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담 Jan 24. 2024

좋은 걸 좋다고 말하기


어느 날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가 이런 볼펜을 줬다.


"너 짱구 좋아하지? 네 생각 나서 샀어!"


크게 좋아하는 캐릭터가 없는데 짱구는 유독 좋아한다고, 짱구 친구들 중에서도 주인공인 짱구가 가장 좋다던 내 말을 흘려듣지 않고 기억해준 것이다.


다이소에서 짱구와 콜라보한 제품들을 볼 때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서성거리곤 하는 나를 위해 친구가 하나 남은 짱구 볼펜이었다며 사다줬을 때, 나는 다시 속으로 되새겼다.


'역시 좋은 건 좋다고 말해야 하는구나!'








짱구 볼펜 받자고, 자다가도 떡이 생기기를 바라는 요량으로 한 생각은 아니다. '좋은 걸 좋다고 말하기'는 사실 내가 즐겨 듣는 팟캐스트 '여둘톡'의 부제이다. (김하나 황선우 두 분 작가님께서 진행하시는 팟캐스트인데, 조곤조곤 하시는 말씀들이 참 따뜻하다. 너무 좋으니까 다들 들어보시길)


'아니 그럼 좋은 걸 좋다고 하지, 싫은 걸 좋다고 하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두는 데만 그치지 않고 입밖으로 소리내 표현한다는 것이 사실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한다. 글 쓰는 것도 물론 좋다. 그렇지만 누군가 내게 '좋아하는 활동이 뭐예요?' 묻는다면 선선히 '독서 좋아해요.' 대답하기가 어렵다. 일인당 평균 독서량이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나라에서 독서가 취미라고 고하는 일이 마치 '나 좀 있어 보이지?'라고 젠체하는 것처럼 비춰질까봐 걱정부터 들기 때문이다.


또 하나, 나는 팟캐스트 '비혼세'도 좋아한다. 혼세님과 게스트분들, 특히 내가 애정하는 짐송님과 캥작가님이 나오는 에피소드면 꼭꼭 챙겨들을 뿐더러 재탕, 삼탕도 마다 않지만 마찬가지로 그런 기호를 누군가에게 재잘거려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비혼인 호스트가 운영하는 '비혼세' 팟캐스트를 좋아한다는 말이 누군가가 나를 멋대로 판단하고 오해할 여지를 주는 일일까봐 꺼려지기 때문이다. 굳이? 싶기도 하고.






그러나 그 '굳이'에 맞섰을 때, 용기를 내어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말했을 때 오히려 뜻밖의 기쁨을 얻을 일이 더 많다. 우연히 책을 좋아하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 수도, 그래서 서로가 재미있게 읽은 책을 추천해주게 될 수도 있다.


혹 이 사람 머릿속에 내가 이제부터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기억돼 예상치 못한 책 선물을 받게 될 수도 있다. (실제로 흘러가는 말로 '저 볼펜 좋아해요!' 라고 했더니 몇 달 뒤 직장 동료로부터 아주 근사한, 샤프 기능까지 갖춘 4색 볼펜을 선물 받았다. 내 최애 볼펜이다.)


그도 아니면 이렇게 답할 수도 있다. '팟캐스트가 뭐예요? 나도 들어볼까?' 싶어 이 사람이 나와 헤어지고 집에 가는 길에 여둘톡 또는 비혼세를 그냥 들어보는 것이다. 그러다 푹 빠져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정주행하게 된다는... 것은 내 바람이고 망상이지만.


여튼 '좋은 걸 좋다고 말하기'의 최대 수확이 무엇이겠는가. 영업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걸 남도 좋아하게 만드는 것, 참 어렵다. 들어보라고 귀에 딱지가 않도록 얘기하지 않았는데도 선뜻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살펴보고 또 좋아하게까지 된다면, 그 이상의 기쁨이 있을까?






여둘톡 황선우 작가님이 한 에피소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싫은 걸 싫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걸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좋은 걸 좋다고 말하기란 괜시리 겸연쩍은데, 싫은 걸 싫다고 말하기란 이 얼마나 쉬운지! 불평 불만은 쉽고, '싫다'는 말은 너무 쉽게 공감을 얻는다. 출근하는 게 싫고, 같이 일하는 사람이 싫고, 내 가족이 싫고, 이래서 싫고...


그러나 싫다는 말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아무것도. 그리고 가장 무서운 건, 그 싫다는 말이 어느 순간 나까지 속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평소에는 출근이 싫더라도 오늘은 괜찮았을 수 있는데, 내 무의식은 여전히 '출근' = '싫은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오늘 출근길은 기분 좋았어' 라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도 관성이라, 평소 말하고 생각하던 대로 따라가기 마련이다.


사실은, 싫을 때도 좋다고 말해야 한다. 좋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으면? 침묵하면 된다. 그리고 좋을 때, 더더욱 좋다고 외쳐야 한다. 좋은 걸 좋다고 해야 내가 좋아하는 이 감각이 더 선명해질 뿐더러 그 좋음에 내가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끌어당김의 법칙을 믿는다.


여둘톡이 모처럼의 겨울 방학을 맞이해서 허전한 요즘이지만, 혼자라도 대신 외쳐본다.


좋은 걸 좋다고 말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