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TV를 보는데 스피드 퀴즈를 하고 있었다. 부부가 나와서 서로 질문을 하고 답을 빠르게 알아맞히고 있었다. 아내가 남편한테 질문을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그러자 남편이 대답을 못하고 당황하기 시작한다. 시간을 흘러가고 아내는 답답해하며 얼른 맞히라고 재촉은 한다. "갈비?" 하니 '땡'소리가 나온다. 결혼을 한 게 오래되어 보이는 부부인데도 자신의 배우자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맞히지 못하는 모습에 웃다가 옆에 있는 남편에게 물었다. "만약에 우리 부부가 스피드 퀴즈를 하게 된다면 당신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뭐라고 할 거야?" 남편은 잠시 고민하더니 "음... 당연히 삼겹살!"하고 대답을 한다. 나도 남편한테 질문을 했지만 가장 좋아하는 걸 하나만 고른다면 무엇을 말할까 고민이 되었다. "아니야. 그것보다는 고구마 줄기를 더 좋아해." 내가 얻은 대답이다.
올해 막바지 겨울을 보내가 있을 때 시에서 운영하는 시민농장 텃밭 체험에 신청을 했다가 떨어졌다. 몇 년 동안 10평, 5평을 분양받아 텃밭을 가꾸었기 때문에 떨어진 충격이 컸다. 아마 갈수록 도심 속에서 땅을 밟고, 자신의 손으로 채소를 키워 먹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경쟁률이 높았던 까닭인 것 같다. 텃밭 분양에서 떨어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그럼 고구마 줄기는?'이었다. 각종 무농약 쌈채소가 아니라 감자, 오이, 토마토, 가지 등 채소가 아닌, 고구마도 아닌 고구마 줄기였다. 그만큼 난 고구마 줄기를 좋아한다. 고구마 줄기로 하는 요리는 여러 가지다. 고춧가루와 액젓을 넣은 김치 양념을 만들어 담그는 고구마 줄기 김치, 된장을 풀어 넣고 잘박하게 지지면 색다른 맛이고, 갈치나 고등어를 넣고 무 대신 고구마 줄기를 깔아 조림을 만들어도 별미다. 그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고구마 줄기 볶음이다.
여름이 되면 친정집 밥상엔 고구마 줄기가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왔다. 친정집 앞에 텃밭이 있을 때는 고구마를 심어 고구마 줄기를 먹었지만 그곳을 나중에 아빠가 공장으로 사용하면서는 고구마 줄기를 사다 먹었다. 아빠는 작은 딸이 좋아한다며 시장에 다녀오실 때 늘 까만 봉지에 고구마 줄기 굵은 것 한단이 들어있었다. 근처에 시장이 있는데 아빠가 자전거를 타고 그곳을 다녀올 때는 뒤 안장에 자주 고구마 줄기가 매달려 있었다. 동그란 스텐 밥상에 고구마 줄기 볶음이 올라오면 그냥 집어 먹기도 하고, 넓은 그릇에 밥과 고추장을 한꺼번에 넣고 비벼 먹기도 했다. 아삭한 식감에 들깻가루의 고소한 향이 가득 퍼지는 그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손이 많이 가는 요리다. 일일이 다 손으로 까야하는데 줄기 끝 부분을 톡 하고 부러뜨려 쭉 잡아 내리면서 껍질을 깐다. 그러면 꼭 보라색 껍질이 반쯤 남는다. 한 번 더 긴 줄기의 절반쯤 되는 부분을 또 꺾어 잡아 내리면서 나머지 껍질을 까야한다. 이렇게 한단을 까면 양쪽 손은 물론 손톱 밑까지 까맣게 물이 든다. 물이 든 손톱 밑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껍질을 깐 고구마 줄기는 끓는 물에 데쳐 프라이팬에 들깨가루와 갖은양념으로 볶아내면 완성이다.
오래전, 세 번째인가 임신을 했을 때였다. 친정엄마가 전화해 무슨 음식이 먹고 싶으냐고 물어봤다. 난 고구마 줄기 볶음이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고기도 아니고, 고작 고구마 줄기냐고 하면서도 '알았어. 맛있게 해 놓을 테니 잘 다녀와'라고 했다. 정기검진이 있던 날 친정에 가기로 했고, 엄마한테 가서 잔뜩 얻어먹으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산부인과에서 아기 초음파를 하는데 의사 선생님은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또다시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벌써 몇 번째의 유산인지... 친정엄마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둘째 딸, 언제쯤 도착해? 시간 맞춰서 따뜻한 밥 해주려고." 그 말에 왈칵 울음이 대답보다 먼저 나왔다. 전화기를 잡고 한참을 우는 나를 통해 엄마는 어떤 상황인지 짐작을 하는 것 같았다. 아무 말도 없이 듣고만 있던 엄마가 말했다. "고구마 줄기 많이 해 놨는데..." 하며 친정에 와서 몸도 추스르고 밥도 먹기를 원했지만 가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건강한 아이도 낳았고, 눈물 없이 옛날이야기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해마다 뜨거운 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무렵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고구마 줄기를 마주하면 꼭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생각이 난다. 해마다 고구마 줄기 한단을 까고 난 뒤 까매진 손톱 밑을 비누로 씻는다. 잘 지워지지 않는 손톱 밑을 보면서 생각한다. 그때 엄마는 까맣게 물든 손을 닦으며 얼마나 울었을까. 그 고구마 줄기 볶음을 제대로 먹을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