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우 Nov 24. 2022

나는 쓸수록 내가 되었다

고수리, <마음 쓰는 밤>을 읽고


  생각지도 못했던 인생을 살게 되는 기적을 만나본 적 있다. 내 안에 단단한 암흑을 지니고 있던 때, 수리 작가님을 만났다.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아픔을 어디까지 쓸 수 있을지 모르던 때였다. 말하고 싶지 않지만 알아주었으면 하는 끙끙 앓는 마음으로 에세이 수업에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나를 마주했다. 


  그때의 나는 '글을 잘 쓰고 싶어서' 수업에 갔다. 수업을 진지하게 듣는 학생이라면 모름지기 A to Z로 원리를 익히고 분석하고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해 작가님께 다다다 질문을 던졌다 (흑역사...! 무례인 줄도 모르고!). 

  "마음으로 쓰다 보면 나다운 글을 쓸 수 있을 거예요."

  처음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 한참 헤맸다. 감성보다는 논리와 형식을 좇으며 써낸 글은 어느 날엔 사무친 일기 같았고, 어느 날엔 딱딱한 소논문 같았다. 습관적으로 마음을 지워냈다. 


  10년쯤 아팠으면 병을 받아들이게 됐을 법도 한데, 제법 그런 줄 알았는데. 사실 나는 병을 이겨내고 다른 삶을 살기를 줄곧 바랐다. 뭔가를 이겨내려면 노력과 능력을 더해야 하니 마음 따위는 지워질 수밖에. 그런데 마음으로 쓰라니. 지금 생각해보면 아픈 나를 마주하는 것이, 마음으로 나를 안아주는 것이 그때는 몹시 두려웠다. 


  밑바닥의 마음을 꺼내 놓아도 안전한 글방. 눈물 고인 따뜻한 시선으로 경청해주는 밤. 그곳에서 쓰며 낭독하며 자주 울었다. 혼자 숨죽여 울던 밤들을 지나, 위로의 말없이도 포용되던 밤들. 충만히 사는 법을 배웠다.


  수리 작가님과 쓰던 밤들을 지나, 나는 쓰는 사람이 되었다. 나를 안아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큰 아픔 앞에서 함께 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다정을 기울여 쓰는 법이, 쓰는 삶을 살게 되는 법이 이 책 안에 있다. 책을 읽고 나면, 묻어두었던 마음을 꺼내 보고 싶어진다. 나의 아픔에 언어를 부여하고 싶어진다. 엉엉 울며 쓰고 나면, 물기 어린 웃음으로 작가님은 말해주시겠지. 

  "우리 꼭 세수한 사람들 같네요." 



-내 이야기를 한 번 꺼내 보고 싶은 마음, 너의 이야기를 잘 듣고 싶은 마음, 여기에서만큼은 우리가 받아들여진다는 마음들이 뭉실뭉실 부풀어 다정하고 안전한 공동체를 만든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을, 가장 자기다운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있다. (p208)


-나는 어떤 순간에도 웃는 사람을 아주 좋아했다. 웃음을 잃지 않은 절망에게, 글쓰기는 펜보다도 더 작고 날카로운 바늘이 된다. 희우는 뜨겁게 썼다. (p230)



희우 작가의에세이를 더 읽고 싶다면:

https://contents.premium.naver.com/sunharoo/heewo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