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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른도로시 Aug 30. 2023

진정한 행복을 찾아 떠난 여행

100년 전 공주 이야기 두 번째, '현명한 공주'(2)


1.

1편에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2. 


“저 새는 틀림없이 행복할 거야.” 공주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새를 불렀습니다.

“넌 왜 노래를 부르니?” 공주가 새에게 물었습니다.

“난 행복하기 때문에 노래를 불러.” 종달새가 대답했습니다. 

“넌 왜 그리 행복하니?” 공주가 또다시 물었습니다.

“왜 그리 행복하냐고? 신은 자비로우시고, 하늘은 높고 푸른 데다 들판은 생생한 초록빛이잖아. 행복하지 않은 게 이상하지!” 

“가르쳐 줘, 그럼, 어쩌면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럴 수 없어. 어떻게 가르치는지 모르거든.” 종달새는 공주의 부탁을 거절하고는 노래를 부르며 하늘 위로 높이 올라갔습니다. 페르난다 공주는 한숨을 쉬며 궁전으로 향했습니다.



 방문 밖에서 그녀는 자신이 기르는 작은 강아지가 반가워서 짖고 뛰어오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작은 강아지야. 가엾은 작은 강아지야. 나를 보니 그렇게 기쁘니? 넌 왜 그렇게 행복하니?”          

“왜 행복하냐고?” 작은 강아지가 깜짝 놀라 낑낑 댔습니다. “밥때가 되면 마음껏 먹을 수 있고, 부드러운 쿠션 위에 누워 푹 쉴 수 있는 데다 네가 항상 나를 보살펴 주잖아. 이 정도면 충분히 행복할만하지 않니?”

“나에게는 충분하지 않아.” 공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하지만 공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작은 강아지는 그저 꼬리를 흔들며 그녀의 손을 핥을 뿐이었죠.      


방 안에 들어서자 공주가 가장 아끼는 어린 시녀 도리스가 그녀의 드레스를 개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도리스. 아주 즐거워 보이는구나. 넌 어쩜 그리 행복하니?” 

“공주님, 저는 축제에 갈 거예요.” 도리스가 대답했습니다. “루크와 거기서 만나기로 했거든요.” 그러더니 별안간 입을 삐죽 내밀며 덧붙였습니다. “새 드레스와 어울리는 예쁜 새 모자를 가진다면 참 좋겠어요.”

“그렇다면 넌 완전히 행복한 건 아니구나. 나를 가르칠 수 없겠네.” 공주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해질 무렵, 공주는 마을로 내려가 첫 번째로 도착한 집 문 앞에서 한 여자를 보았습니다. 그녀는 아기에게 젖을 주며 재우고 있었지요. 아기 엄마는 두 뺨이 장밋빛으로 달아오른 통통한 아기를 뿌듯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공주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참으로 멋진 아이를 뒀구나. 넌 틀림없이 아주 행복할 테지.”

여인이 미소 지었습니다.

“그럼요. 그렇고 말고요. 다만 낚시를 하러 간 남편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 불안하네요.”      


“그럼 너도 나를 가르칠 수 없겠구나.” 공주가 한숨을 폭 쉬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녀는 이리저리 헤매다가 어떤 교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은 텅 비어 쥐 죽은 듯 고요했으나 제단 앞의 눈부신 관대 위에는 전사한 젊은이의 시신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는 회색 제복을 입고 가슴 위에 훈장을 여럿 둘렀으며 검 한 자루를 옆에 두고 있었지요. 총에 심장을 꿰뚫리는 바람에 전사한 젊은이의 창백한 얼굴 위에는 놀랍게도 부드러운 미소가 머물러 있었습니다. 공주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 한동안 그 고요한 얼굴을 내려다보더니 허리를 숙여 차가운 이마에 입을 맞췄습니다. 마음속에서 부러움과 안타까움이 퐁퐁 솟아올랐습니다. “이 사람이 말을 할 수 있다면 틀림없이 내게 가르침을 줄 텐데. 세상 어디에서도 이렇게 웃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 문득 기척을 느낀 그녀가 고개를 들어보니 하얀 천사가 관 반대편에 서 있었습니다. 바로 '죽음'이었죠. 


“당신이 이 사람에게 가르침을 주었군요.” 그녀가 두 팔을 내밀었습니다. “저에게도 이렇게 웃는 법 좀 가르쳐주시겠어요?”


“아니.” 죽음이 시신의 가슴에 놓인 훈장들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난 그가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는 동안 가르침을 주었다. 너에게는 가르칠 수가 없어.”그러더니 곧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교회 밖으로 나와 바닷가로 갔습니다. 세찬 바람이 드넓은 바다를 휘젓는 가운데 바위 위에서 놀던 어린아이가 미끄러져 바닷속으로 떨어졌습니다. 아이는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대더니 곧 가라앉아 끝이 없는 물속으로 사라졌죠.                      


공주는 즉시 물속으로 뛰어들어 아이가 있는 곳으로 헤엄쳤고, 아이를 안아 바위 위 안전한 곳에 뉘었습니다. 하지만 파도가 워낙 강했던 탓에 두 사람 모두가 휩쓸리지 않기란 힘들었습니다. 바위를 꽉 잡으려던 그녀는 죽음이 넘실대며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고, 기꺼이 그를 맞이하기 위해 몸을 돌렸습니다. 


“이제,”죽음이 그녀를 감싸 안았습니다. “네가 알고자 하는 모든 걸 가르쳐 주겠다.” 그러더니 그녀를 바닷속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왕의 시종들이 해변에 누운 공주를 발견했을 때,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고 입술은 차가웠으나 여태껏 본 적이 없는 미소를 띠고 있었으며 아주 평온해 보였습니다. 그들은 공주를 궁전으로 데려와 금과 은으로 치장했습니다.     


“공주님께서는 참으로 현명하셨어요.” 어린 시녀가 공주의 차가운 손에 꽃을 쥐어주며 말했습니다. 

“모든 걸 알고 계셨지요.”


“그렇지 않아.” 창문 밖 종달새가 쫑알댔다. “무식한 나에게 행복해지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는 걸.” 


“그건 내가 공주에게 가르칠 수 없는 유일한 것이었지.” 늙은 마법사가 죽은 공주의 얼굴을 보며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녀가 나보다 현명해졌을 거라 생각한다네. 저 미소를 보게.”













 이 이야기를 처음 발견했을 때의 감정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천편일률적으로 비슷비슷한 옛날 공주 이야기 사이에서 왕자가 나오지 않는 데다 주인공인 공주가 죽기까지 하는 이야기라니, 요즘도 이런 공주는 어디서 보기 힘들 것 같죠?


이야기의 희소성뿐 아니라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이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대체 무엇일까. 공주는 소위 말하는 금수저에다 외모도 아름답고 똑똑하기까지 합니다. 행복해지기에 유리한 모든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그녀는 좀처럼 행복해지지 못합니다. 여기까지는 평이합니다. 겉보기에는 화려해 보이지만 속은 허전하고 외로운 사람. 현대에도 그런 사람은 해변의 모래만큼이나 많을 테니까요. 


하지만 공주가 희생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는 점은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종달새(제가 한 말이 아닙니다. 새 본인(?)이 자기가 무식하다고 했는걸요.)나 세상 물정 모르는 강아지가 그처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던 행복을 인간들은 왜 그리 쉽게 얻지 못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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