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2

영혼의 마지막은 어땠을까

by 히핀

매일 밤 잠들기 전, 내일 아침에 눈이 안 떠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대로 잠에 빠진 채 죽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런데 참, 이 상황에서 편안한 죽음을 바라는 자신이 우스웠다. 끝끝내 죽음 앞에서 인생이 쉽게 끝나기를 바랬다. 온통 고통과 암흑만이 이끼처럼 자라 자신을 뒤엎고 있었다.

고시원에서 생활한 지 4개월째, 살면서 이번 여름처럼 지독한 경우는 처음이다. 한밤중에도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 늘어나는데, 하필이면 더위의 정점에서 에어컨이 사망해 버렸다. 온 동네가 에어컨 실외기 소리로 가득하다. 더위와 소음 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 이곳에 오려면 짐을 다 버려야 했는데, 3년째 함께한 선풍기는 버리질 못했다. 수험생 시절을 함께 버텨 낸 유일한 친구이자 나와 마지막을 함께 할 전우의 모습 같다.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무작정 밖을 나선다. 여기서 한강까지 걸어서 1시간이다. 마포대교를 지난다. 앞을 향해 달려가는 차들 사이로 검은 봉지가 아무렇지 않게 이리저리 치이면서 날아다닌다. 다리 위 곳곳에 자살하지 말라는 푯말이 길게 늘어져 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고 하더니, 한국의 압축식 고속성장 뒤에 비릿한 그림자가 뒤따른다.

인적이 드문 곳에 도착한다. 난간을 두 손으로 붙잡고 다리 한 짝을 발목부터 걸친 후 저 너머로 넘긴다. 정강이까지 넘어갔다. 보도블록에 붙어있는 반대쪽 발이 서서히 공중으로 뜬다. 칠흑같이 어두운 강 저편으로 떨어지는 상상을 한다. 한여름이라 동상에 걸리지는 않겠지만 한 번에 안 죽으면 어떡하나. 막상 물에 빠지면 살려달라 애원하지 않을까. 죽는 순간이 아주 길고 고통스러울 테지. 게다가 혹시라도 지나가던 행인이 신고해 소방대원이 구하러 오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


그렇게

또 한번

주저하고 말았다.


“그래 잘 생각했네. 죽는 생각 따위 종량제봉투에 묶어서 얼른 갖다 버리라구. 그럴 생각할 시간에 맥주 한잔하고, 잠이나 푹 자도록 해. 이대로 죽기에는 자네 청춘이 너무 아깝단 말일세. 빛 한번 밝히지 못하고, 꽃 한번 제대로 만개하지 못하고 죽는 인생만큼 슬픈 일이 있을까 싶어.

젊은 죽음이 너무 흔해졌어.

그리고 자네가 뭐 잘못한 것이 있겠나. 죽을죄를 지었나? 사람을 죽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사기를 쳤을까?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죽을 생각이 없어. 천수를 누려서 문제야.”

청년은 내가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동안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듣기만 했다. 연거푸 소주 석 잔을 다 마신 후에야 조심스레 얘기를 꺼냈다. 빈 잔은 다시 투명함으로 채워졌다.

“사실 그 이후에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매일 나갔어요. 거의 출퇴근하다시피 했어요.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왠지 거기에 있으면 나를 다시 붙잡아 줄 사람이 나타날 것 같았거든요.

기다림은 언젠가부터 설렘으로 바뀌어요.

어느 날은 책을 가지고 가서 읽기도 하고, 대부분은 멍때리면서 시간을 보냈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강물을 지그시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평온해졌어요.

어느 날은 그 장소에 사람이 있었어요.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는데 선생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어요. 나와 비슷한 또래의.

그래서 저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 자리에 있는 누군가에게 밥을 사주는 행위를요. 그러려면 돈이 필요했어요. 안정적이지도 고정적이지도 않지만 일을 시작했어요.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선뜻 밥을 사줄 수 있을 정도의 벌이를 말이에요.”


청년의 진심이 고봉밥처럼 담아져 전해진다. 평소보다 많이 먹은 탓에 한계를 넘어 명치가 아프기 시작했다. 감동적인 상황과는 반대로 울렁이는 위장을 가라앉히고자 입을 틀어막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본 청년이 맞은편에서 콧물을 훌쩍였다. 알고보니 내가 청년의 얘기를 듣고 감격하여 울음을 참는 행위로 착각한 것이었다.

선행은 맞지만 단지 외롭고 무료했던 것일 뿐.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지만 차마 사실대로 전할 수는 없는 터.

나는 최근에 빠진 별의 탄생과 죽음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인간의 삶과 닮은 점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것이다. 수명은 엄청나게 차이가 있지만.


“자네에게는 아주 큰 재능이 있네. 그건 바로 젊음이라네. 그런데 이 재능은 평생 주어지지 않아. 한철 들어왔다 언젠가는 사라지지. 유통기한이 있다는 말일세. 그래서 그 전에 뭔가를 이뤄야 하지. 젊지 않은 나에게도 재능이 있다네. 그건 바로 녹슨 재능이네. 정신은 그대로인데 빌어먹을 몸뚱이가 이젠 움직이질 않아.

나는 이제 살 만큼 살았어. 은퇴를 준비해야 할 나이야. 그런데 나보다 10살 많은 어르신은 나보고 한참 어리다고 얘기한다네. 그러니 내가 보는 자네는 얼마나 햇병아리겠나.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교복 입은 이들의 아름다움을 보았지. 애써 멋 부리지 않아도, 시장에서 산 만 원짜리 운동화만으로 충분히 빛이 난다는 말일세.

숨만 쉬고 있는 것만 봐도 어찌나 예쁘던지.

최후에 가져가야 할 것은 그런 것들 아닐까.

자네 또한 그렇네. 지금도 충분히 멋진 사람이야. ‘젊은’이라는, 영롱한 빛으로 아득한 유리병을 가슴 속에 품고 있는데 두려울 것은 또 무엇인가?

내가 아무리 공을 들여 온갖 미사여구를 달아 설명을 한들 자네가 이해하겠는가.”


젊음은

꿉꿉한 여름, 천둥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물고 오는 한바탕 소나기.

바다 저 깊은 곳, 바위와 파도가 만나 끊임없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곳.

폭풍이 휘몰아치는 산 중턱을 홀로 지키고 있는

벼락을 맞아 죽은 듯 보이는 성마른 나무의 모습과도 같아.

나도 그때는 몰랐으니. 늘 그렇듯,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후회를 하지.

자네가 이 말을 이해한다면 앞으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게 될 테지.


“그렇지만 이런 내가 밉지는 않네. 실패를 했다는 것, 그럼에도 뭔가를 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어쨌든 앞으로 가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인간의 신체는 어차피 앞으로 나아가게끔 만들어졌지. 우리의 눈과 발이 앞을 향해 있는 것을 생각해보게. 그것이 인간의 숙명이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필연적 존재이지. 그러니 방향이 잘못되어도 너무 걱정하지 말게. 땅을 파서 가든지 기어서 가든지 잠시 멀어질 수는 있겠지. 앞으로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뒤로 돌아서 간다고 해도 그건 퇴행하는 것이 아니야. 앞을 향해 가는 것이야. 내가 있는 이곳에서 한 걸음 앞으로 뗀다는 것. 인류의 진화는 바로 이 한걸음에서 시작된 것이네.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다리는 자동으로 걷게 되어있어. 머리가 반응하지 않아도 발이 닿기만 한다면.


미소를 띈 채 가만히 듣고 있던 청년은 백 만년도 더 된 차가워진 내 왼손을 두 손으로 감싸며 말한다.

“선생님 손은 처음 만난 그날처럼 차가운데, 왜인지 모르게 오늘은 온기가 느껴지네요.”

“이보게 젊은이, 소주 한 병을 마셨는데, 그럼 온기가 돌아야지 냉기가 돌면 이 각박한 세상 어떻게 살라고 그러나. 이거라도 있어야 숨을 좀 쉬지. 없으면 쓰나. 나 원 참.”

나의 볼멘소리에 청년은 잇몸을 만개하면 하하하 웃어 보인다.

“참, 그러네요. 이 힘든 세상 소주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오늘은 이상하게 말을 많이 하게 된다. 들어주는 편에 속하다가, 너무 신이 나버린 탓이다.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4시다. 곧 동이 트겠군.

해를 기다리며, 오랜 시간 뒤척이던 어두움과 다르게 새벽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중천으로 올라가 버린다. 서둘러야 한다. 정체가 탄로 나면 곤란하니.

“그럼 다음 사람을 위해 그 온기를 계속 모르도록 해. 자네에게 오늘 특별히 행운을 두 배로 점쳐달라는 기도를 드리도록 하겠네.”

청년에게 건강하란 덕담과 함께 내년 새해 인사를 미리 전한다. 나의 두 발에서부터 손바닥까지 활짝 웃어 보이며, 청년을 배웅한다. 택시를 잡아서 태워 보내고 나는 한강까지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새벽 끝 무렵의 차디찬 공기를 마시며 해가 잘 보일법한 벤치를 찾아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을 내딛는다.

벤치에 앉아 시선의 끝을 응시하며 해를 기다린다. 곧이어 붉은 태양이 떠오름과 동시에 타버릴 듯한 엄청난 진동과 함께 내 세상이 무너져 내린다. 얼굴에서부터 목, 어깨, 가슴을 관통하며 가루가 되어 없어진다. 붉은 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자 내게 남아있는 마지막 온기를 품은 벤치 나무 의자에 걸친 엄지손가락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빛의 세계에 들어온다.

지금 현실에 유일하게 남기고 가는 건 육체가 아니다.

뜨거운 눈물 한방울.

이내 자국으로 남아 희미해진다.

이토록 짧았던 지구에서의 마지막 순간이라니. 살아있을 적에는 영원히 살 것처럼 굴더니.

죽음 앞에서 타다 만 재가 되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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