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 3년 살기

운전기사 Epi

by 희재

운전기사가 있는 삶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 문을 열어 주고 뒷좌석에서 다리를 꼬고 업무를 보는 상상. 마냥 좋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 처음에는 배가 고파 뒷좌석에서 햄버거를 혼자 먹다가 체할 뻔하고 내가 원하는 길로 안 가서 답답하고 가까운 거리를 가도 운전기사에게 연락해야 하는 구속된 삶이라 느껴져 싫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 아니겠는가. 어느새 기사와 익숙해져 서로 척하면 척, 갔던 장소를 기억해 지름길을 찾고 누구보다 빠르게 주차장에서 빠져나오는 빠릿빠릿함에 로비에서 편하게 타고 내리는 맛을 보게 되었다. 게다가 피곤할 때는 뒷좌석에서 고개를 떨구며 숙면을 취할 수도 있다. 급한 성격이 서로 비슷해 기사가 차를 멈추기 전에 나는 문을 열고 기사는 내가 문을 닫기 전에 출발하던 환장의 콤비. 말은 또 둘 다 많아서 뜻이 잘 안 통해도 인니어로 얘기하다 보면 새로운 단어도 알게 되 지루한 시간이 금방 가기도 했다.


하루는 차가 막혀 학교 픽업시간에 늦을 뻔한 적이 있다. 기사는 오토바이가 빠르겠다며 본인 오토바이를 타자고 제안했다. 옆이 뚫린 원피스를 입고 기사 어깨에 손을 조신히 올린 채 난생처음으로 오토바이를 타보았다. 집에 올 때는 아이와 셋이 탔는데 놀이기구 같다고 아이는 즐거워했지만 나는 눈에 먼지가 많이 들어가고 속도감과 바람이 그대로 느껴져서 혼이 빠진 채 내린 웃픈 추억이 있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사람들은 주 교통수단인 오토바이에 네 식구까지도 타고 다닌다.


또한 기사는 비가 오면 우산 씌워 주고 장바구니도 들어주고 아플 때 병원에 데려가 주니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한국에서 지인들이 자카르타로 놀러 왔을 때 가이드도 해주고 여행을 다녀와도 공항에서 늘 기다리고 있었다.

막상 인도네시아 사람인 기사는 한 번도 발리에 가 본 적이 없다며 헛웃음을 짓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이 공항에 도착해 여느 때처럼 기사가 캐리어를 들어 차에 실어주는데 친구들의 반응이 황송해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다. 연신 감사하다고 하면서.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얼마나 타성에 젖었는지 새삼 반성한 기억이 있다. 자카르타 일 년 차 때는 나도 저랬었는데 삼 년 차정도 되니 선민의식을 가지고 살게 된 것은 아닌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겸손해야겠다고 느꼈던 순간이다.


초반에 기사는 애가 셋이니 돈이 많이 급했나 보다. 시간 외 수당을 받기에 뇨냐(부인)는 왜 잘란잘란(놀러 가다) 안 하냐고 보채기도 했고 아기 분유값이 없다며 돈을 빌려 달라고도 하고 심지어 한국에 본인을 데려가면 안 되냐고 해서 흠칫 놀랐던 기억들이 있다. 언제 차를 갖고 도망갈지 모른다며 한편으로 늘 의심하고 있었던 마음이 있었는데 3년이란 시간을 함께하고 마지막까지 차를 성심성의껏 팔아주는 모습을 보고 인간적으로 괜찮은 사람이란 것을 이제는 안다.


지금도 자카르타에서 차를 닦고 열심히 운전하고 있을 에삐. 누구나 발리 여행을 다닐 수 있는 민들도 잘 사는 인도네시아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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