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하루일과
세상은 나의 놀이터. 오늘은 또 누구의 집에 들러 훼방을 놓을지 고민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죽은 후 가장 놀라운 점은 의식주에 대한 고민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살아서는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그렇게 일했건만 죽어서야 이 모든 것에서 해방되다니.
죽은 자의 시간은 더디게 흐른다. 내 눈앞에 보이는 구름과 저 강가의 물결이 시간을 말해준다. 오늘이 며칠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흘러감에만 집중할 뿐이다.
잠을 자는 건 아니지만 종종 의식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눈을 뜨면 낯선 장소에 와 있다. 여기에 어떻게 왔는지 기억은 없다. 어쩌면 반복되는 매일의 연장선에 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1. 와이프 집에 들어가 그녀의 (현)남편 괴롭히기
2.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가게에 침입해 주인 행색 하기
3.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 들러 그네 타기
혼자 움직이는 그네를 보고 놀라는 행인들 구경하기
4. 하루 중 3분의 1은 공원에 앉아서 사람들 관찰
5. 가장 좋아하는 일과는 높은 빌딩 꼭대기에 매달려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
그곳에 있는 까마귀들과 바람을 가르며 번지점프 하다가 다시 꼭대기에 오르기를 반복하며 함께 논다.
6. 빨랫줄에 걸린 빨래처럼 널브러져 본다. 내가 옷인지 옷이 나인지 모를 정도로 걸려서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만끽한다,
7. 바람이 머리카락 휘날리게 부는 날에는 새들과 함께 바람 타는 놀이를 한다. 혹은 바닷가에서 돌고래들과 파도타기 놀이도 해 본다. 바람에 나부끼며 바람이 나인지 내가 바람인지 모를 정도로 혼연일체가 되어본다.
이대로 바람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다음 생에는 바람이 되어 볼까. 아직 무엇으로 환생할지 정하지 못했다. 일단 사람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박물관 벤치에 앉아 잉어가 지나간 후 남겨진 물결을 보며 멍때리고 있었다. 전세대출금과 월세, 각종 할부금 걱정과 상사의 잔소리, 언제 잘려도 이상하지 않을 지금의 회사생활. 더 나아가 급격한 기후변화, AI가 가져올 디스토피아까지.
인류는 이제 진짜 얼마 남지 않았다. 지구는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의 멸종을 예고하고 있다.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것이라면 인류의 멸망 이후 시점이면 좋겠다. 그전까지는 바람으로 평생 살고 싶다.
물질세계에서 해방이 되고부터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명확해졌다. 이대로 세상을 방랑하고 관찰하며 글을 쓰고 연구를 하는 일이 가장 행복하다. 집안에 돈이 무한히 생산되는 항아리가 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게 아니면 한평생 생계 걱정에 주변인의 눈치와 사회적 시선에 도망치듯 해야 하는 그런 일을 지금 사후에 하게 되었다. 육체가 해방되는 동시에 정신도 해방된 것이다. 당분간은 이 생활을 누리고 싶다. 영혼들의 이유 없는 방랑을 모면하기 위해, 사후세계-환생 직전의 영역에 있는 영혼들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 산 자들의 감옥에서는 출소 후 생계를 위해 직업훈련을 하지 않는가. 이 세계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일을 하는 이유는 혼란을 방지하고 질서를 지키기 위함이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은 죽은 자의 관점에서 인간세계를 관찰하고 보고서를 만들며 보낸다. 완성한 보고서는 영혼의 도서관으로 업로드한다. 영혼은 그 자체로 무선 송신기이자 수신기이다. 머릿속 떠오르는 생각들은 눈앞에서 글이 되어 펼쳐진다. 상상은 현실이 되며 모래성처럼 사라지기도 한다. 수만 가지 생각을 작성하고 지우기를 여러 차례 반복한다.
영혼의 도서관은 죽은 이들이 잠시 이용할 수 있다. 이곳에는 살아생전 사람들의 인생이 책으로 저장되어 있다. 나처럼 영혼인 상태로 활동하며 자료를 모으는 자들도 제법 있다.
이곳은 죽은 이들의 공간이지만 가끔은 죽다가 살아난 사람들, 잠시 저승의 문턱을 넘기 직전에 들르기도 한다. 어떤 경로로 오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 이다. 워낙 가끔 있는 일이라 이와 관련 해 재밌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문지기가 자주 바뀌는 탓에 인수인계를 하는 중간에 허술한 틈을 타고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예술가들이 꿈을 통해서 영감을 얻기 위해 들리기도 한다. 이곳의 기상천외한 자료들이 창작의 소재로 쓰인다. 나의 자료가 저 아래 인간세계에도 쓰임이 있을 것이라는 상상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영혼인 상태에서 일을 하면 마일리지가 생긴다. 영혼환전소에서 현금으로 교환해주기도 한다. 단, 조건이 있는데 돈의 쓰임이 타당하고 확실해야 한다. 사실 화폐가 필요하지 않으므로 일을 하는 영혼들은 마일리지만 쌓고 있다. 대다수는 남은 가족들을 위해 행운이란 이름으로 사용한다.
나 또한 그랬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일 년에 세 번 나에겐 특별한 이벤트가 있다. 바로 살아있을 ㄸ떄의 몸으로 하루를 사는 것이다. 처음 이 변화를 느낀 건 3번의 기일을 넘기고 4번째 기일이 되던 해 자정 무렵이었다.
그날 유난히 달빛이 예뻐 생전 마지막을 보낸 한강 다리 위에 서 있는데 달빛이 나에게 서서히 다가오더니 손가락을 비추기 시작했다. 이어서 투명한 몸체가 점점 불투명에 가까워지다가 사람의 피부로 나타났다. 항상 관찰해 오던 사람의 형태로 서서히 바뀌었다. 원래 영혼의 모습은 바람의 성질, 투명한 해파리의 모습과 닮았다. 인간의 몸은 기한이 정해져 있다. 자정부터 동이 틀 때까지만 유효하다. 처음에 이 경험은 마치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다른 차원에 불시착한 터미네이터가 된 기분이었다. 알몸 상태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일단 바다에 뛰어들어 몸을 숨긴 후 한강 주변 편의점과 쓰레기를 뒤진다. 헌옷수거함을 주로 이용한다. 버려진 옷들로 대충 입은 후 한강 둔치 벤치에 앉아서 새로 태어난 기분을 느끼며 현실 세계를 만끽한다. 새로운 경험이 주는 짜릿함도 잠시 인간의 몸은 즉시 배고픔을 느낀다. 영혼환전소가 생각났다. 이런 일이 종종 있는 건인지 나에게만 적용되는 것인지 난감했다. 쓰레기더미에서 먹다 남은 것을 주워서 대충 끼니를 때운다.
기일과 음력생일, 양력생일에만 신체를 가질 수 있다. 두 해를 넘기고서는 더이상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을 찾지 않는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간다. 그곳에는 언제나 살아있는 사람이 저 아래를 보며 서 있다. 저 맞은편에 영혼들이 우글거리며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그들에게는 이 광경이 마치 폭죽을 터트리는 이벤트처럼 보이는가보다. 웅성거리며 환호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중 몇몇은 안타까움에 고함을 치며 말리려 하지만 그 소리는 거센 바람 소리로 메아리가 되어 울려퍼질뿐이다.
그 광경을 얼마간 지켜보다가 내가 먼저 말을 건다.
“저기 혹시 실례가 될 말이기는 한데 초면에 정말 이런 부탁드리기 송구스럽습니다만... 제가 배가 너무 고픈데, 현금이 없습니다. 순대국밥을 사주실 수 있으실까요. 이 빚은 제가 언제라도 갚아드리겠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행운을 빌어드릴 수 있습니다. 마침 제가 이 근처에 새벽 늦게까지 하는 기막힌 맛집을 알고 있거든요.”
사실이었다. 돈은 내가 가진 마일리지로 행운으로 전달할 계획이었다. 청년은 나의 진심을 읽었는지 다소 황당한 상황이지만 사정이 딱하니 그러겠다고 했다. 자신도 마침 따뜻한 국물이 생각난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거듭 감사를 표하며 식당을 향해 앞장섰다.
따뜻한 밥을 먹으며 살아있는 누군가와 따뜻한 온기를 함께한다는 것, 그것도 낯선 이와 함께. 오랫동안 이 감각을 잊고 지냈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본다. 살아있는 자와 대화라니 생생한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겠는걸. 나의 눈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밝은 빛이 반짝거렸다.
그렇게 몇 십명을 만났는지 모르겠다. 매년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서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인간들을 만났다. 오늘도 어김없이 생일날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먼저 와 있는 누군가가 말을 건다. 처음 있는 이 상황이 육체를 잠시 갖게 된 그 순간만큼이나 당황스럽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가 오늘 생일이라 순대국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함께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도저히 이 기분으로 집에 가고 싶지 않아서요.”
청년의 간절한 눈빛에 호기심과 측은함을 동시에 느낀다. 이럴 때면 머리에서 뇌우가 발생한다. 산 사람은 생전이란 단어를 쓰겠지만, 나는 죽은 사람이므로.
“죽어사후 이런 일은 처음이라 좀 당황스럽습니다만”
청년은 나의 아재 개그에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제가 좀 유별난 유머를 좋아하는지라. 대충 좋다는 얘기입니다.”
왜인지 기분이 한껏 좋아진 나는 주인과 산책 나온 반려견마냥 청년의 뒤를 따라 나선다.
언제나처럼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질문을 해댄다. 내 얘기는 별로 하지 않는다. 항상 같은 질문을 할 뿐이다. 사는 곳은 어디인지, 회사 얘기, 가족 얘기, 불안한 미래와 순대국밥을 안주삼아 소주 한 병이 절로 들어가는 새벽이다.
청년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공무원 준비만 4년째. 1년만 더 해봐야지가 벌써 4년이 되었더랬다. 생활비가 부족해지자 좀 더 저렴한 전셋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전세 사기를 당했다는 기사를 인터넷 뉴스로 접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설마 부동산 중개업자가 사기를 치겠어. 게다가 지금은 생활비가 1순위라 부모님의 도움을 바랄 수는 없었다. 나이 예순에 은퇴 후에도 식당일과 아파트 관리 일을 하시는 두 분이다.
그 이후에 청년이 하는 얘기가 왠지 낯설지 않았다. 꼭 내가 그의 곁을 마지막까지 지킨 반려견이 된 느낌이었다. 나는 가까운 전생에 ‘개’ 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청년의 ‘가까운 친구’였을지도. 그마저도 아니라면 평행세계에 살고 있을 ‘또 다른 청년’ 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