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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Feb 07. 2022

책을 통해 소통하는 마법의 순간

내가 사서라서, 행복하다

나는 20년 차 사서다.


현재 대학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있고, 힘과 열정을 쏟고 있는 업무는 독서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이다. 나는 늘 책을 읽고, 책을 사랑하고, 책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기를 꿈꾼다. 책 읽기만큼 오랜 시간 동안 질리지 않고 즐겁고 행복한 일을 발견하지 못했고, 살아온 세상이 좁아, 누군가에게 책 읽기의 즐거움을 알게 해 주는 일 이상의 보람 있는 일을 경험하지 못했다. 아마도 책을 통해 대학생들과 소통하는 일이 내 업무로 자리잡지 못했다면, 직장생활이 이렇게까지 보람 있지도 흥미롭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가 운영했던 독서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제법 많다. 공적으로 만난 관계다 보니, 사적으로 만난 인연과는 분명히 다른데, 사적인 관계보다 왠지 그 사람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다. 독서프로그램의 성격 상, 아무래도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 그 사람의 내면에 가까이 다가간듯한 친밀함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반복적으로 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경우, 더 정이 들기 마련이고, 때때로 멘토와 멘티 같은 관계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학생과는 그렇게 만났다. 연이어 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자주 보다 보니, 서로에게 친밀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온라인 독서동아리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만들어 낸 프로그램이다. 월급을 받는데 코로나 핑계를 대면서 하던 일을 안 할 수 없어 머리를 굴렸다. 정해진 책을 읽고 '독서 활동지'를 써서 제출하면, 내가 피드백을 제공하는 형식이다. 처음에는 나도 내가 그렇게 열심히 피드백을 할 줄은 몰랐다. 적당히 피드백하고 제출했는지 체크만 해도 그만인데, 학생들이 정성껏 써준 글을 홀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책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는 삶, 내가 꿈꾸는 삶이다

자신들이 쓴 글을 꼼꼼하게 읽는다는 것을 알게 되니 학생들도 결코 글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글로 매끄럽게 표현하지 못하는 학생은 있을지언정, 정성을 다하지 않는 학생은 드물었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사유를 엿보는 일이 기대보다 훨씬 즐거웠다. 내가 어떻게 피드백하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글이 달라지는 경험도 새로웠다. 사고가 쑥쑥 자라는 것이 보였다. 학생들의 성장에 내가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다는 보람도 상당했다. 때때로 자신의 상처나 약점을 고백하는 글을 만나면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 학생의 글이 특히 그랬다.


그녀는 독서 활동지를 정말 열심히 썼다. 책을 대충 읽지 않았고, 생각하나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자기 자신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마음에 상처가 깊기 때문이었다. 어떨 땐, 그녀의 마음에 깊게 공감했고, 어떤 땐 사유의 깊이에 놀라기도 했다. 그리고 어떨 땐, 그녀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져 안타깝고 또 안타까웠다. 나는 그녀의 글을 좋아했고, 그녀도 나의 답장을 좋아했다. 주고받는  속에 뭔지 모를 마음들을 함께 주고받았다. 그렇게 두 학기가 지나갔다. 이제 그녀는 졸업을 앞두었고, 더 이상 메일을 주고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 학생은 학창 시절 꽤 오랫동안 왕따를 당했다. 그 트라우마는 오랜 시간 그녀를 괴롭혔고, 그 고통은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다. 왕따를 당했던 기간만큼 긴 기간 동안 상담을 받고 있지만, 그 트라우마는 아마 평생 동안 그녀를 괴롭힐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의 편지를 읽으며, 진심으로 그녀를 괴롭혔던 인간들에게 분노했고, 그녀의 고통이 안타까웠으며, 내가 해 줄 것이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진심으로 답장을 쓰는 것뿐이었으며, 들어도 별 위로가 되지 않을 뻔한 문장들을 나열하는 것뿐이었다.


그녀에게도 책이 '구원'이 될 수 있기를

마지막 편지에서 그녀는 말했다. 책 이야기, 삶 이야기, 생각이야기를 하는 그 모든 시간들이 너무도 소중했고 즐거웠다고. 대학생활 중 가장 의미 있고 행복한 순간들이었다고. 그런 소중한 순간들을 만들어 주어서 고맙다고, 선생님은 내가 아는 어른 중에 제일 멋진 어른이라고. 나는 마지막 편지를 읽으면서 참 많이 울었다. 나의 진심이 조금은 전해졌구나 싶어서 울컥했고, 대단치 않은 나란 인간을 좋은 사람을 만들어준 것이 고마워서 울었고, '지금까지 너무나도 힘들게 살았다'는 그녀의 고백이 너무 슬퍼서도 울었다. 답장을 쓰면서도 울고 또 울었다.


○○ 학생과의 관계는 나에게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우리는 결코 사적으로 친분이 있는 관계가 아니고, 앞으로도 서로 만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사적으로 친분 있는 관계 못지않게, 서로의 삶에 관심이 많고, 서로를 응원한다. 우리는 어떤 관계일까. 사적인 관계가 아니라 해서 앞으로 만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해서 우리의 관계가 의미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책이 우리를 이어주지 않았다면 가능한 관계였을까. 이런 것이 책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는 것이 아닐까. 나의 진심과 응원은 그녀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을까. 책이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과연 구원이 될 수 있을까.


그녀에게 주려고 책을 한 권 주문했다. 뭔가를 많이 해 주고 싶은데, 부담스러워할까 걱정스런 마음에 고른 선물이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저 딱 책 한 권만큼의 마음뿐이다. 저 책 한 권으로 그녀의 앞날을 응원하는 나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나는 그녀가 삶을 버텨내기를, 견디어 내기를, 그래서 언젠가는 지금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포기하지 않기를, 언젠가는 생의 기쁨을 느껴볼 수 있기를, 멋진 어른이 되기를, 삶의 고통과 희망을 아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책과 사람을 향한 나의 마음이 깊이를 더해가기를, 바래본다.

나는 사회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내향적인 데다가, 내성적이어서, 누군가와 어울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고, 새로운 사람을 아는 일은 때때로 버겁다. 당연히 낯선 이를 만나면 방어적이 되고, 쉽게 마음을 여는 일 또한 드물다. 이런 나도 책을 통해 만나는 학생들에게는 180도 달라지는데, 그것은 아마도 '책'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마법이 아닐까 싶다.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는 학생들에게 나는 누구보다 열린 마음이고, 나 자신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책을 알게 되기를, 책을 통해 달라지기를,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진심이다. 실제 삶에서도 이렇게 늘 마음이 열려 있는, 타인을 생각하는 사람이고 싶을 만큼.


내가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책을 통해 삶바뀌지 않았다면, 책이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없었다면 모두 불가능했을 일이다. 이런 내 모습이 가끔씩 너무나도 새롭고 신기하다. 책이 나에게 선물하는 기적이다. 이런 과정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고, 책과 사람을 향한 나의 마음 또한 계속 깊이를 더해 간다. 나는 그렇게 책을 통해, 책으로 만난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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