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 넘은 부모님과 유럽여행을 가게 된 이유
미리 밝혀두자면 생활이 풍족하거나 시간이 넉넉해서 가겠다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고민도 과정도 많았던 칠순 넘은 부모님과의 유럽여행을 남겨놓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와 가족의 기록을 넘어 어쩌면 3-40대에, 환갑이 넘은 부모님을 모시고 서툰 가족 해외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부모님 생전에 유럽여행은 한 번 가야지
2023년 내가 작가 18년차에 접어들 때였다. 어쩌다보니 다섯 개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기획하고 있었다. 월화수목금을 다른 방송국에서 회의를 하고, 다른 내용의 기획안을 쓰다보니 정신이 없었다. 감당 불가능할 정도로 포화가 돼서 새로 들어오는 일을 거절하고 눈코 뜰 새 없이 일을 하던 중에 갑자기 준비하던 프로그램 4개가 순차적으로 엎어졌다. 반면에 내가 거절한 일들이 잘되기 시작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마지막 하나 남은 프로그램이 사기꾼에게 걸려서 촬영 중단이 됐다.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안되는, 허망함이 몰아치는 순간 험난했던 출장을 접고 돌아오는 순간에 생각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지금이 아니면 안될 일이 뭐가 있지? 우선 순위를 매겼다. 3위는 바쁘다고 잃었던 인연 찾기 2위, 오랫동안 미뤄온 대학원 공부, 1위는 코로나 전부터 생각한 부모님과의 유럽여행.
모든 일의 시작은 2017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집은 삼남매가 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 당시의 나는 무척 바쁜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다. 새벽 3-4시에 택시타고 들어오는 일이 허다했고, 회사원인 둘째는 자는 얼굴을 보고 출근해 자고 있을 때 들어왔고, 막내는 4시에 나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출근했다. 한번쯤은 해외로 가족여행을 가는게 좋지 않나? 라는 말이 나왔지만 각자 너무 바빠서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심지어 일하는 아빠와 엄마까지 시간을 내려니 계속 말 뿐이었다.
결국 엄마와 아빠가 정년퇴직을 하시고 나서도 가족 일정을 맞추는데 까지 걸린 시간이 일년 반. 고민끝에 간 첫 해외는 태국이었다. 당연히 아비규환이었는데, 신기한 건 다녀온 이후 어른들에게서 괴로운 기억만 깔끔하게 사라졌다. 그러고 다니 다음 여행 이야기가 나왔다. 이번에는 유럽이어야 하지 않나. 아빠 칠순에는 유럽 여행 한 번 가보자' 하고 반 농담 반 진담 같은 말이 나왔는데.. 그 시기 코로나가 겹쳤다. 국경이 폐쇄되고 비행기도 안 뜨고..결국 국내 리조트에서 보내면서 2년 뒤면 되겠지, 엄마 칠순 즈음 사정이 괜찮아지면 다시 시도해 보자 말을 했었다.
시간이 흘러 코로나가 진정되면서 홈쇼핑에 여행 상품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뱉어놓은 말이 있으니 부모님도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진지하게 고민을 해 봤다. 여행을 갈 컨디션인가에 대해. 시간이 더 지나면 주머니 사정이 더 넉넉해지고 시간도 여유로워질 것인가. 그 때 부모님의 상태가 지금보다 더 좋을것인가. 둘 다 확신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 해에는 주변에 부고가 잦게 들려왔다.
그렇다면, 시간이 흘러 내가 어느 쪽을 더 후회하게 될까? A. 그 때 유명한 프로그램을 해서 돈을 벌었어야 하는데 B. 그 때 부모님과 해외 여행을 갔어야 하는데. 이렇게 보니 답은 정해져 있었다.
부모님과의 생활은 유통기한이 있다. 영원히 변치 않는다는 걸 우린 알고 있다.
심지어 그 유통기한을 내가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년이 올해와 같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렇게 18년 간 쉼없이 일한 내가 당장 할 수 있고, 해야 할 첫 번째 계획은 부모님과의 유럽여행이 되었다. 시기는 첫 가족 유럽 여행의 기억이 가장 좋길 바라면서 춥지도 덥지도 않을 10월로 정하고
일정에 무리가 될 것 같은 일은 정중히 거절했다. 2023년 2월이었다.
큰 마음 먹은 효도여행은 자유 or 패키지?
다들 고민하는 대목이지만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패키지를 골랐다. 사소한 트라우마(?) 때문이다. 과거에 태국으로 가족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우리 다섯 가족과 아빠의 형제들을 모시고 갔는데, 어른 네다섯 분이 동시에 하고 싶은 게 달라지면서 정말 몸을 분리하고 싶어졌다. 화장실 가자, 기념품 사고 싶다, 숙소 가자, 배고프다, 다리 아프다가 겹쳐진 가운데 혼자 직진하는 분이 생기고, 잃어버릴까봐 속앓이를 하는 중에 그랩은 요금만 먹고 안 오고, 갑자기 비가 오고... 그 난리를 또다시 겪을 수 없지.
패키지는 장단점이 명확하다. 일단 장점은 내가 각각 예약하는 것보다 가격이 저렴한 것도 있겠지만 변수가 생겼을 때 누군가가 나 대신 대안을 짜주니 대처가 쉽다는 것이다. 젊으면 굶는 것도 다이어트로 치고 잠깐 코스를 헤매도 자체로 즐겁지만 70대 부모님들 동행하는 여행에서 혼돈은 체력 저하로 이어진다. 부모님 체력이 떨어지는 즉시 여행은 망한다. 고생할만한 요소는 애초에 차단하는 게 낫다.
물론 해외 여행을 자주 가고 부모님의 체력이 좋으시며, 자유여행에 최적화된 분들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집처럼 어떤 나라를 처음 가는 것이고, 게다가 가족 여행 자체를 자주가는게 아니라면 무조건 패키지를 추천한다. 그 편이 준비하는 자식들 건강에 이롭다.
그래서 어디로 가냐고
이 부분이 제일 고민이었다. 어차피 가는 거, 좋은 걸 많이 보여드리고 싶은데 헤맬 수 없으니 가 본 코스를 다시 가야 하나. 나와 동생은 둘이 동유럽 패키지를 한 번 다녀왔고, 엄마와 여동생은 서유럽 패키지를 한 번 다녀왔다. 이런 저런 패키지를 보다가 마음을 접은 건 아버지 한마디 때문이었다 - 주변에 누가 유럽 4-5개국 다녀왔는데 맨날 차타고 어디 가서 잠깐 내려주고 또 타고 그래서.. 뭘 보고 왔는지 모르겠다더라. 잘 생각해 보면, 차타는 시간과 여행시간은 반비례한다. 유럽에서 5개국 이상이 되면 당연히 차 타는 시간이 길 수밖에 없다. 그 말은 - 지금까지 찾은 패키지는 다 같은 반응일 거라는 거지. 나는 그동안 보았던 패키지를 다 엎고, 동유럽이건 서유럽이건 1-2개국 안에서 고르기로 했다. 그런데 보니, 5개국 가는 여행보다 1-2개국이 두 세배 비싼데...? 여동생과 둘이 비용을 감당하려니 만만치 않은데, 그 돈을 내고 가 본 나라를 가는 건 아쉽다. 그래서 둘 다 안가본 나라를 가기로 했다.