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의 계보

by Tess


To be happy

you must let go

of two things:

the fear of future pain

and the memory of past pain.


-Seneca


세네카는 말한다.

행복해지려면, 미래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과

과거의 고통에 대한 기억 - 이 두 가지를 놓아야 한다고.


하지만 요즘의 나는 과거를 파보고 들여다보고 깊게 파면서 어떤 퍼즐을 맞춰가고 있다. "내가 이래서 그랬구나!" 하면서 말이다.

최근엔 내 결혼이 철저히 도피에서 시작되었다는 퍼즐조각을 발견했다.


약 12년 전_ 대학을 졸업하고 사립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나는 봄방학을 맞이하여 부모님을 모시고 보라카이로 여행을 갔다. 내 월급으로 '같이 가요!'하면서, 잔뜩 기대에 부푼 여행이었다. 첫 가족여행이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아빠는 기념품을 사는 엄마와 나보고 돈을 쓴다며 뭐라했다.

"또 돈쓰냐?"라며 한 마디 하는 아빠의 말에 엄마는 입을 닫았고, 나는 손에 쥔 산호목걸이를 내려놓았다. 그 뒤로도 아빠는 호텔방에서 나가기를 거부하며 "이것도 안한다, 저것도 안한다"며 땡깡을 부리며 말도 안되는 고집을 피워 복장을 터지게했다.

아빠는 자기의 일터, 즉 공장을 떠나면 불안때문인지 뭔지... 이상하게 변한다. 휴식과 쉼이 안되는 사람을 휴양지로 데려왔으니, 아빠의 그 곤조와 여러가지 땡깡, 불만 등을 받아내야만 하는 여행이었다.

그때 나는 전남편(구남친)과 사귀던 사이였는데, 이런 아버지를 보며 다짐했다.

'내 반드시 이 집을 떠나리라! 이런 아빠에게서 벗어나리라' 그때가 전남편이 제대하면 러시아로 같이 가야지하며 마음을 굳게 먹었던 순간이다. 엄마도 동의하기도 했고...


이 지점만 봐도 내가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싶다는 도피의 대상으로 전남편 L씨를 선택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토록 L에게 집착했던 것일까? 내 인생엔 너뿐이다. 너다"라면서 확신하고, 추운걸 그리 못 견디는 내가 안정적이고 좋아하던 직장까지 때려치우고 가족도 포기하고 한달음에 너와 함께하려 했던 것일까?




이건... 내가 처음 L씨를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만났을 때로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봐야한다. 내가 23살이던 시절로 말이다.

러시아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나는 왕따를 당했다. 08-09학번들 사이에서 유일한 06학번이기도 했고, 통일교를 믿는 학생이랑 룸메였는데 걔랑도 트러블이 있었다. 22살-26살 사이에 성대 러문과 아이들로만 있는 집단에서 적응을 못했다.(아마 미국갔다온 지 얼마 안되어서도 그런듯;;)


그렇게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말을 잘못했나? 왜 나는 잘 못어울리지? 왜이리 이 사람들이 불편할까?'하면서 나에게 화살을 돌리고 침잠해갈 때... 그곳에서 친구가 되어주고, 같이 놀자고 하면서 챙겨준 사람이 L이다. '괜찮아, 문제가 없어'라고 말해주고, 먹을 걸 해주고, 나를 방어하고 보호해준 느낌이 들도록 해줬다.


내가 스스로를 의심하는 고통에 빠져있을 때, 나의 편을 들어준 사람_

나에게 문제가 없다고 말해준 사람_

그가 그였다.



이러니 내가 '몸이라도 주자'하면서 고마워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아빠를 벗어나 나를 의탁해도 될 사람이라면서 폭싹 안겨버렸다.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 왜 그토록 L _ 당신이어야 했는지! 23살 왕따를 당하고, 언어, 문화, 환경 모두 낯선 곳에서 나는 존재자체가 위태로운 상태였다. 여기서 음식을 챙겨주고, 편 들어주고, 옆에 있어준다는 것은 친절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래서 나는 그를 사랑보다 안전의 장소로 믿었다. 나는 생존을 위해 그를 붙잡고 매달렸던 것이다. 이게 23살 강렬한 보호를 원했던 여자애는 L이라는 동앗줄을 붙잡았다.


하... 내가 그토록 아버지를 벗어나고 싶었구나. 그래서 내 눈엔 L밖에 안보였던 것이고, 그 후로도 L에게 매달렸던 것이구나. 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저렇게 직장을 버리고 러시아를 따라간 뒤에는 '남자 때문에 부모를 버리고 온 애'라면서 스스로를 얼마나 벌줬는지 모른다. (지금보니 화살을 나에게 돌리고, 과하게 내 탓을 하는 것! 이게 더 큰 습이네....)


그 당시 나는 가족 안에서의 복종을 사랑으로 알았다. 그래서 그 세계를 떠난다는 건 사랑을 끊는 배신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에 가서 몸은 멀어졌어도 정신적으로는 아버지라는 감시의 언어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이를 '독립'이기보단, 배신으로 느껴 어마어마한 죄책감을 느꼈다. 나중에 난소에 혹이 생겨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그리고 이렇게 같이 러시아에서 살았단 이유로 결혼의 필연성과 의무감이 강화되었다. L에게 '이제 너가 나 책임져야지!'하면서 유/무언의 압박을 한 것이다. (그 친구도 진짜 나한테 얽혀서 무거웠을 것이다) 그리고 20-30대를 다 너에게 바쳤다면서, 나에게 어떤 보상을 하길 바랬다. 내가 너에게 이만큼이나 희생했으니, 너는 여기에 응당 보답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이처럼 도피가 낳은 사랑의 몰입과 의존은 관계의 균형을 깨지게 했다. 이는 전형적으로 도주한 자가 겪는 패턴이다.


그 후엔 내가 쏟아넣은 매몰비용때문인지, 전남편을 '당신은 좋은 사람이어야만 한다'라며 우상시했다. '이건 아닌데... ' 하는 점이 보여도, 애써 보지 않으면서 '그래도 너만하면... 너 정도면'하면서 나를 속이고 보고도 안봤다하고 나는 결혼을 잘했다며 속이고 또 속였다.



하... 여기까지오니, 내가 왜 그토록 'L이란 사람에게 빠져있었는지' 그 과정이 쓱쓱 보인다. 전남편을 거의 완벽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내가 고른 사람이니 너는 감사해라라는 양가적인 태도를 가진 채, 우리는 행복해야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이 정도로 한 남자에게 몰입하고 가짜 헌신을 하던 나는 경계라곤 하나도 없는 인간이었다. 부모에게선 '배신자'라는 시선을 받고, 전남편에게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시선에서 동시에 시달리면서도 그 구조를 벗어날 줄 모르던...

나는 사랑을 붙들었던 것이 아니라, 안전을 원했다는 것을..... 아버지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L을 붙들고 있었다.


그 선택은 그때의 나에겐 생존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너무 어렸고, 너무 위태로웠으며, 너무도 혼자였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그를 붙들었다. 이제는 그것을 이해한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도피하지 않는다. 의존으로 도망치던 나는 이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용을 쓰고 있다.

안전이라 여겼던 어떠한 방어막 없이도 살아본 지난 1년_

나는 내 가족을, 나의 상처를, 나의 선택을 내가 직접 감당해왔다.

의존의 자리에서 벗어나 나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

이제 나는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삶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되고 있다. 그 사실이 나에게 묘한 안도감을 준다. 다행이다. 이런 내가 되어가고 있어서!


세네카는 과거의 고통을 놓으라 했지만, 나는 그 고통의 뿌리를 들여다봄으로써 비로소 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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