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학교는 17

학교, 실수 왜 끝나지 않는가

by 희앤

학교는 매번 동일한 선상에서 똑같은 실수를 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점.

그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첫째는 책임자와 관리자의 무신경과 소홀함 때문이다. 학교는 기업처럼 업무를 두고 상과 벌을 엄격하게 주지 않는 특성이 있다. 게다가 학생은 교사의 지도에 따르는 것이 보편적인 규칙이다. 그런 상황에서 학생이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주장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부당해도 그냥 넘어가는 것이 일상적이다.


자신의 소신이 강하고 대가 썬 학생이 있어 선생님의 잘못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가뭄에 콩 나듯 하지만, 그것 역시 버릇없고 싹수없다는 프레임으로 씌워 버리면 그만이다.


항상 자신보다 약한 아이들만 상대로 그런 방식으로 일 처리를 하다 보니 그런 습관이 일반인들 앞에서도 무의식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아마 학교에 출강하는 강사들이라면 이런 사실에 크게 공감할 것이다. 강사라면 누구나 경험하게 된다는 말을 들었다.


둘째, 학교 측이 일부러 일을 무산시키고자 의도적으로 꾸민 일일수도 있다. 표면적으론 실수라고. 하지만, 학교 내부에서 자신들의 뜻에 따라 계획한 일일 수도 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아주 간단한 질문을 통해서 답을 얻어보자.


학교 측은 공문이 오지 않아서 신청을 못 했다는 이유를 댔다. 학교가 신청에 대한 의지가 있었고 공문이 오지 않았다면 교육청에 문의를 하면 된다.


또 정말 깜박 잊어버렸다면, '학교의 바쁜 일을 처리하다 보니 신청 날짜를 넘기게 됐습니다. 죄송하네요'라는 정도의 아주 꾸밈없는 단순한 말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공문이 안 와서 신청을 못 했다는 말은 아주 교묘한 구석이 남아있기에 충분하다. 학교 측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변명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런 식의 변명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학교 측의 잘못이 아니면, 다른 제삼자의 잘못이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럼, 교육청 담당 직원 선생님의 잘못이라는 말이지 않는가.


하지만 관계 교육청 선생님은 아주 정확하게 공문을 발송했다. 게다가 여러 차례 접수 부탁 쪽지까지 전달했다. 이 정도의 일 처리 능력이라면 마땅히 칭찬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측의 실수로 교육청선생님은 애꿎게 비난을 받을 수 있었던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자신의 실수로 인해서 타인이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데, 아무렇지 않게 그런 이유를 댈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교육청 담당 선생님이 그 자리에 없으면 그만인가.


그럼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자.

학생이 자신의 실수를 감추기 위해서 친구에게 덮어씌웠다고 하자.

이 사실을 안 선생님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모르는 척 넘어간다.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듣고 그냥 넘어간다.

그건 교육자가 아니겠지요.


진정한 교사라면 학생에게 잘 알아듣도록 타이르고, 잘못을 인정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상대 학생에게 정중하게 사과하도록 요청 또한 할 것이다. 혹시 용기를 내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학생을 위해 따뜻한 응원을 보내며 선생님이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겠다며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와 같은 보편적이면서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학교 측 실수를 교육청 담당 선생님에게 떠넘긴 태도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죄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자신의 인격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 마음은 편하지 않을 것이다.


일을 근시안적으로 접근하여 단순히 처리하면 후회가 남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행정업무를 담당한 경험과 학생들과 오랫동안 생활한 습관 중 하나가 크로스 체크다. 교차 확인을 하지 않았을 경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것은 물론이고 1년이라는 시간을 다시 공들여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어린 학생들은 좌절을 했다.


그래서 그들 대신 확인 하고 또 확인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서 이번 경우에도 확인 작업을 했다.

학부모공동체 사업의 불발 원인을 분석하여 담당 선생님께 전달했다.


요즘 악성 민원으로 몰아붙이는 풍조가 있어서, 이를 피하기 위해서 구두로 전달하기보다 문서 작성방식을 택했다.


학생 담당 선생님께서도 인정하셨다. 너그럽게 이해해 달라고 말하시며, 서로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고 하셨다.


재차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으며

이번 일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고 답했다.


담당 선생님께서는 그런데 기분은 좋지 않다고 했다.

나는 이에 당연하지요,라고 말했다.

지적을 받아서 좋을 사람이 어디 있는가.

어찌 보면 담당 선생님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 같아서 좋기도 했다.


그런 성향의 선생님이라면 서로 솔직하게 일은 일로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건강한 대화 방식이야말로 신뢰를 쌓는 기초인 셈이다.


그럼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자.

자신이 실수해서 정중하게 지적받는 일도 기분이 좋지 않다. 하물며 자신이 전혀 잘못하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옳은 일을 하고도 교사에게 비난을 받는 학생과 학부모가 있다고 하자.


과연 학생과 학부모의 기분은 좋을 수 있을까.

학교 측 실수, 교사의 잘못을 왜 학생에게 전가하는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떠밀어내기 위해 입에서 수없이 난사한 총알에 상처투성이가 된 학생들.

그들의 기분과 감정은 아는가.


작년 말에 전북학생의회 서류접수만 해도 그렇다.

교사의 실수를 왜 학생에게 전가하는가.


숭고한 일을 하는 것처럼 자신을 포장하고 잘못된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30년 교사 경력으로 학생의 건전한 참여의식을 훼손하려고 하다니,.....


그때도 그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제 일도 아니었어요>

자신 일도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시간을 잡아먹고 있었는가. 담당 선생님에게 연락하면 되었을 거를. 옹색한 변명.

그 속에 교사의 인격과 실력이 담겨 있다.


다른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에게 알렸다.

<민원감이네요. 그냥 민원 넣으세요>

오히려 다른 학교 선생님들이 접수에 더 적극적이었다.

그분들의 도움이 상당히 컸다. 사람의 힘이 정말 대단하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만약 서류가 오전에 접수가 되지 않았다면, 도교육청에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추억을 가질 수 있었는데, 그만 일이 쉽게 해결되고 말았다.


나는 민원을 넣지 않았다. 다른 방식으로 개선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민원 때문에 수업에 지장이 있다는 이야기가 절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차곡차곡 기록으로 남기는 방법으로

다른 교사들도 보면서 경각심을 가질 수 있는 교육적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그런 면에선 성공적이다.

이미 교육적 효과는 아주 컸다.

동료에게 일처리로 하고 싶었던 말을 꾹꾹 눌러가며 참아야 했던 교사들은 <지금 학교는> 연재 글을 주변에 보여주면서 자신의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다고 말에 박장대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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