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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른도로시 Oct 03. 2023

자퇴가 무슨, 큰 일인가요?

-고교 자퇴 15주년 기념 후기(1)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즈음, 한창 자퇴할 생각에 들떠 있던(?) 열혈 예비 자퇴생이었던 나는 관련 자료들을 여럿 찾아 모았다. 그중 '네 멋대로 해라(김현진 지음, 한겨레 출판사)'라는 책이 있었다. 1999년에 첫 출간된 책이다. 내가 한창 자퇴하겠다고 설치던 무렵이 2006~2007년이었으니 그때를 기점으로 8년 쯤 전에 나온 책이었던 거다. 그럼에도 그걸 읽었을 당시 느낀 감상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근 10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한국 교육 현장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는 얘기다. 달라진 거라곤 책상과 의자가 조금 더 인체 공학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거나 체벌이 완화되었다는 정도였던 것 같다.





 교육 현장뿐만 아니라 자퇴 인식에 있어서도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저자인 김현진 씨가 부딪혔던 세상의 편견 어린 시선과 근 10년 후 신참 자퇴생인 내가 느낀 그것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신체 멀쩡한 17살짜리가 고등학교에 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절대 알려져서는 안 될 일급 비밀 취급을 받았다. 소규모 아파트 단지에 살았던 나는 이웃 아주머니들의 눈을 피해 007 작전이라도 하듯 몰래 밖을 돌아다녀야 했고, 친척들에게도 자퇴 사실을 발설해선 안되었다. 대체 그게 무슨 큰 일이라고? 싶었지만 최대한 엄마아빠께 맞춰 드려야 했다. 학교를 그만뒀다는 자체만으로도 나는 이미 그분들 속을 무진장 썩인 참이었으니까.












 

 얼마 전 알고리즘의 초대로 자퇴에 관한 몇몇 콘텐츠를 본 적이 있었다. 한결같이 자퇴한(혹은 하려는)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들 얘기였다. 내가 자퇴하던 당시 주변 사람들이 자퇴를 두고 뱉었던 대표적인 명사가 있었다. 바로 '탈선'. 15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유효한 단어라는 사실을 깨닫자 소름이 돋았다. '아니, 아직도 자퇴가 문제가 된다고? 도대체 왜?'



  사람마다 학교를 그만둔 이유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행정 편의를 위해 학생으로 하여금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하게 하고(오후 보충 학습 동의서를 내주며 학생 선에서 적당히 동의 표시를 해서 내라는 식의-원칙적으로는 부모님의 사인이 있어야 했다. 사실 그것도 반쪽짜리라고 생각하지만. 학생의 동의는 왜 필요하지 않나요?-), 당사자인 학생과의 합의 없이 강제로 밤늦게까지 '자율학습'을 시키는 행태를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학교에서 시키는 그 '공부(수능 문제 풀이 위주의)'란 걸 해야 할 이유를 도무지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행위를 할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 때문일까? 나는 결국 인재가 되지 못했다. 사회에서 학교로 하여금 길러내길 바라는 종류의 인재. 괜찮은 회사 들어가서 돈 잘 벌고 명예롭고 한 그런 따위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퇴 결정을 후회하진 않는다. 고등학교를 끝까지 다녔더라도 그들이 말하는 돈과 명예를 거뭐 쥘 가능성이 0에 수렴했기 때문이었기도 하고, 그런 것에 미련이 없을 정도로 현실 감각이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그게 뭐가 그리 큰 문제일까? 돈과 명예가 없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의 가치가 떨어지나? 혹자는 그렇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혹자'가 아니라 '대부분'일지도) 그건 그의 생각일 뿐, 그것이 진실은 아니다. 누군가는 머릿속이 꽃밭이냐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진지하다.(게다가 꽃밭이면 뭐 어떤가. 꽃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지 않은가!) 한 사람의 가치는 돈과 명예가 아니라 그 사람 존재 자체에 있다. 이건 나만 하는 말이 아니라 전 세계 내로라하는 성인들이 다 하는 말이다. 그러니 믿어 보시길.



  때문에, 나는 아이가 자퇴하는 일이 왜 그리 큰 일로 여겨지는지 잘 모르겠다. 무슨 이유에서든 그가 자퇴하고자 하는 데는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썩 좋지 않은 어감과는 달리'탈선'의 사전적인 뜻은 '딴 길로 빠짐'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머지 부정적인 이미지는 훗날 덕지덕지 갖다 붙인 것일 뿐. 그렇다면 '딴 길'에 굳이 '옳지 않은 길'이라는 프레임을 덧 씌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른 길'이 아니라 '딴 길'일뿐이라면 이야기가 훨씬 쉬워진다. 자식이 딴 길 가는 게 죽도록 싫다면 우선 그게 왜 싫은지 자기 자신과 끝장 토론을 한 후, 왜 굳이 딴 길로 가고 싶은지 당사자에게 물어보고 서로 합의점을 찾으면 될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딴 길'간다고 인생 안 망한다. 망한 인생의 기준이야 천차만별이겠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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