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봄날

by 영희

DH에게


참 오랜만에 네 이름을 부른다.

너를 부르니 내 속에 있던 어리고 어리고 어린 사람이 고개를 드는 것 같다.


너의 이름은

그 어리고 어리고 어린 사람에게는

봄날의 연두색 잎이고

여름날의 뜨거운 열정이며

겨울날의 매서운 바람이었지.

너를 처음 만났던 겨울의 바람보다

너를 보내던 봄날의 바람이 더 차가웠던 기억이 있다.


나는 가끔

-너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조차 못하겠지만-

어둡고 어둡고 어두웠던 그 마룻바닥과

햇빛이 내리쬐던 돌이 많은 그 바닷가에서

어찌할 수 없어 울기만하던

그 마른 여자가 불현듯 떠올라

몸서리친다.


연한 노란색 카디건과 청치마

여름날 나무향이 진동하던 그 길

하얀 니트와 하얀 조끼

4호선과 구로역 창경궁과 민토 수목원과 바다

지하철의 군화와 플랫슈즈.

기억의 편린들은

그 파도에 다 쓸려가고 없을까 싶다가도

없었으면 좋겠다. 너의 기억 속에는.


너와 3년을 함께 다니던 그 병동은

이제 흔적도 없다. 두 은행사이 골목을 올라가면 정신병원이 나왔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제는 무엇이라고 부를 것도 없지만

기억이라는 건 속도 없이 불쑥 말을 건다.

병동 자원봉사 후 버스에서 듣던 그 음악을.

이어폰이 고장 나 한쪽만 들렸지만 나는 네 귀에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다.

음악도 들리지 않는 봄바람이 나는 그렇게 좋았었다.


내 젊은 날은 그렇게 속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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