가는 등... 그저 '사랑'에 최선을 다했다. 결혼을 한 뒤에도 마찬가지다. 집안일이나 가풍에서 오는 문제로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끝은 언제나 '(당신과) 잘 살아보고 싶어!'하는 쪽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지난 달_ 넷플연가에서 하는 번역모임에 다녀왔다. 자기소개를 듣다보니, 20-30대의 똑똑한 영어원문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모였더라. 30대 초반의 여자들이 얼마나 똑부러지고 자기 커리어를 챙기며 사는지!!! 부러워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직업도 기자, 변호사, 컨텐츠 회사를 다니는 사람 등등 얼마나 다양하던지, 전남편과 나+가족만 있던 좁은 세상에 살던 나에게 이 모음은 충격 그 자체였다.
20-30대의 나는 온통 결혼생활유지와 임신과 출산에만 꽂혀있었는데!!! 요즘 30대 초반의 여성들은 아예 그런 생각을 안하고 자기에게 집중하는 것 같이보여, 세대차이도 느꼈다. 동시에 '나는 왜 저리 아이낳는 거에 집착하면서 병신같이 살았을까?'하는 열등감도 올라왔다.
성수에서 모임을 하고 집에 오는 길엔 '세상이 변했구나. 요즘 여자들 진짜 멋있다. 이런 사람들 만난 거 자체가 고자극이다. 부럽다. 야무지다 진짜'이런 마음과 '나는 뭐했나?'하는 질문들이 동시에 올라왔다.
그리고 어제, 2회차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아이스브레이킹 질문으로 '일상에 균열을 낸 사건이 있었나요? 있다면 이야기해주세요' 라고 하더라. 나는 영화 '세계의 주인'을 본 이야기를 하며 이혼사실을 밝혔다.
"저는 20-30대때 사랑만 한 거 같아요.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고, 두 번의 유산을 했고.. 15년을 만난 사람과는 작년에 헤어져서 집터도 직장도 옮기고 혼자 살고 있어요. 저는 이렇게 극(아이엄마 워너비)에서 극(돌싱찬양)으로 이동하는 이행자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런데 영화 속의 주인을 보면서 이런 얘기를 더 해야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삶에서 예기치 않는 사건은 늘 일어나잖아요. 그런 폭력을 당해도, 나의 한 부분이 부숴져도, 소중한 것을 잃었어도 잘 산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저는 정말 잘 살고 있거든요 ㅎㅎ"
그렇게 '나는 그 나이때 뭐했지?'라는 열등감 가득한 질문에 찾아낸 내 대답 즉, 사랑으로 정신승리를 했다. ㅋㅋㅋㅋㅋㅋ 진짜다. 내가 여전히 밤마다 '당신 보고싶어ㅜ'하면서 우는 것... 매일 매 순간 예기치 않은 곳에서 튀어나오는 당신의 흔적과 그로 인해 불러일으켜지는 기억, 그리고 내 손으로 엄마에게 보내야만 했던 반려견 등등 상실로 몸부림치는 감각들이 모두 진짜 진하게 사랑했다는 증거다.
어떤 사랑이든 나는 진심 찐하게 했다. 내가 나를 잃은 것 같아, 그런 나를 용서할 수 없어 난리를 치는 것도, 그래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꾸역꾸역 읽고 있는 것도, 누군가가 다가와도 '나를 또 잃으면 어떻게하지?'라는 공포감에 휩쌓이는 것도 모두 다 사랑했다는 근거다.
주인이가 이야기하는 사랑은 타자보다 '자신을 향한 것'같다. 나의 20-30대도 엄마 아빠를, 전남편을 향해 사랑한다 이야기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나를 사랑하지? 나를 사랑할 수 있지?'라는 걸 찾아왔었다.
주인이도 그런 것 아닐까? '나를 사랑하는 법. 나를 용서하는 법. 나를 껴앉고 사는 법. 이렇게 부숴지고 망가진 나라도, 그렇다고 말하는 세상의 시선에도, 그런 나와 나의 삶을 사랑하는 것, 말 그대로 ;amor fati 하는 걸 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것이 장래희망이란 말이 맞는 듯하다. 이것은 나의 장래희망이기도 하고_
작년의 나만 해도, 이혼했다라는 사실이 너무 수치스럽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베프였던 전남편과 헤어지니 어떤 인간관계도 남아있는 것 같지 않았고, 커리어도 끊긴 상태에, 두 번의 유산과 여러 번의 자궁수술 그리고 조기폐경 진단으로 여자의 삶까지 끝났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어떠한 삶의 빛이 안보였다. '그럼에도 살아야겠다!!!'하는 생존의지는 있었다만, '도대체 이 상황에서 어떻게해?'하면서 어둠 속에서 움츠러든 채 막막해했다. 오래도록 누군가의 딸, 와이프로 살다가 그 타이틀이 사라지니 실패자로 보이니 어딜가도 위축되고, 겁이 났다.
저 시기를 108배에, 명상도 하고, 글도 쓰고, 달리기도 하고, 살아낼거라고 실재를 마주하며 발악하면서 보냈더니... 이젠 '이혼녀'라는 것이 좋다. 사랑을 해 본 사람같아서, 어쨌든 뭐라도 해봤다는 딱지라서 좋다_
"그렇다. 나는 끝까지 가 본 사람이다!!!" 그만큼 나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라고!!!
이젠 타인을 향해 요구했던 사랑의 방향을 나에게로 갖고 온다. 그리움에 사무쳐도, 혹은 어떤 충동이 올라와도 일단 멈춘다. 멈추고 지켜본다. 저 충동에 응답하는 것이 나에게 옳을까? 이것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일까? 나는 그 사람이 보고싶은걸까? 아니면 그 사람과 대화할 때의 감각을 원하는 걸까? 이 충동의 주체는 누구지? 누구의 목소리인거지? 하면서 질문을 던져본다. 그러면 멈춰지고, 이성적인 판단이 된다.
이렇게 멈추는 내가 보이자 '안전하다.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다'라는 신뢰감이 느껴진다. 이혼 후 일년은 스스로와의 전쟁이었다. 저항과 버티기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지금도 진행중) 그리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나를 살게하는, 사랑하는 법이더라.
주인아_ 그러니 너도 잘하고 있단다. 너는 너를 사랑하고 있어. 그리고 나도 ^ ^
마지막으로 감히 말한다. 주인이와 나처럼 자기의 고통과 서사를 말하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그렇게 연대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