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의 생활과 현재의 모습의 차이에 관한 고찰 첫 번째
나의 경제에세이 0편.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를 읽고 거부감이 크게 들거나, 주장하는 바와 독자의 입장에 크게 괴리가 있다면 해당 주제는 읽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소중한 기억을 가지고 성장하였기에 각자의 배경과 마음속에 펼쳐진 세상도 다를 것이다. 당신의 그런 아름다운 철학과 생각을 존중한다. 다만, 아쉽게도 극히 일부는 나와 의견이 조금 다를 뿐이다. 언젠가 더 세상을 이롭게 하는 주장에서 같은 입장으로 만나 웃으며 대화하길.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500년 전의 노예는 어떤 모습인가? 자유를 빼앗기고, 억압당하고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고 지내는 그런 노예 말이다. 마냥 쇠사슬에 묶여 단순히 강제적 육체노동을 했을 듯한 그때의 노예들도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앞서 말한 단순한 노동부터 법, 회계, 교육 등을 담당하는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노예까지 그 폭의 다양성이 거의 모든 분야일 정도로 넓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과 달리 자유를 멀리하고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일찍이 부모들은 자식을 주인들에게 인정받는 훌륭한 노예로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어떤 노예들은 4살부터(어쩌면 이보다 더 빨랐을 수도 있다) 뛰어놀고 부모의 사랑을 받는 대신 훌륭한 노예 혹은 뱅글뱅글 돌기만 하다가 녹슬고 고장 나는 톱니바퀴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이는 어떻게 하면 훗날 성인이 되어 주인에게 인정을 받고 훌륭한 가문에서 노예로 일하게 될지가 노예 부모들의 주된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 노예들의 재밌는 점은 스스로 노예가 되고 싶어 한다는 점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노예가 아닌 자들을 안타까워하며 자신이 노예로 지낸다는 점에 대해 매우 안도하며 생활했다. 스스로 어딘가 존속당하길 원했다. 행복하길 원했지만 스스로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고 미래의 행복을 택한단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생활했다. 결국 죽기 전이되어서야 현재의 행복을 포기해도 미래에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단 것을 깨달았지만 말이다.
이제부터 이 시대 노예들의 자유롭지 못했던 생활 중 몇 가지의 대표적인 예를 소개하고, 현재의 자유로운 생활과 비교하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보려 한다. 부디 여러분들의 인생엔 자유와 행복이 가득하길.
첫 번째, 주인에게 자신의 자유를 양도했다.
노예들은 주인이 정해놓은 시간에 일을 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았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침이면 주인이 지정한 곳으로 이동하여 일정 시간 이상만큼 노동을 해야 했다. 늦으면 처벌이 내려졌고, 심한 경우 더 이상 노예로 부리지 않겠다고 협박하거나 내쫓았다. 노예들은 자신이 주인에게 버림받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기 때문에 주인들은 이를 악랄하고 교묘히 이용했다. 특이한 점은 앞서 말했듯 노동에 늦으면 처벌을 받지만 노동을 늦게까지 하는 것은 허용되었다. 이를 종종 강요당해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노예들은 늦게까지 주인을 위해 일하는 것을 ‘끈기’와 ‘열정’ 혹은 ‘유능’이라고 착각했다. 그렇게 주인에게 사랑받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막상 자신에겐 사랑을 주지 못하면서 말이다(충분히 주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주지 않았다).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었어도 주인의 강요나 무언의 압박이 있다면 어쩔 수 없이 늦게까지 노동하였다. 이미 주인에게 세뇌당한 상급 노예는 하급 노예에게 과로를 강요했고, 이런 생활을 그들은 당연하게 생각했다. 시작이 늦는 건 용납 못하면서 끝나는 시간이 늦는 건 용납이 되는 사회가 참 웃기지 않는가? 또한 그것을 노예들이 당연하다 생각하며 지낸 것은 지금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이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한단 것은 주인에게 자유를 양도하면서 생긴 것 중 가장 큰 문제였다. 내가 몸이 아프더라도 주인의 허락 없이는 쉬지 못했다. 심지어 부모님 등 소중한 가족 중 누가 아프더라도 간호하거나 만나려면 반드시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 그러지 못하면 일을 끝내고 겨우 남는 쉬는 시간이 되어서야 그것이 가능했다. 주로 주인들은 비판을 피하기 위해 허락을 해주었지만, 너무 많이 노동을 쉬면 주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노예들은 눈치를 보며 병원을 가고 아픈 가족을 간호할 수밖에 없었다(상급 노예들의 압박도 한몫했다). 그러다 부모님이 돌아가신다 하더라도 주인이 정해놓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일터로 돌아와 사랑하는 부모를 떠나보낸 슬픔을 묻어둔 채 주인을 위해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렇기에 가끔 주인과 다른 상급 노예들의 눈치를 보다 부모나 가족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하는 노예들이 많았다. 도리어 장례를 다른 사람보다 빨리 끝내고 노동을 빨리 시작하는 노예를 대단하다며 치켜세우는 소시오패스적인 문화를 가진 곳도 있었다고 한다. 믿을 수 없겠지만 이 당시엔 종종 있는 일이었다.
노예들은 국가에서 정한 휴일 외에도 자신이 희망하는 날을 주인에게 말해 쉴 수 있었다. 대단한 복지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인의 허락이 있어야 했고 일 년에 사용할 수 있는 횟수가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 횟수마저도 동료 혹은 상급 노예들의 눈치와 주인님의 사랑에 대한 걱정으로 모두 사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노예들은 그날만을 바라보면서 감사하며 지냈다. 왜냐하면 그렇게라도 쉬지 못하는 노예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시대 노예들은 위와 같이 자신의 자유를 양도하더라도 주인이 평생 노예로 쓰겠노라 하면 크게 좋아했단 것이다. 한 주인에게 자신의 일생을 바치는 것을 특이하게도 영광으로 생각하였고 그것을 다른 노예들에게 입이 닳도록 자랑했다.
두 번째, 인정받는 노예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이 성인이 되어 노예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이 시대의 대부분의 청년들이 가진 큰 걱정이었다. 물론 좋은 주인 가문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대부분은 평범히 태어나지 않았던가? 평범하게 태어난 이들은 일정한 나이부터 노예가 되지 못함을 걱정한다. 사회가 노예가 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단 것을 암묵적으로 세뇌시킨 듯하다. 주인에게 존속되어 안정적인(실은 안정적이지도 않았다)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세뇌시키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현대인의 시선으로 스스로 노예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노예가 아닌 삶을 선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예가 되는 삶을 유난히 추구했었다.
노예들은 다른 경쟁자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어릴 때부터 피나는 노력을 하고 성적과 능력을 수치화하여 서로 경쟁하며 좋은 가문의 주인에게 선택당하기 위해 노력했다. 주인에게 인정받는 노예가 되는 것이야말로 이들에게는 큰 영광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주인이 아닌 상급 노예에게 충성을 받치는 노예들도 대거 등장했다. 노예계에도 계급이 있었다. 다른 노예들 보다 자기 계급이 높으면 같은 노예임에도 어깨를 으쓱거리며 다녔다. 반면 계급이 낮은 노예는 열등감과 부러움을 느꼈고, 그들처럼 되기 위해 더 자기의 자유와 행복을 대가로 지불했다(물론 스스로의 위치에 만족하며 지내는 꿈이 작은 노예들도 있었다 주로 자기 위로적인 말이었지만). 그래서 노예들끼리 누가 더 인정을 받는 노예인가를 서로 경쟁했다. 외국어를 공부하거나, 스스로 전문 기술을 채득 하거나, 고등 교육기관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까지 교육을 많이 받고 명석했던 인간들이 왜 노예 생활을 스스로 자처했을까? 정말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고(누군가에게 속아) 지냈던 걸일까.
이 시대 주인들은 정말 좋았다. 자신은 가만히 있으면 노예들이 자신들끼리 경쟁하여 더 뛰어난 역량을 가진 채로 자신을 고용해달라고 직접 찾아와 빌었기 때문이다. 주인은 수많은 뛰어난 지원자 중 선택을 하기만 하면 됐다. 노예들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우수한 노예들의 단가는 저렴해졌다. 자연스럽게 선택당하지 못하는 노예들도 많아졌다. 선택당하지 못한 노예들은 자유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에 서 있으면서도 노예가 된 자들을 부러워하며 스스로를 패배자라 칭하고 자신을 구속하며 지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자신의 꿈을 위한 노력보단, 훗날 선택받을 수 있도록 주인이 원하는 것과 다른 노예들과 경쟁해야 하는 것에 노력을 집중했다. 대부분의 노예들은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혹은 꿈을 좋은 가문의 노예라고 답하는 이들도 많았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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