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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빈작가 Sep 09. 2022

나의 누울자리 우리 엄마

예의바른 무남독녀     


아버지가 군인이셨다. 

나는 무남독녀 외동으로 혼자 컸지만 아주 예의 바르게 자랐다. 

동네 어르신들 교회분들 모두에게 착하다고 늘 칭찬만 받았다. 

학교에서는 선생님 말씀을 너무 잘 듣는 모범생이었다. 

반장이나 주번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믿음직하게 심부름을 맡기는 그런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 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 심지어 대학때 까지도 학교, 집, 교회만 다녔다. 

착한 아이들도 사춘기때는 반항도 한번씩 하고 그런다던데 그 흔한 일탈도 한번 없었다. 

아주 착한 아이었다. 

아니 착한 아이여야만 했다. 

주변에 모든 분들이 희빈이는 효녀로 착한아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부흥하기 위해서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엄마와 다툼이 있었지만 금방 풀렸고, 엄마한테도 나는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딸이었다. 


얼마 전에도 딸아이가 친정엄마에게 “할머니 엄마는 사춘기를 어떻게보냈어?” 하고 질문을 했는데 

엄마는 “ 네 엄마는 그런것도 없었어. 너무 착해서 사춘기라고 반항하지도 않았고, 딱히 크게 속 썪이지도 않았고, 사춘기가 있는지도 모르게 지나간 것 같은데?” 라고 답변을 해주셨다. 

할머니의 답변에 아이가 좀 시시해 하기는 했지만, 엄마한테 나는 그렇게 착한 아이였다. 

엄마나 나나 내가 엄마한테 하는 말투가 이상한지 알지도 못한 채 그리 살았다.      


엄마에게만 예민했던 아이     


고등학교 입학하던 해 2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사춘기가 없다셨지만 내 기억에 그때쯤 사춘기가 같이 왔던 것 같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엄마도 힘드셨을텐데 엄마에게 유난히도 예민하게 굴었었다. 

예민하다 못해 무례하게 굴기도 했었다. 

대외적으로는 엄마만 생각하는 더없이 착한 딸이었지만, 나의 누울자리 또한 우리 엄마 뿐이었다. 

밖에서는 남들에게 싫은 소리 하나도 내지 못하다가 유독 엄마에게만 생채기 같은 소리를 해 댔다. 

아무 이유 없이 그러기도 했다.      


어느날 엄마는 나에게 그냥 저녁 메뉴에 대해서 물어보셨다.     

 

“희빈아, 저녁 뭐 먹을래?”

“된장찌개”

“생선 구워줄까?”

“아니”     


별 말도 아닌 일상대화인데 단답형으로만 대답하고, 그 말투 또한 예쁘지도 않았다. 

분명이 위와 같이 대화 했는데, 저녁상에 생선이 올라왔고, 그걸 발라서 내게 올려주셨다.    

  

“싫다고 안 먹는다고, 아까 안 먹는다고 얘기했잖아.”

“그래도 하나 먹어봐.”

“싫어 안 먹는다고.”      


이미 싫다고 했었는데, 굳이 그걸 주는 엄마가 싫었다. 

‘그럼 물어보지를 말던가. 물어봐서 싫다고 했는데 굳이 이걸 해서 이렇게 주는 이유가 뭐야.’ 

괜시리 짜증이 났다. 

사실 그냥 올려져 있는 거 하나 먹었어도 되었을텐데 나는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엄마는 엄마대로 마음이 상했다. 

상황이 문제가 아니고 그 짜증이 배어 있는 말투가 문제였을 것이다.      


결혼을 해서도 같은 말투     


그 이후 내가 결혼을 한 후에도 바뀐 것은 없었다. 

신혼 때 엄마가 우리집에 왔다. 

신혼 살림은 15평 방 2개짜리 작은 아파트에서 시작을 했다. 

결혼전에 살림이나 청소나 엄마가 다 해줬기에 한번 해본적도 없이 결혼을 했나보다. 

작은 방 하나에는 수납 공간도 없이 마치 막 이사를 한 것과 같이 이것저것 물건들을 방에 깔아 놓고 살고 있었다. 

안 그래도 작은 집에 방하나를 창고로 쓰는 모습들을 보시고, 엄마는 집에 발을 들여놓자 마자 잔소리를 하셨다. 


“이 방은 이게 뭐냐? 정리를 좀 해야지. 언제까지 이렇게 놓고 살거야? 여기 먼지가 그냥 있어. 이걸 왜 여기에다가 놨어? 설거지는 먹고 그때그때 해야지 왜 쌓아 놓고 있는거야? ”


쉬지 않고 말씀하셨다. 

입은 계속 잔소리를 하셨지만, 손은 바삐 움직이셨다. 

창고 방에 수납장이 없어서 널부러져 있기는 하지만, 베란다에서 보관이 가능한 선풍기나 화장지 등은 베란다로 이동해주셨고, 그 밖에 물건들도 나름 정리를 해주셨다. 

그리고 씽크대에 쌓여 있는 설거지도 해 주셨다. 

그런데 나는 엄마에게 하나도 고맙지 않았다. 

그저 잔소리를 듣는 것이 싫었다. 

엄마가 내 살림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 그 상황도 너무 싫었다.      


“하지마. 하지마. 누가 엄마보고 이거 하랬어? 왜 하면서 잔소리야. 뭐라 하지를 말던가. 아니면 청소를 하지 말던가. 하지 말라고. 손도 대지마”      


말투와 억양에 짜증이 한껏 배어있었다. 

기분좋게 딸네집에 놀러온 엄마는 한심하게 살림을 하고 있는 딸을 보며 잔소리 하다가 그래도 물건을 치우고 도와줬는데 고맙다는 소리도 못 들을 망정 딸의 짜증내는 목소리에 기분이 엄청 상해서 집에 갔으리라.      

무남독녀 외동이지만 군인의 자녀로 예의 바르게 교육 받아 모든 사람들이게 친절하고 칭찬받는 내가 유독 엄마한테만 말투가 이상한 이유가 뭘까?

엄마가 무슨 말만 하면 짜증 나는 이유가 뭘까? 

엄마가 무슨 행동만 하는 짜증이 나는 이유가 뭘까?

왜 나는 엄마한테 늘상 짜증 나는 말투를 사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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