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마음으로 시작된 나의 여정
오늘은 이야기는 그림을 그리는 평범한 나라는 사람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어렸을 적부터 뭔가를 만들거나 그리는 걸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종이접기, 휴지로 꽃 만들기, 색종이 오리기 같은 걸 혼자 열심히 했다.
초등학교 미술 시간엔 그림을 다 완성시키지 못하면 쉬는 시간에도 남아서 마무리했고, 그리기 만들기 시간에 칭찬도 많이 받아서 그 시간이 정말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어렸을 적 꿈은 화가, 미술선생님.
중학생 때까지 계속해서 미술이 좋았던 나는 예술 고등학교를 가볼까 했지만, 주변 어른들의 말이 자꾸 들려왔다.
"미술로는 먹고살기 힘들어~"
그 말이 마음 한켠에서 자꾸만 날 괴롭혔다.
결국 미술은 취미로 하자고 생각하여 예고 진학을 포기하고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사람이 말이다.
자기한테 맞는 분야가 다 정해져 있더라.
정말 열심히 했지만, 나의 공부 머리에는 한계가 있었다..
야간학습도 안 하고, 다른 것을 도전해 보고 놀기라도 했다면 억울하지라도 않았을 텐데..
아무리 열심히 외워봐도 시험 문제만 보면 공부했던 게 기억이 안 나는걸...?ㅋㅋㅋ
그렇게 어쩔 수 없이 학구열이 높은 고등학교에서 어중간하게 하위권을 유지하며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음악, 미술, 체육 시간에 좋은 점수를 얻었지만,
예체능은 조금만 해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고, 대학 진학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기에 음미체를 잘하는 건 특별하지 않았다.
고등학생 1학년이 끝나면서 문과 또는 이과를 선택하게 되었다.
수학, 과목은 정말 안 맞는 것 같아 문과를 선택했다.
계속해서 진로를 고민하던 중, 실과 과목 선생님과 진로 상담을 했는데,
만드는 걸 좋아한다고 하니 실과 선생님께서 패션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추천해주시면서
"패션 디자이너는 인체를 잘 알아야 하니 이과를 가야 해."
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 선생님은 정말 많이 신뢰했기에 나는 급히 과를 '이과'로 변경하게 되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선생님께서 이과가 더 갈 수 있는 직업의 범위가 많기에 이과를 추천해주신 것 같다. 그 선생님께는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2학년이 되고, 3학년이 되고, 이과 수업이 정말 안맞았던 나는 수학 포기, 과학 포기를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국어와 영어를 잘하냐??!!
반전은 하나도 없었다.
3학년 2학기가 되고 나서 든 생각...
큰일났다..
날 지켜보시던 부모님은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으셨는지, 급히 입시미술 학원 상담을 받았다.
여러 군데의 미술 학원에서 상담을 받을 때마다 마치 병원에서 검사 결과 진단을 받는 느낌이었다.ㅋㅋㅋ
"너무 늦었습니다. 재수까지 생각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일찍 시작하면 고등학교 1학년 말부터~ 대부분 고등학교 2학년쯤부터 시작하는 입시미술.
3학년 2학기에 입시미술을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
그게 바로 나였다.
공부로는 도저히 답이 없을 것 같아서, 최후의 방편으로 입시미술을 시작하게 되었다.
여러 군데의 학원에 상담을 받다가 만나게 된 한 입시미술학원 원장 선생님께서는 '속성으로 배우면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으니 가르치는 데 최선을 다해보겠다.'라며 의지를 북돋아주셨다.
막상 미술 학원에 들어가 보니, 잘 그리는 친구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내가 그나마 할 줄 아는 것 중에 좋아하는 것이 '그림'이었는데, 잘 그리는 친구들을 보니 움츠러들었다.
'늦게 시작했지만 그림을 좋아하니까 열심히 배우면 입시에 합격할 수 있을거야.'
주눅드는 상황 가운데서도 조그마한 희망을 갖고, 입시를 준비하며 정말 미친 듯이 그림만 그리며 살았다.
하지만 특별한 반전은 없었다.
입시미술은 정해진 시간 안에 빠르게 완성해야 해서, 생각보다 훨씬 버거웠다.
그렇게 원하는 학교에 다 떨어지게 되었고, 결국 패션 전문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늘 맞지 않는 공부를 해야 했고, 공부로만 비교당하다가 갑자기 새롭게 펼쳐진 세상.
내가 그리고 만들어 낸 작업물로 평가받을 수 있다니!
전문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정말 행복했다.
더 이상 학창시절 수학과 과학처럼 공식으로 계산한다거나 어떠한 현상의 원리를 분석하지 않아도 되었고, 그저 주어진 주제 안에서 자유롭게 그리고, 만들고, 느낌을 표현하면 되었다.
전문학교에서 받은 수업과 과제, 작업들이 나를 살아 숨 쉬게 했다.
또한 관심사에 대한 공부이다 보니 학창 시절의 공부에 비해 더 재밌는 게 아닌가.
교수님께 작업에 대해 평가받고, 과 동기들과 작업물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정말 즐거웠다.
학창 시절 한없이 움츠러 있던 나는 활짝 핀 꽃처럼 해맑은 대학시절을 보냈다.
히히 계정의 첫 시작은 대학교 일러스트레이션 수업 때 그렸던 작품을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때부터였다.
(지금은 피드를 통일시키기 위해 보관해놓았지만ㅎㅎ)
일러스트레이션 수업 때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여 그림을 그렸었는데,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을 스캔해서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이때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인스타그램이 유행한다길래 시작해 본 것이었는데, 내 그림에 관련하여 댓글도 달리고, 그러다 보니 그림을 좋아하는 여러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었다.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고 나서의 장점은, 평소에 주변의 친구들의 그림만 보던 내가 더 다양한 사람들의 그림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얼굴은 모르지만 그들과 공통된 관심사인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참 기뻤다.
소소하게 그림과 일상을 올리며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지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졸업작품을 준비하는 시즌이 왔다.
매일 밤 재봉틀을 붙들며 보냈던 폭풍 같은 졸업작품을 거친 뒤, 졸업전시를 잘 마무리하게 되었다.
정신없이 바쁘다가 졸전이 끝나고, 갑자기 할 것이 사라지니 뭔가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할 것이 필요했다.
나는 평소 사슴을 좋아했는데, 사슴의 뿔이 마치 나무 같기도 하고 성장하는 포인트 같아서 사슴이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료했던 시간, 낙서를 끄적이다가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게 되었다.
사슴 + 웃음 = 우슴이 : )
그렇게 탄생한 사슴 캐릭터 우슴이에게 옷을 입히기도 하고 다양한 컨셉을 넣어 그리는 등의 작업을 했다.
전공이 패션디자인이다 보니 패션 일러스트가 익숙했다.
이후 작업한 조금 더 순화된 버전으로는
이후 캐릭터 우슴이는 조금 더 귀여워졌지만, 지금의 그림에 비하면 엄청나게 강렬한 색감의 스타일이다.
아이린, 안경 선배, 선미, 볼 빨간 사춘기 안지영, 같은 연예인부터 다양한 컨셉의 우슴이 캐릭터를 그렸다.
우슴이에게 여러 가지 컨셉을 적용했을 때 달라지는 느낌이 너무 재미있어서 즐겁게 작업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아빠가 아이패드와 애플펜슬을 구매하면서부터 나의 그림 작업이 더욱 풍성해진다.
마치 내 것마냥 사용했던 아빠의 아이패드.ㅋㅋㅋ
수작업이 아니어도 이렇게 다양한 브러시로 느낌을 낼 수 있다니!
아이패드를 만나고 신세계를 경험하며 작업이 더욱 다채로워졌다.
점차 작업의 폭이 더 넓어지게 되었다.
캐릭터를 위주로 그리던 내가 풍경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페어, 플리마켓에 참여하며, 어떤 굿즈를 만들지 기획을 하며 정말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그 시절 색연필로 그렸던 풍경 속의 우슴이 그림들.
정사각의 비율이 인스타그램의 기본 갬성이었을 때, 프레임 안에 그림을 넣고 오른쪽 하단에는 동그라미로 주요 사용된 컬러의 컬러칩을 그려 넣었다.
가끔씩 나를 오래 봐온 인친분들은 '그때 그렇게 팔레트처럼 넣었잖아요~!' 하고 이야기하시기도 하는 포인트이기도 하다.ㅋㅋㅋ
지금보니 그림체는 이때를 기반으로 만들어지게 된 것 같다. : )
자연스럽게 [캐릭터 중심의 그림]에서 [풍경 속의 캐릭터]로 작업 방향이 바뀌었고,
그림을 그릴 때마다 '이 풍경 안의 우슴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고 상상하며 그리게 되었다.
그렇게 그림을 업로드할 때는 풍경 속 우슴이가 전하고 싶은 마음을 짤막한 글로 덧붙이곤 했다.
현재는 우슴이라는 캐릭터 대신, 그 풍경 안에 '나' 자신이 들어가 있다고 상상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 )
때때로 마주친 자연.
꽃과 하늘, 달, 나무들.
그 가운데서 느끼는 벅찬 아름다움을 색연필로 담아내고 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그렇게 그려온 순간 순간이 모여 하나의 소중한 기록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내가 좋아서 그린 그림이었지만, 어느새 그 그림들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그림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참여했던 플리마켓에서 한 손님분이 내 부스를 발견하고, 인스타그램에 올라가 있는 그림들을 천천히 구경하다가 조용히 눈물을 흘리셨다.
꽤 긴 시간을 부스 앞에 머무르시기에 괜히 먼저 말을 건네기가 망설여졌는데, 그분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요즘 너무 힘들었는데, 작가님 그림을 보고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그 순간 마음 깊이 알게 되었다.
내 그림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위로가 될 수 있구나.
그 날의 기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때 이후로, 따뜻한 그림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그렇게 지금은 '프롬히히'라는 이름으로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 : )
앞으로의 여정들도 기록하고 꾸준히 함께 나눠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